두 칸의 자리

가방 & 배려

by 려산의 여행 일기

늦은 퇴근이었다.

몸은 천근만근, 머리는 멍했고, 오늘 하루를 겨우 버텼다는 생각뿐이었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다행히 한 자리 반쯤 비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반 자리’였다.



의자 한 칸에는 젊은 여성이 앉아 있었고, 그 옆 한 칸은 가방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말을 해야 하나.”

“그냥 서 있을까.”

하지만 다리가 이미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반 자리 사이에 몸을 끼워 넣듯 앉았다. 그녀는 휴대폰을 보고 있었고, 가방은 그대로였다. 내가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방을 치울 기색은 없었다.

선반 위는 비어 있었다.

가방을 올릴 공간은 충분했다.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요즘은 이런가.’

‘배려라는 게 점점 사라지는 걸까.’

‘어른들이 무례하다고 말하지만, 이런 모습은 또 뭐지.’

피곤함은 생각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머릿속에서는 어느새 한 사람의 행동이 한 세대의 문제로 번지고 있었다. 부모는 어떤 사람일지, 가정교육은 어땠을지, 알 수 없는 상상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곧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가방 좀 옮겨주실 수 있을까요?”

그 한마디를 꺼내지 않았다.

혹시 금방 내릴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가방을 옆에 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누군가가 앉으리라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말하지 않은 채 판단을 먼저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은 생각보다 빠르게 커진다. 한 사람에서 한 세대로, 한 행동에서 한 가정으로.

지하철은 몇 정거장을 더 달렸다.

나는 여전히 피곤했고, 여전히 좁았고, 여전히 불편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날 나를 더 불편하게 한 건 가방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커져버린 단정이 아니었을까.

공공장소에서의 배려는 분명 필요하다.

그건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몫이다.

어쩌면 필요한 건 거창한 비판이 아니라

짧은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가방, 잠시만 옮겨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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