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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호박 Aug 16. 2021

용감한 마스크


마스크를 낀지도 일 년 반이 넘었다. 미세먼지가 심해도, 아무리 추운 공기여도 마스크 없이 다니던 사람이었는데 500일이 넘도록 매일 마스크를 꼈다니. 길어질 거라고 생각 못했던 일이었지만 마스크는 내 삶에 너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주목적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겨울에 목감기에 걸리지 않고, 목이 붓지 않으니 열나는 일도 없이 사계절이 지나갔다. 그리고 마스크가 떨어질 때쯤 새로운 모양이나 색깔의 마스크를 사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친구가 쓰던 마스크를 따라 샀는데, 거의 떨어져 가서 핫트랙스 홈페이지에 특가로 판매하고 있는 마스크를 주문했다. 배송 기간은 약 5-6일 소요. 아무래도 오픈 마켓이라 오래 걸리나 봐, 급한 생활용품은 아니니 기다리기로 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쯤 문득 마스크가 도착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출근하자마자 배송 조회를 해 보았다. 로그인을 하고 ‘주문/배송 조회’ 카탈로그에 들어가니 이미 ‘배송 완료’ 문구가 떠 있었다. 도착지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아닌 본가가 있는 지역이었다. 기존 배송지가 본가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명확한 주소지명이 낯선 느낌이 들었다. 동네에 있는 아파트 주소였다. 그 아파트는 고등학교 친구가 살고 있는 곳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수신인명이 그 친구의 이름이었다. 그러자 올해 초에 친구의 생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직접 만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고, 코로나19가 시작되고 여러 고민이 생긴 친구에게 책 한 권과 꽃다발을 보내주었던 것이다.


친구에게 다시 마스크를 돌려 달라고 말해야 할까 고민했다. 나만 챙기느라고 선뜻 연락할 힘이 없어 만나지 못한 날이 너무 많은데. 이거 하나 받으려고 연락했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택배 송장에 주문인 이름이 적혀 있었다면 먼저 연락하지 않았을까? 생각 많은 사람답게 그냥 모른 척하고 넘어가야 하나 고민했다. 한참을 내 생각만 하고 나서야 그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늘 나에게 먼저 말과 장난을 걸어오고 많은 고민 사이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해내려는 든든한 모습들.


친구는 늘 하고 싶은 말을 다른 사람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명확히 할 줄 알고, 속으로는 끙끙 앓고 있으면서도 늘 기쁜 얼굴을 보여주던 사람이었다. 손재주도 좋아 그림도 잘 그리고 밝은 성격 덕에 어린 나이에 어려운 서비스직도 척척 잘 해냈다. 물론 그만큼 버티기 힘들었던 이면적인 상황도 많이 있었을 테지만. 그래서 그런지 대학생 내내 아르바이트를 할 때 우리 가게에서 사람을 더 구한다 하면 아르바이트 구하고 있냐고 일순위로 물어보았던 친구였다. 똑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장님 얘기도 깔깔거리면서 하고, 걱정 많은 나도 친구와 있으면 조금은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친구에게 연락할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이라니. 아무리 사회생활하며 눈칫밥을 많이 먹었다지만,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나 잊고 지냈었구나. 자주 만나지 못해도 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한 사람이 있다.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는가 생각해보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이 친구는 그런 사람들 목록 중 절대 빠트릴 수 없는 인물이었다.


[나………… 혹시 마스크 너네 집으로 보냈니?]

[그거 너냐? 와 드디어 풀렸다]


이런 마스크를 보낼 사람도 없고 엄마와 함께 너무 놀랐고, 미궁이었다는 친구의 답이었다. 친구와 친구네 엄마는 뜯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아빠만 태연하게 “널 흠모하는 사람이 보냈겠지”라고 했다며 메신저로 깔깔 웃었다. 만나지 못해도 변하지 않는 친구의 유쾌한 대답이 돌아오자 요상한 고민거리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마스크는 이미 엄마가 몇 장 썼지만 다시 돌려주겠다고, 오랜만에 강아지 간식과 햄스터 간식 교환할 겸 꼭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착용하고 구매하는 마스크가 이런 약속을 만들어 준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들어 준 건지, 마스크가 만들어 준 건지. 아무렴 어때. 그것이 무엇이든 내 용기 없는 마음을 대신했단 건 변함없다. 머지 않아 친구를 만나면 이 용감한 마스크를 나눠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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