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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호박 Aug 14. 2021

우울이 속이지 않는 것


비 내리던 날, 친구와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기분 전환을 할 겸 습관처럼 꽃집에 들어갔다. 역시나 8시가 넘은 시간이라 꽃은 하나도 남지 않았고, 한 손님이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 꽃이 다 나갔네요. 사러 왔는데."

"네, 방금 다 팔렸어요. 한동안 문을 열지 않을 예정이라 다 정리했어요."


이전에 친구에게도 선물할 일이 있어 몇 번 들렀던 곳이라 더 아쉬웠다. 예쁘게 잘 만들어주시는데 말이야. "아쉬워요, 다음에 올게요."하고 문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저기..."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한 손님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오늘 가게에 남은 꽃들을 샀는데, 이거라도 괜찮으면 받으시라며 들고 있었던 두 다발 중 한 다발을 나에게 건넸다. 좋기도 하고, 당황해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는 "정말 받아도 괜찮을까요?" 하면서 그 꽃을 덥석 받았다. 내 돈 주고 사도 기분 좋아지는 꽃인데, 모르는 사람이 건네는 꽃이라니. 네 잎 클로버 같았다.


집에 돌아와 남는 화병에 꽃을 꽂았다. 그리고 화병에 자리 잡은 꽃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꽃들은 화병과 아주 딱 맞았다. 나에게 올 꽃들이었구나, 바보 같은 생각도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쉽게 상처 받고 쉽게 회복했다. 그런 습성을 아직 버리지 못한 나는 그런 기분들을 느낄 때 자주 물건을 산다. 구매하게 되는 물건들은 계절에 따라 바뀐다. 발이 얼 것 같이 추웠던 날 꽃을 샀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꽃잎이 얼어버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물건들은 때때로 경험이 담긴 형태로 남아 있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건 영화 티켓이다. 우울하거나 기분이 좋은 날에는 혼자 즉흥적으로 영화를 보러 간다. 그럴 때 고르는 영화는 친구와 보기에 애매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최근에 혼자 보았던 작품 중에서는 김종관 감독의 <아무도 없는 곳>이 있다. 평소 좋아하는 감독이지만, 친구에게 함께 보자고 하기에는 취향이 탈 수 있는 작품이라 혼자 보려고 아껴두었던 영화였다.


우울할 때면 나는  슬퍼지고 싶어 진다. 소설을 읽으며 타인의 아픔이  마음에 와닿을 때면, 나만 이렇게 살아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나는 조금 안심이 된다. 지어진 이야기 속 사람들은 누구보다 날 더 깊이 이해해준다. 그러면 아주 잠깐이라도 괜찮아진다. 평범한 날엔   켠에 쌓인 물건들을 바라볼 때면 어떤 물건들이 나에게 깊이 남아있는지 생각해 본다. 이상하게도 우울하고 힘들   물건들이다. 쓸모없지만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것들. 아니면 아주 슬픈 이야기가 담긴 책들. 우울이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는  아닐까. 그렇다면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써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되는  아닐까. 우울할 때면 나는 나를 깊게 보게 된다. 그곳에는 울고 있는 내가 있다. 그곳에 있는 나는 나를 속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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