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던 날, 친구와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기분 전환을 할 겸 습관처럼 꽃집에 들어갔다. 역시나 8시가 넘은 시간이라 꽃은 하나도 남지 않았고, 한 손님이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 꽃이 다 나갔네요. 사러 왔는데."
"네, 방금 다 팔렸어요. 한동안 문을 열지 않을 예정이라 다 정리했어요."
이전에 친구에게도 선물할 일이 있어 몇 번 들렀던 곳이라 더 아쉬웠다. 예쁘게 잘 만들어주시는데 말이야. "아쉬워요, 다음에 올게요."하고 문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저기..."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한 손님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오늘 가게에 남은 꽃들을 샀는데, 이거라도 괜찮으면 받으시라며 들고 있었던 두 다발 중 한 다발을 나에게 건넸다. 좋기도 하고, 당황해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는 "정말 받아도 괜찮을까요?" 하면서 그 꽃을 덥석 받았다. 내 돈 주고 사도 기분 좋아지는 꽃인데, 모르는 사람이 건네는 꽃이라니. 네 잎 클로버 같았다.
집에 돌아와 남는 화병에 꽃을 꽂았다. 그리고 화병에 자리 잡은 꽃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꽃들은 화병과 아주 딱 맞았다. 나에게 올 꽃들이었구나, 바보 같은 생각도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쉽게 상처 받고 쉽게 회복했다. 그런 습성을 아직 버리지 못한 나는 그런 기분들을 느낄 때 자주 물건을 산다. 구매하게 되는 물건들은 계절에 따라 바뀐다. 발이 얼 것 같이 추웠던 날 꽃을 샀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꽃잎이 얼어버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물건들은 때때로 경험이 담긴 형태로 남아 있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건 영화 티켓이다. 우울하거나 기분이 좋은 날에는 혼자 즉흥적으로 영화를 보러 간다. 그럴 때 고르는 영화는 친구와 보기에 애매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최근에 혼자 보았던 작품 중에서는 김종관 감독의 <아무도 없는 곳>이 있다. 평소 좋아하는 감독이지만, 친구에게 함께 보자고 하기에는 취향이 탈 수 있는 작품이라 혼자 보려고 아껴두었던 영화였다.
우울할 때면 나는 더 슬퍼지고 싶어 진다. 소설을 읽으며 타인의 아픔이 내 마음에 와닿을 때면, 나만 이렇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나는 조금 안심이 된다. 지어진 이야기 속 사람들은 누구보다 날 더 깊이 이해해준다. 그러면 아주 잠깐이라도 괜찮아진다. 평범한 날엔 방 한 켠에 쌓인 물건들을 바라볼 때면 어떤 물건들이 나에게 깊이 남아있는지 생각해 본다. 이상하게도 우울하고 힘들 때 산 물건들이다. 쓸모없지만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것들. 아니면 아주 슬픈 이야기가 담긴 책들. 우울이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써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닐까. 우울할 때면 나는 나를 깊게 보게 된다. 그곳에는 울고 있는 내가 있다. 그곳에 있는 나는 나를 속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