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나이에 췌장암에 걸려 할아버지는 병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또래보다 일찍 결혼한 자식들 덕에 입원하기 전에 손주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오뚜기 수프를 좋아하셨는데, 수프를 먹으며 뜨겁다고 말하는 나에게 수프를 먹을 땐 가장자리부터 먹어야 된다고 했다. 가장자리가 가장 먼저 식으니까 가장자리를 먼저 떠서 먹다 보면 가운데도 적당히 식을 거라고. 일곱 살이었던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수프를 먹는 방법이었다. 나는 여전히 수프를 먹을 때 가장자리부터 떠먹는다.
할머니와 동생들은 평생 교회를 다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다니는 교회에 한 번도 따라가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병실에서 마주한 목사님에게 하나님을 믿겠다고 고백했다. 죽음이 코 앞으로 다가오니 하나님을 인정했다. 아마 할머니와 가족들을 하늘나라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할머니를 따라 간 교회에서 처음 받은 선물은 접이식 식탁이었다. 그 식탁에는 양들과 예수님이 그려져 있었다. 두 명이 간식을 먹기 좋은 작은 크기였다. 할머니를 따라 교회에 간 우리는 새 가족이라며 환영을 받고, 그 선물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서 식탁을 들고 있던 아빠는 사람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했다. 생애 처음 가 본 교회의 모습이었다.
그 이후로 아빠는 교회에 다시 가지 않았지만, 나는 교회에 갔다. 할머니 때문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놀기 위해서였다. 초등학교 시절 아주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 모임이 놀러 가는 날에는 절대 빠지고 싶지 않아 했다. 소외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들과 교회에 가서 초등부 예배를 드리고 나면 담임 선생님이 우리를 데리고 월미도에 갔다. 월미도에서 디스코팡팡도 타고 바이킹도 탔다. 성경에는 관심도 없이 예배 후 놀기 위해 일요일마다 교회를 갔다. 그러다 놀기만 하는 교회에 싫증이 났을 때쯤,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와 보라고 했다. 홀로 버스를 타고 처음 가 본 그 교회에 있던 아이들은 생기가 넘치고 건강해 보였다. 무엇보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믿음이 있고 당당해 보였다. 소외감 때문에 교회에 갔었던 나와는 달라 보였다.
그렇게 나는 그 교회에 적응을 했다. 그 교회에서 나는 처음 해 보는 것들이 많았다. 노래를 못 부르지만 성가대 봉사를 해 보고, 처음으로 유치원생들과 일주일에 한 시간씩 시간을 보냈다. 한 번은 청년부에서 수련회를 가는데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이 없다며 전도사님이 장롱면허인 나에게 운전을 맡긴 적이 있다. 교회 봉고차가 아닌 자신의 차에 보험을 들어서 하면 된다고. 수련회를 떠나기 일주일 전에 차를 빌려 덜덜 떨면서 운전을 연습했고, 나는 교회 물품과 또래 친구를 옆에 태우고 인천에서 대부도까지 가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 친구들과 그 이야기를 다시 회상하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한참 웃었다. 교회에서는 학교에서 만났다면 친하게 지내지 못했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 오빠들과 즐겁게 놀았고, 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교회에서 나를 맞이해 주는 사람들은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해 주었다. 또 다른 내 마음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내가 스스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나를 길러주신 할머니가 아프셨을 때도 교회 사람들이 늘 내 곁을 지켜 주었다. 할머니가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고, 그날 교회에 들어서자마자 한참 울었을 때 전도사님은 나와 함께 할머니를 만나러 가 주었다. 전도사님은 그날 우리 할머니를 처음 만나, 나와 할머니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새벽에 입관 예배를 시작할 때는 나를 늘 이끌어준 친구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가족만 참가했었기에 상복을 입은 사람들만 가득했던 곳에서, 유일하게 사복을 입고 자리를 지켜주었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사실 나는 아직도 하나님과 예수님의 존재를, 그리고 성경의 진위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나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런 상황에서 나와 함께했던, 그리고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이 되도록 많은 영향을 주었던 그 사람들과 죽어서도 만나고 싶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가서 이제는 만나지 못하는 할머니의 손을 만지고 싶다. 많이 고마웠다고, 미안했다고 다시 한번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할머니가 만든 된장은 5년을 넉넉하게 먹고도 7년을 더 먹을 수 있었다고 말해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하나님은 살아있는 존재여야 한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나를 지켰던 것처럼, 그들의 삶도 끝까지 책임질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