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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호박 Aug 05. 2021

나누면 반이 되는 것들

엄마가 많이 아프다.


이런저런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은 아침에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고 괴로울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분이 이런 거라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랑이 없는 삶보다 무력하고 힘없는 내 모습이 더 싫었기 때문에.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을 오랜 시간 믿지 않았다. 내가 아주 기쁠 때 힘든 일을 겪는 사람들을 뉴스에서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슬픔을 나누면 오히려 나는 부담이 되었다. 그에게 힘을 내라는 말이 오히려 폭력이 될 것 같아서. 상대방은 반이 되었을지 몰라도 그 반은 늘 내 몫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슬픔을 나누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자라면서 나는 나의 슬픔을 쉽게 다른 사람에게 나눌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내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다고, 듣는 사람만 더 힘들어질 거라고 늘 대화를 피해왔다. 그러다가 마음속에 있는 쓰레기들이 쌓이고 쌓여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게 변했다. 내가 회피하고 싶은 것인지,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인지, 품고 있는 응어리의 정체가 슬픔인지 분노인지 스스로 알지도 못하게 변해버렸다. 그런 마음을 처음으로 그에게 말했을 때 누군가 내 곪은 생각들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루 종일 멍하니 있었는데 그가 저녁에 뭐 먹고 싶냐고 물었다. 그냥 남은 음식들이나 집에서 먹으려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 집에 낙지덮밥을 주문해 주었다. 여러 옵션이 있었는데 내가 평소에 해산물을 좋아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매운 음식이 좋을 것 같아서 골랐다고 했다. 집에 낙지덮밥이 도착했을 때 크게 한 숟가락을 떠먹으면서 바보처럼 울었다. 종일 눈물을 참아서 아렸던 얼굴 근육이 풀리는 것 같았다. 어릴 적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하쿠가 건넨 주먹밥을 먹으며 엉엉 우는 센을 보면서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울고 나니 나의 슬픔은 정말로 반이 되었다. 잠이 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던 것과 달리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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