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내 별명이 '단호박'이라고 하면 대부분 수긍한다. 나는 때때로 정말 단호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단호하지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가끔은 한없이 약해진다. 얼마 전에서야 알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욕구가 강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의 세계 안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차가워질 수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살았다. 나의 세계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 나를 미워해도, 나를 욕해도 나는 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심은 버린 지 오래다.

"사실 그날 밥 먹으면서, 너에 대한 얘기를 들었어. 어떤 사람이 너랑 비슷한 행동을 하니까 네가 했던 말들을 따라 하면서 웃더라고.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하는 거야."

나와 가깝다고 생각해 온 사람, 말하자면 나의 세계 안에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그녀'로 지칭하며 나의 장단점에 대해 아주 편하게 나열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더 이상한 기분이 들었던 점은, 내 장점보다 단점을 더 많이 말했다는 점이다. 나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의 장점과 단점을 그를 통해 듣게 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이 사람은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구나. 한편으로는 나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까지 커서 나를 그렇게 치밀하게 분석해 온 것일까, 그런 생각들도 했다.

물론 그 대화의 청자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았으며, 그들이 나의 단점을 듣고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이 없었지만, 굳이 왜 그 대화에서 내가 '유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보다 내가 웃음거리가 되는 게 더 싫었을 뿐이다. 한국 예능을 볼 때 가장 불편한 점이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영역으로 끄집어 와 웃기려고 하는 사람이 제일 싫기도 하니까. 그가 지적한 나의 여러 단점들 중 몇 가지가 기억에 남는데, 대충 리액션이 크고 대화를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말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게 그렇게까지 잘못한 일인가?

사실 이해하려 노력해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가 왜 그랬을지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일 것 같다. 첫 번째는 청자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가득해서, 다소 편하다고 생각하는 나를 끌어들여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더 가까운 사람은 편하다는 이유로 쉽게 생각하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에게 오히려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한참 기분이 상했다가 이제는 가라앉았기 때문에 이런 걸 따져 봤자 별 소용없는 걸 알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애써 내 마음을 표현하면 묘하게 태도가 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릴 적에 의도치 않게 눈칫밥 먹으며 자랐기 때문에 그런 변화를 느끼는 눈치 정도는 있다.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것뿐이지. 그래도 나는 나답게 표현하는 게 편하다. 고마우면 고맙다고, 서운하다면 서운하다고. 내가 실수한 일이면 미안하다고. 그렇게 솔직하게 말해도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관계라면 다른 장황한 말들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표현들을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 때문에 종종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한 사람에 대해 알게 될 때마다 나는 나를 더 잘 숨기게 된다. 어쩌면 그가 나의 세계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던 내가 더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르지. 크면 클수록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보다 '이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어서 서글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