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네 라면 주종목은 삼양라면이었다. 물은 권장량보다 조금 더 넣고, 소분해서 냉동고에 보관해 둔 파를 한 줌 툭 넣는다. 마지막에는 달걀을 넣어 휘휘 젓는다. 어렸을 적 김가네 사람들이 라면을 먹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라면을 한 입 후루룩 먹으면 이게 뭐지? 싶은 것이다. 짜지도 않고 맵지도 않고, 그렇다고 구수하고 삼삼한 맛도 아닌 이상한 라면. 차라리 소면을 끓여 참기름과 간장, 깨소금을 넣어 먹는 게 더 맛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면을 한두 젓가락 집어 먹고 나서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빠와 동생은 달걀이 들어간 라면 국물이 구수하다며 숟가락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대학교에 갈 때까지 우리 집 라면 레시피는 변하지 않았다.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라면을 먹었다. 많이 먹어야 다섯 번이었다. 대학교 OT에서 선배가 라면을 끓여 함께 먹자고 방바닥에 내려놓았을 때 "저는 라면을 안 좋아해요."하고 한 젓가락도 들지 않았다. 모두가 라면을 먹고 있을 때 나는 내가 라면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당당하게 생각했고 오히려 더 뿌듯했다. 내게 라면을 먹지 않는 일은 "전 몸에 좋은 건 하지 않아요."와 비슷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생이 되고 '공강'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 공강 때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학교 안에 있는 편의점에 자주 들어갔다. 주로 편의점 아주머니가 아침에 만들어 판매하는 김밥을 사 먹었다. 친구들은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었다. 그러다 친구들이 동시에 참깨라면을 사는 것을 보았다. 참깨라면이면 고소한 맛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친구들이 먹는 참깨라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참기름인지 들기름인지 고소해 보이는 액체가 라면 국물 위에 동동 떠 있었다. 참깨라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에게 친구는 국물을 한 번 맛보길 권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라면을 맛있게 먹고, 또 즐길 줄 아는 나의 인생은.
대학 시절 내내 공강에 시간이 빠듯하고 학식 메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참깨라면을 먹었다. 물은 권장량보다 늘 더 적게 넣었다. 어차피 국물을 다 마시지 않을뿐더러 권장량보다 물을 더 많이 넣어 이도 저도 아닌 라면이 되어 버리는 김가네 라면처럼 되어 버릴까 봐.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들을 때면 공강도 겹치게 되었는데, 그때는 수업 시간에 [엽떡 콜?]이라는 말이 나오면 누군가 대표로 엽기떡볶이를 주문했다. 그때는 엽기떡볶이가 막 나와 페이스북을 통해 인기몰이를 하던 중이기 때문에 수업 마치는 시간에 맞추어 시키는 타이밍이 중요했다. 은근 맵찔이었던 나는 엽기떡볶이로 매운 음식에 입문했고 그 이후에는 라면도 조금 더 맵고 자극적인 라면을 찾게 되었다.
대학교와 동시에 참깨라면을 졸업했다. 내 20대의 두 번째 라면은 진라면 매운맛이었다. 일명 줄인 말로 '진매'. 진라면 매운맛에 물을 권장량보다 조금 덜 넣고, 고춧가루를 작게 한 스푼 넣고, 청양고추를 하나 가위로 듬성듬성 잘라 넣는다. 진라면 매운맛보다 조금 더 매콤한 강도가 딱 내 입맛이었다. 라면을 끓일 수 없는 상황일 때는 컵라면 진라면 매운맛을 사서 뜨거운 물을 넣고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진라면 매운맛은 작은 컵도 있어서 내 소울푸드인 김밥과 함께 먹어도 한 끼로 딱이다. 20대의 마지막에 들어서서야 알게 되었다. 어린 내가 싫어했던 건 라면이 아니라 김가네서 끓인 밍밍한 삼양라면이었다고. 30대에는 또 어떤 라면을 사랑하게 될까. 어떤 라면을 먹고 맛있다고 느끼게 될까. 또 변하고 달라질 내 입맛이 궁금하고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