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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Sep 16. 2024

인간성 회복과 미래의 방향


과학자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누구나 세상과 인생에 대한 진리를 알고 싶어 한다. 진리를 정의하자면, 어떤 사실이 소수에게만 해당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확실하게 인정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전체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진리 중 하나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다는 점이다. 똑같은 인간이지만, 과거 수십만 년 전 구석기시대 인간들에 비해서 현대인들은 세상과 인간 자신에 대해 엄청난 수준의 정보를 알게 되었다. 이성과 과학의 발달 때문이다. 우주선과 슈퍼 컴퓨터, 인공지능을 통해 우주의 기원과 외부 거시 세상을 탐사할 뿐만 아니라, 세포의 구조파악과 유전자 연구를 통해 인간 몸 내면의 미시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불과 수백 년 전 조상들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변화이다. 이제 인간은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지식을 확보하고 있고, 매일 천문학적인 양의 새로운 지식을 더해 가고 있다. 도서관에 갈 필요도 없어졌다. 누구나 인터넷만 활용하면, 유튜브, 구글링과 챗 gtp 등을 통해서 무슨 정보라도 순식간에 입수할 수 있다. 호기심과 창의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앞에 있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활용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해를 늘려 나갈 수 있다. 인공지능의 번역 기능을 통해, 전 세계 대부분 언어에 대한 장벽도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19세기나 20세기적인 과거 방식으로 공부하고, 일하고, 보수와 진보라는 울타리에 갇혀 사상적으로 대립하며 살아가고 있다. 무한한 정보가 사람에게 주어져 있는데, 대부분은 자신에게 필요한 일상 정보만 취하고 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무한하게 열린 정보의 세계를 잘 이해하고, 주어진 정보를 100% 활용해서, 새로운 발명을 하거나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한 소수가 우주개발, 스마트폰과 자율 주행차, 드론,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유전자지도, 유전자편집, 언어 번역, 로봇수술 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공상 영화의 내용들이 매우 빨리 현실화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미래 세계의 모습은 분명하다. 정보와 과학 기술을 독점하는 소수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의 예측대로 잉여계급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잉여 계급이란 사회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기본소득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실업수당은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기본소득이라는 생각은 아무런 사회적인 역할이 없는 사람의 생존을 위해 주어지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계비를 말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기본 소득 논의를 반가워만 할 일이 아니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보수나 진보의 대립, 사회 계층 간의 대립도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대립은 아직까지도 보편적인 인간의 이성이 살아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점점 인류가 오랜 세월 발전시켜 온 이성적인 판단과 가치관이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하면, 오직 무한한 정보를 활용해서 세상을 지배하는 소수와 이들에게 조종당하며 생각 없이 살아가는 다수의 그림자 인간들만 남을 것이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통해 500년 전에 시작되었던 보편적인 인간 이성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초자본주의 시스템에 어울리는 편향적인 가치관을 가진 학생들이 키워지고 있다. 극도의 경쟁,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만을 쟁취, 여론조작, 인간사회의 오랜 전통 무시, 결혼관의 변화, 인간 행동의 점진적인 기계화, 남녀 간 혐오 현상은 다가오고 있는 인간성 상실을 기반으로 구축될 미래 정보독점사회의 단면을 미리 예고편처럼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아직도 어떤 면에서 19세기적인 향수를 갖고 있지만, 아쉽게도 인류 전체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인류의 탄생과 새로운 인간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다만, 서서히 끓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사람들이 세상의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오직 편안함만 추구하지 말고, 생각하고, 잘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현대 과학기술이 제공하는 편안함은 인간 정신을 마비시키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이미 사람들은 불과 20년 전에 등장한 스마트폰에 이유도 모른 체 단지 편리하다는 사실 하나로 엄청난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그렇게 사람 간의 대면 대화나 관심, 대면 사랑에 사용될 시간이 뺏기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파우스트 박사는 1부에서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세상의 쾌락을 얻는 대신, 자신의 영혼을 대가로 팔아야만 하는 스토리다. 그러나 2부에서는 현세적 쾌락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내면의 빛에 따라 이상을 추구한다. 이제 인류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계속해서 과학기술이 주는 편리함과 쾌락에 빠져 비대면 문화라는 인간기계화의 길을 따라 인간성을 내줄지, 아니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다시 인간성을 회복해서 진짜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는 세상으로 복귀할지를 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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