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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Apr 02. 2024

보덴 호수 위 파란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물체

제플린과 레드제플린과 비행선의 연결고리



푸른 하늘 위에 고래 한 마리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하늘 아래 기차를 타고 프리드리히 하펜 쪽으로 가다 보면 푸르기만 한 푸른 들판 위에 유에프오가 떠있는 건 아닌지 싶은 그림자가 보일 때가 가끔 있다. 저 그림자가 뭘까하고 재빨리 주변을 살피다 보면 새파란 하늘 위에 거대한 비행선 한 대가 푸른 바닷속 고래 한 마리처럼 떠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보이지도 않는 비행기 자국과 너무 잘보이는 비행선 자체


비행기는 몸체가 잘 보이지도 않은 채 하늘보다 더 높은 하늘 위에 새하얀 기다란 구름띠만을 남기고 날아간다면, 비행선은 거대한 흰수염고래처럼 제법 큰 크기로 푸른 들판에 자신의 그림자를 남길 만큼 비행기보다는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상공을 떠다닌다.


프리드리히 하펜 주변에 와야만 보이는 이 비행선은 신기하게 왜 다른 보덴 호수 주변에는 없고 이 근처에서만 보이는지 궁금하던 참이었다. 그렇게 프리드리히 하펜 역에서 내려 호숫가로 내려가던 길에 남편이 물었다.


“제플린 알지?”



제플린이 누구더라…?

호숫가 근처에 세워진 동상을 가리키며 남편이 나에게 묻는데, 순간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제플린이라는 사람이 있었나 싶었다. 그의 질문에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딱 하나뿐이었다. 레드 제플린.


기타를 좋아한다는 말에 더 좋아졌던 남자아이가 처음 알려준 영국의 락밴드였다. 물론 내가 말한 기타는 클래식 기타였고 그가 말했던 기타는 일렉트로닉 기타였다는 것을 알고 난 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가 알려준 일렉트로닉 기타 음악 중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음악도 있구나를 처음 알려준 노래가 바로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이었다.


그런데 그 레드 제플린과 프리드리히 하펜이라는 도시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놀랍지 않게도 남편이 말한 제플린은 내가 생각한 밴드, 레드 제플린이 아니라 프리드리히 하펜 상공 주변을 날아다니던 그 비행선을 20세기 초반에 개발했던 제플린 백작을 말한 것이었다.


제플린 백작은 프리드리히 하펜에서 보덴 호수 건너편에 위치한 대표적인 도시 콘스탄츠에서 태어났지만, 젊은 시절 군인으로 활약하던 중에 미국에서 처음 비행선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은 후, 50세가 넘어 군에서 은퇴한 뒤 프리드리히 하펜에서 본격적으로 경식비행선을 개발하는데 착수한다.



떴다 떴다 비행선

열기구 안에 특별한 골격이 없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대한 열기구에 가스를 넣어 날아가는 방법이 연식비행선이라면, 뼈대를 만들어 가스가 없이도 비행선의 형체를 가지며 여러 개의 기낭을 넣을 수 있던 것이 경식비행선이라고 한다.


제플린이 처음 개발한 비행선 그리고 보덴 호수 (출처: 위키피디아)


18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경식비행선을 개발한 그는 초기에는 아무도 지원해주지 않아 소수의 후원자와 자비를 더해 거대한 비행선을 만들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1900년 7월, 불굴의 의지로 200미터가 넘는 비행선을 처음 띄웠던 곳이 바로 프리드리히 하펜 근처의 보덴호수였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개발했던 비행선은 지상으로 떠오르는 것은 성공했지만 모두 타버렸고 세 번째에 이륙뿐만 아니라 착륙까지 가능한 거대한 비행선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후 기존의 비행선을 개조해 네 번째, 다섯 번째 비행선까지 만들면서 제플린의 비행선은 바덴부르크 주와 군의 승인과 지원을 받게 된다.


지금은 이렇게 호수 주변 또는 일정한 공간을 배회하는 관광용도로만 인식되지만, 제플린이 비행선을 개발한 후 그의 뒤를 이어 제플린 비행선의 대중화를 이끈 후고 에케너 시절의 비행선은 지금의 비행기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런던 상공을 지나는 제플린 비행선 (출처: 위키피디아)
예루살렘 위를 지나가는 제플린 비행선 (출처: 위키피디아)
독일 프리드리히 하펜에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 행 비행선 티켓    (출처: 위키피디아)
리우데자네이로 상공을 지나는 비행선 (출처: 위키피디아)


지금 오히려 상상하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하지만 에케너 시절 제플린 비행선은 비행선으로서는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해 독일에서 미국, 심지어는 독일에서 브라질까지 여객을 실어 날은 비행선으로도 활용됐다. 1914년까지 1600여 번 동안 3만여 명의 사람들을 실어 나르며 무사고로 운항했다고 하니, 내 머리 위로 여유롭게 떠다니는 하늘 고래처럼만 보이던 비행선이 과연 지금의 비행기처럼 저 높이와 저 속도로 대서양을 어떻게 날아다녔을지 만화처럼만 느껴지기도 했다.



프리드리히 하펜 도심이 모던한 이유

그러나 이렇게 평화로운 풍경 속을 느긋하게 떠다니는 순한 고래처럼만 보이던 비행선도 세계대전의 하늘 위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었다. 독일의 세계대전 참전으로 제플린 비행선은 1차 세계 대전에는 영국과 프랑스 상공에 거대한 양의 폭탄을 퍼붓는 수송선으로 활용되었고, 2차 세계 대전에는 나치의 군수용품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또한 세계 1, 2차 대전 사이에 독일 지역을 통치했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제플린 비행선 회사를 소유한 휴고는 나치를 대항할 가장 유력한 정치적 인물로까지 오르내렸고 실제로 나치 지배 후에도 나치정권을 반대하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때마침 독일을 떠나 미국에 착륙하던 제플린 비행선이 불에 탔던 사건인 힌덴부르크 참사가 생중계되는 악재가 겹쳐 결국 그는 회사의 경영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사고 직전 뉴욕 상공을 지나던 힌덴부르크 비행선
폭발하는 제플린 비행선 앞의 사람들이 얼마나 작은지, 규모를 실감하게 하는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그렇게 제플린과 휴고가 불굴의 의지로 개발한 비행선을 만들었던 항공 운수 기지는 나치의 주요 군사 기지로 활용되었고, 그래서 프리드리히 하펜은 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도시의 3분의 2 정도가 초토화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프리드리히 하펜에서 보는 반대편 스위스의 보덴 호수의 풍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도심의 모습이 그다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프리드리히 하펜 도심은 나치시절 독일 서남부 지역의 주요 군사기지가 있던 탓에 보덴 호수 근처에 위치한 독일의 마을이나 도시 중에서도 전쟁 이후에 복구한 건물들이 많다.


반대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독일 보덴 호수 지역 중 유일하게 공항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기도 해서 콘스탄츠보다는 접근성이 편리한 부분도 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고 여겨지는 스위스 취리히나 독일 슈투트가르트 공항보다는 노선이 많지는 않지만 독일과 유럽의 주요 공항을 오가는 노선이 있다고 하니 보덴 호수를 방문하는 분이라면 참고하시길 바란다.



프리드리히 하펜의 풍경을 즐기는 법

덧붙여 자동차, 기차, 페리와 비행기까지 프리드리히 하펜을 둘러볼 수 있는 방법 외에 특별한 방법이 하나 더 있다. 바로 100여 년 전에 만들었던 그 채플린 비행선을 타고 보덴 호수 위를 돌아보는 방법이다.


스위스 언덕과 알프스가 보이는 보덴 호수 풍경(출처: ZeppelinNT)


날씨가 화창해지는 4월부터 보덴 호수 지역 위로 코스에 따라 45분에서 1시간 정도를 비행선을 타고 풍경을 감상하는 프로그램이다. 유럽 사람들에게도 부담스러운 가격을 책정하고 있긴 하지만, 제플린과 휴고, 그리고 비행선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알게 되고 나니 나에겐 스토리로써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물체가 된 것 같다.



하지만 비행선을 타지 못한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프리드리히 하펜 호숫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 느낌을 받을 테니까. 반짝이는 모든 것은 금이라고 믿는 레드 채플린의 노래, Stairway to heaven 가사 속 소녀는 비행선을 타지 않아도, 보덴 호수가를 걷는 것만으로도 반짝이는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프리드리히 하펜은 보덴 호수에서 접근성이 가장 좋은 곳 중 하나이며 동시에 호숫가 풍경이 경이로운 곳 중 하나다. 병풍을 가로로 세워둔 것처럼 가장 밑단에는 보덴 호수가, 두 번째엔 초록의 스위스 언덕, 세 번째엔 언덕 뒤로 솟아오른 스위스의 설산, 마지막으로 그 위를 덮은 하늘이 빼곡하게 우리의 시선을 채운다.



이와 함께 호숫가 산책로에 위치한 프리드리히 하펜 성과 프리드리히 하펜 항구, 그리고 제플린 관련 박물관까지 생각보다 볼 것이 많은 도시에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보덴 호수를 여행할 때 기억할 것, 여유롭게, 넉넉하게 풍경을 즐기길 바라본다:)



덧붙이는 이야기:

그래서 제플린과 레드 제플린은 무슨 관계인데?


남편이 프리드리히 하펜에 와서 내게 처음 물었던, 제플린을 아냐는 질문에 내가 레드 제플린을 답하고 난 뒤, 남편이 말한 제플린이 제플린 백작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럼 레드 제플린이란 밴드의 이름은 어떻게 지었는지 궁금해서 다시 인터넷을 살폈다.


그리고 놀랍게도 레드 제플린 밴드 이름은 정말로 제플린 비행선에서 따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멤버들이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짓궂은 친구가 너네 밴드는 납으로 만든 풍선처럼 추락할 거야라고 말했고, 그 ‘납으로 만든 추락한 풍선’이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제플린 비행선, 힌덴부르크 대참사를 떠올려 ‘Lead Zeppelin‘이라는 이름을 밴드에 붙였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그들의 첫 번째 앨범에 나온 불타는 비행선이 제플린 비행선이다.


레드 제플린 1집 커버 속 제플린 비행선 (출처: 위키피디아)


200미터가 넘는 거대한 비행선이 활주로에서 기다리던 수많은 사람들 위로 서서히 추락하며 뼈대만 남은 채로 불타오르는 장면을 100년이 지난 지금은 유튜브로 보고 있노라면 영화 듄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던 두 이름이 도플갱어처럼 연결되어 있을 때, 제플린 비행선만큼이나 레드 제플린의 노래가 프리드리히 하펜 상공을 떠다니는 것 같다.


프리드리히 하펜에서 바라보는 보덴 호수와 스위스의 알프스산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나오는 노래들을 불러야 할 것 같지만, 이제부터는 왠지 프리드리히 하펜을 지나칠 때마다 레드 제플린의 노래들을 틀어 놓을 것 같다.


불타오르는 프리드리히 하펜역 주변 노을
그리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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