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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선인장 Apr 08. 2024

나의 행복 보고서

정말 살아 있어서, 살아 있는 것이 좋은 걸까?


이른 아침, 낯선 문자 하나

이상하게 일찍 일어난 아침, 독일어 공부를 하느라 한쪽으로 제쳐둔 핸드폰의 검은 화면 위에 문자 알림이 떴다. 모바일 부고장이었다.


내게는 무척 낯선 메시지였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도 학교나 사회생활로 만난 사람들 중에는 나만 저 외딴 지방이 집이었던 터라 지인들의 경조사가 생기면 서울에 사는 친구들처럼 일끝 나면 잠깐 들르듯 쉽게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래서 친구들도 말을 꺼내면 덧붙여 오지 않아도 이해한다고 말했던 경우가 많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지방도 모자라 해외에 살게 된 지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어가면서, 이런 소식들은 다른 친구들을 통해 어쩌다 들었으면 들었지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참이었다.


그럼에도 그 가끔 듣던 경조사 이야기 중 부고의 비중이 늘어나는 건, 그리고 그 소식에 익숙해지는 내가 신기하게 느껴지는 건, 어느새 내가 어느새 그런 나이가 되어가고 있는 건가 생각하던 요즘이었다.


어느새 우리가 엄마 아빠의 부모님이 아닌 나의 부모님이 세상을 먼저 떠나실 수도 있는 나이가 되었구나 싶던 참이라, 이번 부고장도 친구의 부모님 중 한 분이 돌아가셨나 보다고 생각했다.


풀고 있던 듣기 문제를 마저 끝내고 어쩜 이런 소식은 매번 들어도 무슨 말을 해야 괜찮은 말이 되는지를 매번 모를 수 있는지 당황하며, 문자를 열어보기 전에 한참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을 정리하던 참에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소식을 대륙과 시차를 건너 있는 나에게 굳이 들려줄 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시차가 있어서 내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볼 문자라는 것을 알았을 텐데, 그런데도 그동안 특별한 말이 없던 부모님의 소식을, 그것도 부고를 내게 전한 걸까? 왜?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핸드폰을 들고 부고장을 열어보는데 돌아가신 분의 낯선 이름 하나가 떠있었다. 친구 아버님의 존함이 이런 이름이었나 다시 읽어보는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다. 성이 달랐다. 순간 직감적으로 내가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 매번 오빠라고만 불렀던 친구의 남편분 성함이 이 이름이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빠의 이름이 이런 이름이었구나…

그런데 왜 오빠의 이름이 여기에?…‘


손이 떨리고 나도 몰래 눈물이 똑 떨어졌다. 머릿속으로는 뭔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았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하겠는 말이 감정으로는 가득 차서 나도 몰래 왜냐고 왜! 어떻게 된 거냐고 퍼붓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나도 정말 모르는 심정에 어떻게, 그리고 어떡해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되었어…


라는 친구의 짧은 답장에 나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오빠를 만난 적은 아이러니하게도 대학 졸업 전 친구가 처음 나에게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처음으로 소개해준 그 짧은 순간이었다. 잠깐 인사하러 들렀다며 인사를 나눈 그분을 만나기 전까지, 대학생이었던 친구가 얼마나 천진난만하고 순수하게 오빠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종알종알 알려주던 그 오래된 기억 속 모습이 순간 파동처럼 강렬하게 나를 흔들고 지나갔다.



드라마인지 삶인지

나는 서울에 사는 친구들보다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도 이동반경이 넓은 편이었고, 그 이후로 아프리카, 동남이시아, 유럽까지 돌아다녔고, 여행이 아닌 삶으로 일로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아무리 특별한 관광지더라도 지루해지는 일상부터 월드레코드에 남길만한 재난지역의 긴급구호 현장도 본 적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우리의 삶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드라마라는 것을, 그 타인의 드라마라고만 생각했던 이야기가 나의 드라마의 일부에 연결되어 있었음을 아프게 느낀 적은 드물었던 것 같았다.


분명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랬나라고 생각하기엔 왜 이리 낯설지 않지라는 질문이 따라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문득 이 이상한 감정을 느낀 것이 사실 그리 얼마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이런 황망한 부고를 듣고 믿기지 않아, 아는 사람들 모두에게 재차 확인했던 다른 기억이 이제 겨우 한 해를 조금 넘겼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율이 높다고 하더라도, 그 숫자 속에 내가 아는 사람들이 정말로 들어 있다고 하니 그 숫자가 더욱 슬퍼졌다.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여행을 할 때는 윈도쇼핑을 하듯 누군가의 삶을 아주 잠시 잠깐 스쳐 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낯선 타지에서 관광객이라면 가지 않아도 되는 출입국 사무실에 가서 비자를 연장해 가며 현지인보다는 짧지만 관광객보다는 조금 더 길게 누군가의 삶의 한 순간 머물다 간 친구로 외국에 살았던 경험이 많았다.


쓰나미나 초대형 태풍이 모든 것을 휩쓸고 가 마실 물도 맘대로 못 마시는 상황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었고, 일주일 동안 연락이 끊겼던 지인이 정말 염려하던 대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사고를 겪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나는 물론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런 일들이 일생에 한번 겪을까 싶은 특이한 일로 간주되어 사건이라고 불린다면, 누군가에게는 자신도 겪을 수 있고 친구도 겪을 수 있고 누구나에게나 일어날 수 있어서 일상이라고 부르는데, 이 다른 세상들이 한 세상에 공존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황망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무리 그래도 살지, 살아야지라는 소리를 하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나의 입 저 뒤쪽에 숨어있는 마음 한편에선 정말 그럴만한 세상인가, 그럴 수 있는 세상인가 갸우뚱해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마주하고는 조용해졌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한동안 나는 그럼에도 그분들이 그런 상황에서도 정말 살았어야 했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내가 그 사람이었던 적은 없어서 함부로 말을 할 순 없었지만, 이것은 어찌 보면 오랫동안 세상을 여행하며 간직해 오던 인간 존재 자체로서의 질문이었다.



왜 살아야 할까? 무엇이 나를 살게 할까?

무겁게 보이기도 하고, 심각해 보이기도 하고, 답이 있을까 싶기도 하면서 오히려 답이 왜 없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질문.


유엔이 해마다 발표하는 국가별 세계행복보고서 결과를 보며 기대수명과 일인당 국민총생산은 높지만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사회적 지원과 선택의 자유는 한참 저 아래 있던 한국의 결과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지인의 부고 소식을 들으며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하나하나 찾아보기로 했다.


한국은 한국 내 뉴스로 이미 한 시간 뉴스가 가득 차지만 독일의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사실 미국 못지않게 독일 역시 온 세상 뉴스가 자기네 뉴스인 것처럼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거의 모든 전쟁 뉴스를 메인으로 싣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서 마주하는 풍경과 뉴스 속 현실 모두 같은 세상에서 존재하는지, 종종 내가 어느 세상에 살고 있는지 혼이 나갈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한동안 누군가에겐 꼭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진짜 그런가를 스스로 몇 번씩 되묻곤 했던 시간이었다.


꽃이 피는 봄이 오면서, 그동안 아주 기나긴 침묵 속에 있던 그 질문을 하나하나 찾아내보기로 했다. 종의 기원 속 다윈이 뒤뜰의 풀 하나하나를 다 세어보며 관찰하고, 비둘기 한 마리 한 마리의 부리 털 꼬리 날개모양을 하나하나 파헤쳐본 것처럼, 나도 그래도 세상을 더 살아봐서 괜찮다고, 좋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들을 하나 둘 기록해보려고 한다.


거대하고 추상적인 행복 말고 아주 분명하고 구체적인 순간의 장면과 기억을 쌓아두고자 한다. 이건 유엔이 발표하는 전세계 사람들의 행복보고서가 아니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저장하는, 나만의 행복 보고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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