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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비누나 Mar 18. 2024

미국 회사 이직 1주일, 벌써 퇴사 마렵네?

그리고 나는 또 면접을 본다 

미국, 한국에서 다녀본 회사나 같이 일해본 기관까지 전부 세본다면 숫자가 너무 많아서 정확히 몇 군데를 다녀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대략잡아 한국에서는 약 30곳이 넘는 곳과 같이 협업이나 업무를 해보았고, 미국에서도 20곳 이상과 크고 작은 일을 해보았다. 정규직만 따지고 본다면, 한국에서는 항상 계약직이나 프리랜서로서 일을 받아 겸업도 자주 했었기 때문에 경험이 없고, 미국에서는 약 8곳의 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취업해 출퇴근 했었다. 여기엔 인턴쉽 직급도 있었고, 사원부터 대리, 팀장으로 다양한 회사에서 일했다. 미국에서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규모가 큰 회사 속 작은 팀에서 일해온 경험이 10년이 넘어가다보니, 이곳저곳 이직도 꽤 많이 해 보았다. 면접은 물론 셀 수 없이 많이 본 것 같다.


이젠 30대 중반에 접어들다보니, 취업만 하면 무조건 좋겠다는 시기는 지난지 오래고 일을 안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누군가는 자신의 자아 실현 또는 전문가로서 거듭나기 위해 회사에서 열정을 불태우고 살겠지만, 내가 10대 후반부터 아르바이트부터 다양한 회사와 장소에서 여러 일을 해보고 뼈저리게 배운건 나는 정말로 회사 생활이나 단체 생활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그들 나름의 불만이나 개선 여지가 있었겠지만, 표면적으로는 항상 좋은 피드백만 받아왔다. 


다니던 회사에서 내가 작업했던 남성복 

기본적으로 나는 회사 생활에 과한 열정을 가져오는 사람도 아니고, 일단 정해진 데드라인에 맞춰 여유롭게 일을 끝내주고 나와 관련된 팀원들이 업무처리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크고 작은 부분을 도와주는 것에 능숙하다. 굳이 업무에 자존심을 세우는 편도 아니고, 누가 틀렸다고 지적하면 내가 어떻게 바꿔주면 좋겠냐고 물어보고 빠르게 적용해준다. 내 이름을 건 회사도 아니고, 남에 회사에서 일해주는 내가 업무를 통해 자존심이나 자기 효용을 인정받는들 그렇게 자존감이 높아지거나 기쁘지 않다. 난 그냥 직장 동료, 매니저와 사이좋게 지내며 적당히 주어진일을 빠르게 끝내고 남은 쉬간에 내 하고 싶은 거나 하면서 설렁설렁 다니는 직장이 딱 좋았다. 안타깝게도 패션 회사에 이런 곳은 많지 않으나, 짬이 좀 차고 업무 효용이 높이지며 전 회사에선 충분히 가능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되려면, 이사급 이상의 리더들도 시키는 일만 엥꼬나지 않게 처리하는 것에 만족하고, 와리가리하며 회사를 이끌어나갈때 밑에 일하는 직원들을 삽질 시키면 안된다. 정확한 지시와 현실적인 목표에 만족하고, 본인 할 일만 잘하면 문제 생기지 않는 분위기여야 하는데, 개인 역량 개발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표현을 달고 온갖 쓸데 없는 프로젝트를 시키다보면 점점 내 본 업무와는 멀어지고 쓸데없는데 시간을 잔뜩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회사에 하나도 도움되지 않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쓰느라 중요한 일을 처리하지 못하게 하는 월급 낭비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걸 열정, 회사를 위한 애사심 개발용으로 사용하는 회사들도 많기에 요런 회사에 입사하면 '앗차, 잘못들어왔구나' 후회할때가 왕왕 있다.


이런 옷 저런 옷을 만들었습니다.

미국 회사는 그래도 워라밸이 좋지 않냐, 사내 분위기 자유롭지 않냐는 말을 듣곤 하는데 이거야 말로 구글이나 실리콘 벨리의 테크 기업들이 만든 이미지 아닌가 싶다. 실제로 한국 회사보다 훨씬 경직되고 수직적인 문화의 미국회사가 정말 많다. 자유롭다는 패션 회사조차, 미팅에서 직급이 낮은 어씨 디자이너들이 말만하면 가재눈을 하고 째려보고 추후에 매니저를 내리갈굼 하거나, 일이 너무 물려 인력이 부족하다 말이라도 했다간 니 역량부족이라는 피드백만 돌아는 미국 회사. 합죽이 상태로 회사를 다녀야만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직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피드백을 받는다. 참고로 이름만대면 알만한 규모의 미국 내 대기업인데도 이러니, 말 다했다. 


게다가 승진을 계속 하려면, 이사급들과 골프도 치러다니고 개인적인 친분을 열심히 다져야만 승진하는 모습도 왕왕 보이니, 미국 회사가 좋다고 말하시는 분들은 정말 유니콘 직장을 다니던지 아님 미국 생활 기간이 짧아서 겉으로만 보이는 미국인들의 친절함, 웃으며 아무말도 안하고 넘어가는 모습을 포용성이 있다고 올려치기 해주는 듯 하다. 실상은 미국인들의 친절함과 웃고 넘어가주는 점은 정말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라, 차라리 누구 한 명이 크게 실수해서 자기가 업무 평가를 비교 대비 잘 받길 원하기에 계속 실수하도록 두거나 내 일이 아니니 신경끄고 속으로 비웃는 경우도 많다. 미국인들이 비교했을때 업무 실수도 잦고, 외국인이고, 새로들어온 신입을 상대로 내 업무 평가를 높게 올려치기 하기 좋기때문이다. 내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건, 나도 알고 싶지 않았으나 정말 개인적으로 친해지는 미국인 직원들이 뒷담화나 이야기 하는 걸 보며 깨닫게 된 적이 많다.


나름 프로 이직러로 살아왔는데, 원하든 원하지 않든 회사가 처음엔 좋더라도 나중에 새로운 리더쉽이 들어와 이상해지거나 분위기가 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느 회사든 편해지고 나면 정말 엉망진창인 시스템 속에서 대충대충 넘겨버리기 때문에, 실력이 좋아지기도 어렵다. 그리고 연봉이 낮은 패션 업계 특성상 옮기지 않는다면 정말 내 연봉은 기가차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여기저기 옮기다보면, 가끔 정말 별로인 회사에 들어가 광속 퇴사를 할 때도 많은데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 1주일 다녀본 결과, 이 회사도 오래 다니긴 글렀다. 


이것도 만들고요. 

한국 서울에도 지사가 있는 현 회사는 의료기기 업체로 미국 내에서 관련 업계 1위 규모다. 해당 기업 내에서 수술복, 환자복 등 다양한 의류 상품을 개발하는데, 여기서 패턴 등을 개발하는 역활을 맡게 되었다. 기존 트렌드 중심의 패션과 다른 분야라 새로운 것도 배우고, 집에서 출퇴근도 전 회사에 비해 가까워 이직을 수락했다. 전 회사에서 약 4년 정도 다니다 이직했으니, 꽤 길게 다녔다.


전 회사를 4년간 다니는 중간에 3개월간 이직한 경험이 있었지만, 직장 내 괴롭힘 등의 문제로 양심 선언하고 광속 퇴사 후 복귀했다. 다만 코로나 시대 재택근무를 하던것과 달리 사무실 복귀로 바뀌며 시카고에서 미시건으로 3시간가량 출퇴근을 해야해 매주 비행기로 출퇴근해왔다. 이러한 생활을 1년간 하다보니 너무 지쳐서 집 근처 회사로 이직하려고 계속 노력해왔는데, 특이하게 시카고에는 의류 회사들이 많이 없어 관련 포지션을 찾는데 큰 애를 먹었다. 현 회사는 몇 안되는 의류 관련 포지션이 있는 의료 기기 회사로 입사하게 되었으며 규모나 연봉 면에서 전 회사와 살짝 나은 부분이 있어 이직을 결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주일 출근해보니, 벌써 퇴사가 마렵다. 단순히 회사에 일하러 나가는 것이 힘든걸 넘어, 여러 문제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먼저, 면접 단계에서 알기 어려운 회사의 실태를 실제로 근무하게 되며 볼 수 있게되니 얼마나 시스템이 엉망진창인지 알게되었다. 놀랍게도 회사 업력이 그렇게나 긴데도 불구하고, 시스템이 애초에 망가진채로 굴러오다보니 더 이상 고칠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선 시스템이 되었다. 게다가 이걸 고치려고 많은 연봉을 받고 오는 리더쉽이 몇년 내로 퇴사해버리며 점점 더 망가진 상태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결국 이직한 내 입장에선 지금 당장 문제가 생길만한 것들을 막는데 급급해지게된다. 


요런것도 합니다

두번째로는, 생각보다 딱딱한 조직 문화와 감시가 팽배한 분위기가 다소 부담스럽다. 기존에 패션 회사들은 기본적으로 성향이 자유로운편이라, 정해진 데드라인을 중심으로 필요한 업무만 완성시킨다면 몇시에 점심을 먹든지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미팅도 최소한으로 줄여 업무 자체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주로 완성되었고, 과한 미팅이 팀 내에 문제를 만든다 생각해 굵직한 미팅외엔 개인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나누어진 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니 미팅이 팽배한 보수적인 기업 문화에 상당한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점심도 못 먹고 미팅한들 성과가 나오겠는가? 이렇게 함으로서 어떤 장점이 있는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않는다. 전체를 총괄해야하는 리더쉽 포지션들은 숲을 보는 눈을 가지기 위해서 들어간다고 하지만, 실제로 업무를 진행하는 일꾼들은 나무를 심는 시간도 모지란데 자꾸 숲을 보라한들 무슨 도움이 되는가? 


게다가 첫 주를 출퇴근 해 보니, 경력있는 중년 매니저들을 위주로 팀원들이 전부 굉장히 젊은 사람들 밖에 없었다. 이 직장이 전부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거나 두번째 직장이라, 회사들간의 비교가 어려운 젊은 직원들을 열정과 가능성이라는 당근을 앞에 흔들거리며 자발적 야근을 독려하는 분위기였다. 팀원들 중에서도 경력이 많은 3040대들이 포진되어 있어야 쓸데없는 프로세스나 프로젝트를 과감히 중단시키고 반항할줄도 안다. 젊은 사원들만 있다보니, 전부 예스맨이자 번아웃에 고통받는 분위기였다.  내 매니저 역시 40대 초반으로 본인이 처리할 수 있는 일 외 너무 많은 쓸데 없는 프로젝트와 각종 미팅때문에 실제 업무를 깜빡하거나 정신이 없는 모습이 특징적이었다.


입사 첫 날부터 1주일간, 업무에 필요한 프로그램은 커녕 세팅도 제대로 되지 않아 기본적인 업무로 할 수 없었는데 이사급은 얼른 내가 프로젝트를 시작하라는 압박이 내려와 생각보다 빨리 퇴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내가 수행하기로한 포지션의 업무 외 각종 업무 추가가 입사하자마자 되는 걸로 봐서, 정말 중구난방으로 모든 일을 해내야하겠구만..이라는 예상이 되니 더 머리가 아팠다. 


퇴사 마려워 


세번째로는, 나와 경력이 비슷한 전임자와 내 연봉차이가 상당히 난다는 점이다. 전임자를 링크드인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봤는데, 같은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꽤 큰 차이가 났다. 게다가 전임자가 3개월만에 퇴사를 하고 새로운 회사로 옮겼는데, 상당히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었다. 그 전임자의 개인 성격차일수도 있어 일단은 이직을 수락하고 업무를 시작했는데, 역시나가 적시나, 전임자 말이 공감갔다. 3개월만에 광속 퇴사한 이유를 실제로 피부로 겪다보니 3개월이면 오래다녔군 싶을 정도였다. 능력이나 여러모로 경력 연차도 비슷한데, 내가 전임자보다 앞자리수가 다른 연봉을 받은건 이미 결정되어 있던 내 휴가 때문이라고 밖엔 생각되지 않는다. 근데 내가 휴가 기간동안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무급으로 휴가를 갔다오는데 왜 연봉이 달라야하는건지, 그들의 이유가 이해가지 않았다. 일단 출퇴근이 힘들어 일단 들어왔으나, 이직하고 보니 아무리생각해도 불공평하고 나아가 보너스 체계도 입사하자마자 입사전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해 참으로 이해가지 않았다. 


내 연봉이 그리 높지도 않은데, 과한 열정과 번아웃이 팽배해보이는 시스템이 엉망진창인 회사에서 내가 딱히 회사원이자 테크니컬 디자이너로서 성장할만한게 있을까? 물론 배울점은 있을 것이다. 최악의 회사에서도 배울점 한 두개는 있으니까 말이다. 현재까지 보면, 비싼 프로그램은 가지고 있어서 해당 프로그램이나 열심히 써볼예정이다. 


어쨌든 따지고 보면 끝도 없지만, 이직한지 1주일만에 꽤 많은 불만사항과 부조리함이 눈에 보이다 보니 벌써 마음이 뜨고 있다. 이직은 하면 할 수록, 좋은 회사와 별로인 회사가 눈에 빠르게 보이는게 장점이자 단점인듯하다. 마음에 드는 시카고의 유명 패션 회사에서 포지션이 떠서, 1차 면접을 끝냈다. 거기가 어떻게 될 진 모르겠지만, 제발 좀 전 회사처럼 몇 년 조용히 다닐만한, 집에서 가까운 회사자리가 뜨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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