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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M Aug 16. 2024

너의 기원

프랑스에서 쓰는 일기





5 Juillet 2024



“너의 기원은 어디야?”


한국어로 표현하면 다소 어색한 문장이다.

더욱이 이 질문을 한국에서 들었더라면 더 어색했을 거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굉장히 흔한 일이다.


내 동료들만 봐도, 아이리시-프렌치 혼혈, 브라질리언-포르투기즈 혼혈, 이탈리안-프렌치 혼혈, 모로칸-알제리안 혼혈…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 단기 거주자를 제외하면 대략 180만 명이 살고 있다. 전체 인구로 따지면 4퍼센트 내외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이민과 혼혈에 굉장히 폐쇄적인 국가다. (물론 앞으로는 불가피한 상황에 놓여있지만) 그래서 서로의 기원을 특별히 물을 일이 없었다. 광복 이후 혼혈 비율을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으나, 현재는 아주 조금 증가해서 연간 출생 신생아의 3.3% 수준이다.


그에 반하면 프랑스는 유구한 이민과 혼혈의 역사가 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2차 대전 이후, 수 많은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인들이 프랑스로 이주했다. 1960년까지 이어진 이 세 나라로부터의 이주 행렬은 160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 뒤를 이어 북아프리카인들과 피에 누아르(Pied noirs)가 있다. 그리고 60년이 흘러 2세대가 지났다. 얼마나 다양한 각자의 기원이 이곳에 빽빽이 섞여 살고 있는가? 우리가 잘 아는 ‘그’ 정당의 틱톡커도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았는가?


‘너는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보다

‘너의 기원이 어디냐?’는 질문이 더 달갑다.


그 질문은 우선 나의 국적을 전제하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당신은 지금 프랑스에 살고 있고, 내가 당신의 국적을 알지는 못하지만, 당신의 기원을 알 수 있나요? 처럼 들린다.


반대로 너는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서부터 나를 이미 외국인으로 인식하는 느낌이다. 혹은 정주주의를 갈구해 이 곳에 온 불쌍한 이방인으로 치부하는 것처럼 들린다.


한국에 살았더라면 나도 끝내 이 두 문장의 차이에 대해 골몰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 곳에서 완전한 타자, 완전한 이방인으로 살아내고 나서야 겨우 깨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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