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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규 Jan 22. 2022

순직 동기생들을 추모하며...

다음 주 토요일은 공군사관학교 39기 졸업생들 중 최초의 순직자인 故 김준호 공군 중위의 순직 30주년이다.

그런데 다음 주는 설 명절 연휴의 시작이라 1 주일 앞서 같이 비행훈련을 받았던 동기생들과 그를 찾았다.

그를 찾는 김에 또 다른 순직 동기생 故 엄상호 중령과 故 박정우 대령도 찾았다.


공사 39기는 3명이 임무 중 순직했다. 다른 기수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의 순직자이다.

공교롭게 3명 모두 F-5E/F로 비행 중 순직했다.


세상에 어디 사연이 없는 인생이 있을까만은 이들 3명의 사연은 모두 드라마이다.

유족들의 동의만 있다면 영화로 만들어도 될만한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공군 중위 김준호(공사 39기. 23세).

공군 제16전투비행단 206 전투비행대대 훈련조종사.

1992년 1월 29일  오전 11시 울진 후포 앞바다 상공에서 전술기동훈련 중 왼쪽 주익 leading edge flap broken으로 조종불능 상태에 빠져 비상탈출 후 순직했다.

(그는 홀어머니 슬하의 1남 2녀 중 둘째였다. 서울 소재의 명문대에 동시 합격했음에도 가세를 살펴 등록금 없이도 공부할 수 있는 공군사관학교를 선택한 효자였다. 비상탈출 중 후두부에 크게 부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채 해상에 표류 중인 사고자를 발견 생존을 확인했다. 구조작업 중 구조헬기가 추락할 위기가 닥치자 사고자를 결박했던 호이스트를 끊어버리고 이탈하다가 사고자를 잃어버렸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시신도 없이 정복과 계급장만으로 3일 만에 장례를 지내고 보름 후 시신이 어선의 그물에 걸려 올라와 다시 한번의 장례를 지냈다.)

장병 1 묘역 안장.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故 김준호 중위

오른쪽 두번째가 故 김준호 중위



공군 중령 엄상호(공사 39기, 36세), 선임 편대장/교관.

공군 소령 한세희(공사 43기, 33세). 분대장.

공군 제10 전투비행단 201 전투비행대대.  

2004년 3월 11일 오후 2시 47분 서해 상공에서 3기 공중전 훈련 중 공중충돌 후 순직했다.(엄상호 중령은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실력으로 미제 7 공군사령관 부관을 오랫동안 수행한 유능한 장교였다. 사천에서 중등 비행훈련교관을 마치고 전투 대대로 복귀한 한세희 소령은 충돌 순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엄상호 중령은 비상탈출이 안된다는 교신을 남기고 추락했다. 이들은 사고기들의 잔해가 바닷속에서 발견되었음에도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단 3일 만에 머리카락으로 장례를 지냈다. 한세희 소령의 미망인은 6개월 후 어린아이를 남기고 남편의 뒤를 따라갔다.)

장병 2 묘역 안장.

좌측이 故 한세희 소령, 우측이 故 엄상호 중령

한세희 소령의 묘에는 배우자가 합장되어 있다.


공군 대령 박정우(공사 39기, 42세), 105 전투비행대대장.

공군 대위 정성웅(사후 118기. 28세).

공군 제18전투비행단 105 전투비행대대.

2010년 6월 18일 오전 10시 30분

강릉 안목 상공에서 기지 귀환 중 활주로 1마일 앞바다에서 비상탈출 보고 후 순직했다.(박정우 대령은 동년 3월 4일 비행훈련 중 부하 2명과 함께 순직한 故 오충현 대령의 유고에 따라 부임한 105 전투비행대대 대대장이었다. 105 전투비행대대는 3개월 만에 잇달아 대대장을 잃는 비극을 겪었다. 공군에서 전투비행대대장이 비행 중 순직한 단 2건의 사고였다. 순직자 2명 모두 비상탈출에 성공했으나 구형 사출좌석으로 인해 낙하산이 펼쳐지기 전에 바다에 추락 순직했다.)

장병 3 묘역 안장.

좌측이 故 박정우 대령  우측이 故 정성웅 대위


박정우 대령의 가족들이 갖다 놓은 아버지와의 추억


순직 조종사들의 운구 행렬을 떠나보내기 위하여 도열한 장병들




최초 순직 동기생 김준호 중위를 장교 1 묘역에 묻고, 엄상호 동기는 장교 2 묘역, 마지막 순직 동기생 박정우 대령을 장교 3 묘역에 묻었다.


이들은 1992년~2010년 사이에 공중에서 산화한 조종사들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어디 이들뿐이랴?


강원도 대관령, 태백산, 평창, 정선, 오대산, 치악산, 황병산,

경상북도 안동, 예천, 김천, 대구, 구미, 상주, 학가산,

경상남도 하동, 밀양, 남지, 남해, 사천, 금오산, 와룡산

경기도 이천, 여주, 청계산, 수원

충청북도 청주, 충주, 속리산

충청남도 대전, 공주, 부여, 계룡산

전라북도 군산, 정읍

전라남도 광주, 목포, 무등산, 지리산

제주도 한라산.


대한민국의 동/서/남해와 모든 산천에 핏빛 붉은 마후라를 두른 이들의, 그 마후라보다 짙은 색깔의 피가 뿌려지지 않은 곳이 없다.


무심코 지나다가도 문득문득 그들의 흔적과 얼굴, 미소가 생각나면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는 한다.


그리고도 수많은 육해공군 해병대 장병들이 국가와 그들의 가족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리고 올해 말이면 그 넓은 대전 현충원이 가득 차 버린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나이들은 저기에 그들의 영현이 있음을 알면서도 단 3일 만에 모발이나 군복만 가지고 장례를 치르면서도 유가족들은 서러움의 눈물만을 속으로 삼켰고,

이번 화성에서 순직한 후배도 시신도 없이 유품만으로 단 3일 만에 장례를 치렀고, 그 유족들은 얼마 안 되는 보잘것없는 퇴직금과 유족연금만을 받는데,

해상사고로 사망한 이들은 몇 년이 지나도록 수천억 원을 들여 선체를 인양하고 유해를 찾아낸다.

심지어는 남대서양 심해에 가라앉은 화물선 선체와 시신마저 인양해달라고 한다.


난 지금의 분위기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들도 군인들처럼 시신을 찾기도 전에 3일 만에 장례를 치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나의 전우들을 단 3일 만에 유족들이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보낸 것도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온당한 예우 같지가 않다.


다만, 수많은 군인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그들의 목숨을 바쳤는지 기억해 주고, 그 유족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위로해 주기를,

그리고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몸과 마음의 장애를 얻은 순직/전사자보다 훨씬 많은 수의 상이군경들의 희생에 감사하고 그들의 남은 삶을 충분히 지원해 줬으면 고맙겠다.


Rest in Peace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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