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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폐인작가 Dec 31. 2024

2024년의 그런 날들

그런 날이 있다. 평소에 생각지도 않던 것이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런 날이.


1. 산책 


산책하기 좋은 날씨가 부르기에 집안에서 늘어져 있던 나는 못 이긴 척 나와 걸었다.

걷다 보니 커피가 마시고 싶어 동네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며 가게 안을 구경했다. 우드톤의 인테리어, 흘러나오는 재즈, 수많은 디저트들…

 

그러다 문득, 여기서 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일하면 꽤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여기서 일하면 어떨까?’ 하는 곳에 일하게 되었다.


2. 지면


대형 서점에 갔다.  원래는 1층과 지하만 둘러보는데 그날은 유독 2층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각종 문제집과 월간 정기간행물 등을 구경하다 ‘좋은 생각’을 발견했다. 소형책자를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여기에 글이 실리면 좋겠다.’


그 생각과 함께 맨 뒷페이지를 폈다. 응모하는 방식과 방법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종이에 내 이야기가 잉크로 한 글자 한 글자 적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나는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글이 실리면 좋겠다’ 했던 곳에 내 사연이 두 번 실리게 되었다.


3. 검은 깃털


티비 위에 만두가 앉아있었다. 왕관앵무새가 티비 위에 앉아 있는 건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날은 유난히 한쪽 날개에 길게 삐져나온 검은 깃털이 눈에 들어왔다. 윙컷을 해줘야지 하면서도 그냥 ‘한쪽만 깃털이 길게 나왔네.’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검은 깃털을 보기만 했다가 만두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다.


허망하게 날아가버린 만두 때문에 나도 가족도 슬펐다. 나는 만두를 찾는 글을 정신없이 작성하다 검은 깃털을 떠올렸다. 그래서 카페와 동네 앱에 만두에 대한 특징을 적을 때 그 삐져나온 검은 깃털을 적었다. (천적에게 공격당해서 뽑혔을 수도 있는 문제였고, 이미 사체가 됐을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나는 무조건 적었다. 이상하게도 그 깃털만 생각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자로부터 ‘검은 깃털이 삐져나온’ 만두의 사진을 받았다.


4. 독후감 공모전


너무나 게으른 나는 한 해에 걸쳐 독후감 공모전을 여러 번 시도했다. 그리고 떨어지는 것에 면역이 없던 나는 네 번째 떨어졌을 때 울적했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낙담했다. 더는 글쓰기가 하고싶지 않았다. 독서는 더더욱 하기 싫었다. 그렇게 매일매일 무의미하게 영화를 보고 이리저리 인터넷을 뒤지며 시간을 보내다가 새벽에 컴퓨터를 켰다.


나는 음악을 들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음색에 취하고 눈을 감았다가 ‘독후감 공모전’이 생각났다. 나는 대형 공모전 사이트에 독후감을 검색했다.  쇼핑하듯 고르고 고르다가 두 곳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문득 ‘저 두 곳에 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아직 남았고 나는 도서관에서 지정해 준 책 하나를 선정에 읽고 나만의 감상을 적었다. 조각난 내 독서 감상문을 이어 붙여 두 편으로 만들었고 두 곳에 지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후감을 내고 싶었던 두 곳 중 한 곳’에서 축하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렇듯 올 한 해는 생각대로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며칠 전부터 나는 특정 젤리가 먹고 싶었다. 누구나 다 아는 새콤하고 달콤한 맛을 내는 일자형의 조금 딱딱한 젤리 말이다. (젤리가 맞나? 카라멜인가? 어쨌든 상관없다.)


편의점에 가서 사면 될 일이지만 집 밖을 나서면 매번 까먹었다. 우습게도 그랬다. 집에 들어오면 먹고 싶었고 그렇다고 그걸 사기 위해 굳이 이 추위를 뚫고 저녁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어젯밤, 입안에서 새콤달콤이 강렬하게 느껴져 살짝괴로웠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일은 꼭 잊지 말고 사 오자, 퇴근길에 사 오자. 메모까지 하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거실 식탁에 그토록 먹고 싶던 젤리 두 개가 있었다. 알고 보니 엄마가 지인한테서 받은 것이었다. 나는 좋아서 아침도 먹지 않고 젤리부터 까먹었다. 새콤달콤한 딸기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어젯밤 상상했던 강렬한 그 맛 그대로였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텔레파시라도 통한 걸까? 24년의 마지막 날의 시작을 기분 좋게 맞이했으며 저녁 먹기 전까지 내가 올 한해 배운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글을 쓸 때 조금 힘을 빼자.

공모전에 되도록 많이 응모해도 된다. 대신 다양한 주제로 부지런하게 많이 써놔야 함.

떨어지거나 실패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으며,

나는 너무 멀쩡하다.

보상을 받게 된다면 노력한 나 자신을 칭찬할 줄 알아야 한다.

돈은 벌자. 사실 돈이 아니라 사회활동을 해야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운동과 스트레칭은 자주 해야 한다.

외국어 공부해야 한다. 특히 영어. 영어로 검색하는 정보량은 압도적이다. (재밌는 것도 많음)

책을 많이 읽고 앞서 나간 작가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건 최대한 배우자.

그러나 내가 쓸 글과 아이디어에 제한을 두지 말고 상상과 망상을 해야 한다.

나는 스스로 발전시킬 수 있는 것들이 많고 통제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무엇보다 나는 자유롭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우리는 된다.

by 석가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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