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운 사랑
"이다혜 기자의 책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에는 "나 자신이 딸이었던 기억,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기억을 잃어가며 나이는 먹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이를 더 먹어 부양의 책임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지게 되면 다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기억'을 곱씹으며 나이를 먹나 보다. 부쩍 할머니 이야기를 자주 하는 엄마를 보면.
내 (외)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아니 엄마가 결혼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엄마가 대학교 1학년 때, 다시 말해 지금 내 나이보다도 어린 나이에 엄마는 당신의 엄마와 헤어졌다. 그러니 나는 할머니를 모른다. 엄마의 엄마로만 듣고 떠올려보았을 뿐. 내가 들은 엄마의 엄마는 멸치볶음을 맛있게 하는 분이었다. 너무 달지도 너무 짜지도 너무 딱딱하지도 않게 슥슥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의 엄마는 계란찜에 소금 대신 새우젓을 넣었다. 딸에게 새우젓이 맛의 비결이라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식혜도 꼬박꼬박 해 놓아 사 먹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는 식혜는 사 먹어도 계란찜에는 꼭 새우젓을 넣는 어른이 되었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 이야기를 하며 자주 당신의 어리석음을 회고한다. 그중 하나가 할머니의 권유를 뿌리친 일이다. 당시 서울에 있는 미술대학교에 합격한 엄마에게 엄마의 엄마는 그냥 지방 교육대학교에 진학해서 미술 선생님을 하라고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딸을 강하게 말렸다. 그러나 스무 살의 정 모씨는 시골보다 더 큰 세계에 나가고 싶어 상경했고, 선망하던 의류회사 직원이 되었으나 결혼하여 나를 낳은 후 경력단절 여성이 되었고…. 하여튼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게 왜 어리석은 일이냐며 짜증을 내지만, 그리고 실제로 젊은 엄마의 선택을 지지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한다. 엄마가 서울에 있을 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고, 엄마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으니까."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랑은 맛으로 기억된다> (솔직히 말해서, 웹진 채널예스, 2019.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