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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학 May 28. 2023

도서관 4

수요일 아침, 사서 선생님은 우리에게 바코드 스캐너를 주며 모든 책들의 바코드를 찍게 했다. 장서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며 내가 책을 꺼내면 지우가 바코드를 찍고 다시 집어넣는 식으로 함께 일을 했다.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들을 한 번씩 보고 만져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일을 처음엔 즐겼다. 지금까지 읽은 책을 되돌아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뿐, 오천권이나 되는 책을 찍는 작업이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힘들고 지루해졌다.
스캔을 다 끝내지 못하고 세 시간이 지나갔다. 작업을 멈춘 책장 위치와 책을 표시한 뒤 선생님에게 갔다. 선생님은 자기가 오후부터 목요일까지 이어서 스캔 작업을 할 것이고 금요일에 다시 우리가 이어받아서하면 된다고 얘기했다. 하루이틀로 끝나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는 듯했다. 열두시가 넘자 선생님은 점심 시간이라며 우리를 남겨 두고 도서관을 비웠다.
나는 두시까지만 도서관에 남아 책을 읽다가 집에 갈 생각이었다. 점심을 먹어야했기 때문이면서도 선생님이 혼자 돌아다니며 바코드를 찍고있는데 안도와주고 책을 읽는 상황이 눈치보여 오래 있기도 힘들 것 같았다. 지우에게 점심을 먹지 않느냐고 물어보자 가방에서 챙겨온 크림빵 두 개를 꺼냈고 한 개는 나를 주었다. 같이 열람실에 앉아 독후감 방학 숙제 얘기를 하며 빵을 먹었다. 사서 선생님에게 꼬투리를 잡히기 싫어서 다 먹은 후 책상에 흘린 부스러기와 포장지를 깔끔히 치웠다.    
빵을 다 먹고 나는 교실을 찾았다. 방학 숙제 유인물을 두고 온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실 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열쇠가 있는 교무실도 방학이라 열려 있지 않을 것이기에 유인물은 지우에게 빌릴 생각으로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복도 끝 교무실에서 나오는 담임 선생님이 보였다. 마주 보고 걷다가 가까워지자 선생님이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희원아, 방학인데 학교는 무슨 일이니?”
“도서관에서 봉사 활동하러 왔는데 오늘은 끝났어요.”
“아…사서 선생님이 시키셨어?”
“네, 방학 전에 먼저 해달라고 하셔서 친구랑 하고 있어요.”
“그렇구나…선생님도 오늘은 도서관 때문에 학교에 왔어. 사서 선생님, 방학 끝나면 그만두시는 것 알고 있지?”
“네? 몰랐어요!”
“얘기안하셨구나. 자기 마음대로 조기 퇴근한다는 것은 학교 도서관에 문제가 있어서 생긴 일이니까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것 같아서 내가 교감 선생님께 도서관이랑 사서 선생님 관리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거든. 너한테도 따로 얘기해줄 걸 그랬다.”
 
“결국 근태 문제도 발각됐고 내부에서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3개월 정직으로 마무리가 됐는데 그러니까 사서 선생님이 그만두시겠다고 했다는 거야. 네가 이해할 지 모르겠다만 사서 선생님은 기간제 직원이거든. 어차피 도서관 이용자도 별로 없겠다, 학교에서는 그냥 사서 선생님을 새로 고용하지 않고 학생자치 도서부를 새로 만들기로 결정했대. 다음 학기부터는 학생들을 도서부로 모집해서 도서관 관리를 할텐데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담당 교사로 지정되었다는 거야. 이럴거면 계속 비밀로 할 것 그랬어. 아무튼 그래서 오늘은 사서 선생님께 도서관 업무 인수인계를 받으려고. 개학 전까지 출근하시는데 도서관 정리는 확실히 하고 가기로 교감 선생님과 약속하셨대.”    
 
담임 선생님은 내게 놀라운 소식을 퍼붓고 계단 위로 사라져버렸다. 교무실 문이 열려 있어 나는 열쇠를 갖고와 교실 문을 따고 들어갔다. 내 책상 서랍에서 유인물을 꺼내어 자리에 앉았다.텅 빈 교실을 한 번 둘러보았다. 방학이라 이런저런 물건들이 치워져 평소보다 넓어보였다. 눈대중으로 가늠해보니 도서관은 대충 교실 두 개의 크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작다고 느꼈었는데 꽤 큰 것이었다. 그만큼 책이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오전 내내 책장을 돌아다녀도 모든 책을 꺼내고 집어넣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놀라운 일은 여름 방학이 끝나면 그 큰 도서관에 사서 선생님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한 달만 눈치를 살피면, 그마저도 봉사 활동이 끝난 이후에 내가 도서관을 굳이 찾지 않으면, 사서 선생님을 볼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선생님과 지우 사이의 오해를 사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 사이에서 쓸데없이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서 선생님은 떠나기 전에 도서관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나와 지우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떠날 때가 되어서야 책임감을 갖고 제대로 일을 한다는 것이 의아하면서도 그마저도 일부는 우리에게 떠맞긴 셈이니 역시 성실한 어른은 아니라고 단정지었다. 성실하지 않은 어른은 학교에서 일할 자격이 없다. 일할 자격이 없는데 도서관에 앉아 일을 했던 사서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야만 했다. 나는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이유만으로 죄책감을 느꼈다. 좋지 않은 일이 두려워 책더미 뒤에 숨어버렸던 나 또한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교실을 나와 교무실에 열쇠를 반납한 후 도서관에 돌아갔다. 지우는 화장실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도서관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아서 집에 가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지우에게 인사는 하고 가려고 기다렸는데 삼심분이 지나도 오질 않았다. ‘나 먼저 간다’ 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도서관 문에 다가서자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사서 선생님이었다. 서둘러 인사를 하고 빠져나올 생각이었는데 사서 선생님이 나를 붙잡아세웠다.
“희원아 미안하다.”
“네?”
“선생님 방학 때까지만 일하고 그만 두게 되었어. 너도 알겠지만 도서관에 오는 사람이 거의 없잖니. 다음 학기부터는 김양미 선생님이랑 도서부 학생들이 도서관 운영할거야. 너도 도서부에 들어가렴. 김양미 선생님 너희 반 담임선생님이시지? 좀 있다 만나서 회의하기로 했는데 너도 도서부 들 수 있도록 추천해줄게.”
담임 선생님에게 이미 들었던 이야기를 사서 선생님은 근태 이야기만 빼고 내게 전해주었다.
“네…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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