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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Jan 20. 2021

나도 이 회사에 출근하고 싶다


<야근 없는 건축회사? 이거 실화냐?>    


 건축 회사의 동의어는 야근과 철야다. 그런데 여기, 워라밸이 가능한 건축 회사가 있다.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놀라울 정도의 업무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그에 걸맞게 정부로부터 ‘가족친화인증기업’ 장관상을 수상했고 서울시에서 ‘여성이 일하기 좋은 회사’로 선정기도 했다. 그런데 심지어 퍼포먼스까지 뛰어나다. 이 회사가 지은 양평의 회현리 주택은 2019년 ‘올해의 건축가 100인 국제전’에 선정되기도 했다. 어떻게 이 모든 게 가능할까? 건축업계에 혁신을 일으키고 있는 Q 대표에게서 그 답을 찾았다.   


         


<가짜 설계는 하지 않겠다>    


 Q 대표는 건축 기획부터 설계, 시공까지 원스톱으로 서비스하는 건축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농가주택 리모델링 사업 등 지역의 주택 프로젝트에 주로 참여하며 연간 1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12년 건축회사를 창업한 Q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는데 건축업계의 낡은 관행들을 혁신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했다. 이른바 ‘가설계’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건축 설계는 크게 3가지 단계로 나뉜다. 기획설계, 기본설계, 실설계이다. 건물의 구조를 결정하고 형태를 구체화하는 기획설계는 사실상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업계에서는 가설계라는 이름으로 폄하되거나 쉽게 인식되어지고 있다. 현장에서는 ‘진짜 건물이 지어지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니, 한 번 대충 지어주세요~.’라는 요구 아래 가설계가 이루어진다. Q 대표는 불필요한 비용, 과다한 인력과 시간이 투입되는 가설계를 하지 않기로 과감히 결심했다. 초창기엔 고객들의 볼멘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결과물로 불만을 잠재웠다. 결론적으로 Q 대표는 가설계를 하지 않는 과감한 결단을 통해 회사 내외부적으로 2가지 커다란 혁신을 이뤄냈다.              




<투명한 건축회사를 꿈꾸며> 


 Q 대표는 건축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관계’에서 ‘신뢰회복’을 꿈꿨다. Q 대표는 건축이 단순히 물리적인 것을 지어 올리는 일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 안에 엄청난 관계가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했다. 고객과 작업자. 즉 건축주, 설계자, 시공자, 하도급업체와 작업자들. 이 모든 관계에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했다.     


 사실 건축이라는 분야는 외부로 노출되어 있지 않은 분야 중 하나이다. 때문에 돈이 오고 가는 과정에서 잘못된 관행들도 많고 탈세, 부실공사 등이 종종 발생하며 외부로부터 신뢰성도 낮아 건축업자라며 폄하돼 불리기도 한다. Q는 건축가가 과다한, 엉터리 금액을 요구하지 않고 깨끗하고 투명한 자세를 가짐으로써 이러한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었다. Q 회사는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는 가설계를 없앰으로써 고객들에게 더욱 합리적이고 신뢰 가는 가격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이는 회사의 경쟁력 제고로 이어졌다.      


 이와 더불어 Q 회사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건축 기간 동안 인터넷 카페에 프로젝트 관련 방을 하나씩 개설해 건축주와 모든 작업 과정을 공유했다. 현장의 모습을 촬영해 올림으로써 건축주와 실무자가 시각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했다. 또한 프로젝트 시작부터 끝까지 실무자 간에도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애를 썼는데 그것이 결국 좋은 건축문화를 만드는데 일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정이 행복한 건축가가 행복한 집을 만든다>    


 건축가들은 말한다. ‘가족들이 이곳에서 편히 쉬었으면 좋겠어요.’ ‘이 공간은 이렇게 아늑하게 만들어 이곳에 머무는 가족들의 행복도가 높아지면 좋겠어요.’ 그런데 정작 그들은 그렇게 살지 못한다. 업무량은 많고 힘든데 상대적으로 보수는 적기 때문이다. Q 대표는 이런 현실에서 건축가가 하는 말은 그야말로 허구적인 이야기라며 이것을 혁신하는 것이 첫 번째라고 생각했다. ‘건축가인 우리부터 좋은 가족 문화를 잘 만드는 회사가 되자!’ Q는 어떻게 하면 개개인의 가정을 돌보고 가정에 집중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까에 대해 늘 고민했다.    


 가설계를 과감히 생략하면서 Q 회사에서는 야근과 철야가 거의 사라졌다. 야근을 최대한 근절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기 위한 노력도 병행됐는데 출근하자마자 20분간은 하루 업무를 짜는 데 집중하는 문화, 점심식사 후 15분간은 낮잠 자는 문화 등이 그것이다. 직원들의 생산성은 나날이 향상되었다.               




<직원들이 만들고 명명한 ‘천사 제도’>    


 Q 회사에는, 어린 자녀가 있는 여성 직원 R이 있다. R은 아이의 등하원 때문에 10시에 출근해 4시에 퇴근한다. R은 파트타임일까? 계약직일까? 프리랜서일까? 모두 아니다. R은 정규직원이다. 심지어 R과 같은 직원들이 꽤 있다. Q 회사에서는 아이를 낳아도 등하원, 돌봄에 대한 고민으로 퇴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경력단절 여성 제로 회사이다. 남자 직원들도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다녀오고 육아기 단축근무를 쓰는 건 두 말하면 잔소리다.         


 Q 대표에게 물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국내 유망 회사, 소위 잘 나가는 회사, 복지 좋은 회사라고 해서 다 가 보아도 이런 를 가진 회사는 처음 봤기에 진심으로 놀라서 물었다. 심지어 여기는 건축회사다. Q 대표는 담담히 얘기했다. 건축계에서는 설계나 기획 부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이 향상된다며, 그런 분들이 오히려 귀한 인재이고 본인으로서는 같이 일하고 싶은데 아이가 있으면 아무래도 시간의 제작이 있으니 맞추는 것뿐이라고 했다. 파트타임이나 신입을 새로 뽑는 것보다 경력도 있고 책임감이 있는 그들이 회사에 더 도움이 된단다. 그리고 이 제도는 본인이 아니라 직원들이 대표에게 먼저 제안을 한 것이고 자신은 그냥 수용한 것뿐이라며 별일 아니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건 별일이었다. 분명한 건 그러한 제안을 할 수 있는 조직 내 문화와 분위기를 만든 것은 Q 대표라는 사실이다. 직원들은 이 제도를 ‘천사 제도’라고 불렀다.      


 시간이 지나면서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분야의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상당수그런 분야에서 일하지만 대다수 여성들은 출산 후 아이와 일 사이에서 갈등하거나 결국 일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개인으로서도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도 손실이 크지만 아직도 누구 하나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다. 경력직의 퇴사는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피해가 따르지만 보통은 육아기 근로자들을 위해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기보다 여성 직원 뽑지 않는 쪽으로 더 쉽게 선택한다.       


 나 역시도 아이를 낳고 경력단절을 경험하며 정신적 혼란과 방황을 경험했다.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할 시기는 언제일까? 과연 할 수는 있을까?’ 친정과 시댁에서 아이를 봐주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아이를 남에게 맡기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특히 심리적으로 더 그러했다. 그렇다고 평생 일을 내려놓고 집에만 있을 생각을 하니 한없는 우울감과 무력감이 밀려왔다. 아이를 몇 년 키우고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됐을 때 내 앞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는데 나름 이름 있는 회사의 정규직 기자와 인지도 낮은 방송사의 프리랜서 기자였다. 후자를 택했다. 아이 엄마로서 내린 최고의 선택지라 생각했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인터뷰 내내 마음이 들끓었다. ‘나도 이런 회사에 다니고 싶다. 이런 회사가 늘어나면 좋겠다.’             




<저녁식사를 가족과 함께!>    


 Q 대표는 말한다. 가족이라는 단위가 가장 소중하다고. 건축에 있어서도 삶에 있어서도. 그런 초점으로 회사를 운영했을 뿐이고 그런 관점으로 집을 짓고 있다고. Q 회사의 캣치 프라이즈는 ‘저녁식사를 가족과 함께’이다.             



<집은 가족이다>     


 수많은 회사를 탐방했다. 이 회사 저 회사에 드나들다 보니 회사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회사 분위기가 읽힌다. 대표가 나서서 자랑을 늘어놓는 회사가 있고 대표가 없는 자리에서 직원들이 신이 나서 조곤조곤 회사를 칭찬하는 곳이 있다. 사실 대표가 아무리 자기 회사 자랑을 해대어도 직원들 표정이 어둡고 사무실 공기가 삭막하면 대표 말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듣고 배우지 않아도 보고 알 수 있다.         


 직원들이 자랑하는 회사야 말로 진짜 좋은 회사, 신뢰할 수 있는 회사이다. 그 어떤 광고와 마케팅보다 우수한 브랜딩 효과가 있다. 그런 회사는 기사도 더 정성껏 쓰고 싶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취업 자리로 소개도 하고 싶다. Q의 회사는 그런 회사였다.


 얼마 전 연남동을 지나다 한 카페에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을 보았다. 카페 유리창에 붙은 플래카드에 Q 회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반가워 괜히 핸드폰을 꺼내 그 플래카드를 찍었다. 휴대폰 액정 화면에 플래카드 문구가 보였다. ‘집은 가족이다.’ 나는 그 말이 진심임을 안다. 나도 이런 회사에 출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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