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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말이 Mar 02. 2020

꼭 정상이어야 하나요?

소심이의 관계 이야기

 나는 소심한 성격 탓에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면서 살아왔다. 꼬집어 보자면 집단에서 ‘정상’ 혹은 ‘평균’의 범주에 들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딘가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을까’, ‘내 성격을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하는 생각에 항상 사로잡혀있었다. 그러다 보니 운동을 할 때도 실수를 할까 봐 긴장하기 일쑤였고, 공부를 할 때는 물어보는 것이 조심스러워 남몰래 미리 공부를 해가기도 했다. 음식도 가리지 않고 먹으려 애썼고, 술자리에서 많이 취해 기억이 희미할 때면 며칠이고 같이 있던 사람들을 피해 다니곤 했었다.     


 그렇게 나의 사회생활은 평범해 보이고자 발악하는 고통스러운 생활이었다. 더 문제가 된 것은 그런 생활이 지속될수록 나도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곳에 가서는 이런 사람이었는데 다른 곳에 가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의 경계도 불분명해졌다. 각 집단에 맞게 나를 바꾸다 보니 진짜 나를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까지 나를 감추면서 사람들에게 소위 ‘정상인’으로 보여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그게 진정 의미 있는 일일까 ‘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교 모임에 관련된 일로 한 친구에게 늦은 시간 전화를 걸게 되었다. 마침 친구는 직장 회식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주량이 보통은 넘는 녀석이라 웬만해서는 취한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는데 어쩐 일인지 얼큰하게 취해있었고, 도무지 용건을 얘기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내일 다시 연락하겠노라며 통화를 끊으려는 내게 친구는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


는 평소의 그 친구 입에서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말을 또 그런 목소리와 말투로 어눌하게 내뱉었다. 친구는 항상 주변에 걱정을 끼치지 않는 친구였다. 대학시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친구는 늘 주변에서 뛰어난 축에 속했고 공부도 운동도 노는 것도 참 잘했다. 말주변도 좋아 주변에 따르는 사람들도 많았고 과대표를 하면서는 대외적인 활동도 곧 잘했었다. 나도 그런 친구 옆에서 도움도 많이 받았고 닮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그래서 ‘걔가 잘하고 있을까’ ‘별일은 없을까’ 하는 걱정을 그 친구에게만은 잘하지 않았던 것 같다.     


 친구는 빡빡한 사회생활과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시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위로가 될 만한 적당한 말조차 떠오르지 않을 만큼 우울한 친구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기만 하다가 “힘내”라는 말 한마디밖에 해주지 못하고 통화를 끊었다. 힘내라니... 참 위로가 되지도 힘이 나지도 않을 말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온 진심이 그러했다. 친구가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떤 선택을 해도 꼭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는 기분이 좋아졌을까. 나에게 털어놓은 만큼 마음이 가벼워졌으면 좋겠는데. 생각해보니 지내온 시간은 길었지만 처음으로 그 친구가 걱정되고 친구의 감정이 궁금해진 날이었던 것 같다.


 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 어른이 되면 꼭 그러해야지 하던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그게 꼭 좋지만은 않은 것이었을까. 걱정을 끼치지 않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덜 생각이 나고, 걱정을 할 때면 그 마음이 무색할 만큼 잘 해내고 있어 다음번엔 걱정을 안 하게 돼버린다. 그러다 보니 친구와도 가깝기는 하지만 아끼지는 않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친구의 고백에 이전에 쌓아두었던 벽 같은 것이 무너져 내린 듯 어느새 친구가 그 순간 가장 걱정되고 상처 받지 않길 바라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단지 힘들다는 한마디뿐이었는데. 늘 별 일이 다 생기고, 실수가 만연한 삶을 사는 나와 달리 늘 별이 없이 잘 해내는 친구이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이 형성되지 못했던 걸까. 근데 친구의 ‘힘들다’는 한마디에 그 친구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때론 힘들기도 하고, 못하는 것도 있고, 실수도 하는 보통의 사람임을 깨닫고 이제 진짜 서로를 마주하고 친구로서 받아들이게 된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우리 모두는 왜 주변으로부터 잘 지내는 척, 잘하고 있는 척하려 그렇게 애쓰며 살아왔을까. sns에 좋았던 기억을 올리고, 슬픔도 멋있게 포장하고, 좋았던 건 더 좋게 포장하면서 왜 그렇게 자신을 포장하고, 가면을 쓰며 살아왔을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과 내가 같은, 적어도 비슷한 사람임을 인식할 때인데 왜 그렇게들 나는 부족함 없이 잘 지내는 척 애쓰면 살면서 인기 있는 사람이길 바랬을까. 틈이 있어야 메울 수 있는 것인데, 왜 틈을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누군가가 나에게로 스며들길 바랐을까.


 나는 이제 힘들었던 싸움을 내려놓으려 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모자란 면을 숨기려 높이 세운 벽도 허물고, 남들에게 늘 맞춰주는 모습의 가면도 벗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성장으로 표현하던 포장도 모두 뜯어버리고 오롯한 나를. 부족하고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틈 많고 흠 많은 나를 보여주려 한다. 우리 모두 그러할 필요가 있다. 우리를 메워주려 틈이 나길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가짜 나를 내려놓고, 모자란 면도 있고 실수도 하는 보통의 사람이기에 사랑받기 충분한 진정한 나를 보여주면 그동안 해왔던 ‘잘 사는 척’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날이 ‘사랑받는 척’ 없이도 사랑받을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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