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관 May 16. 2022

보이차 자랑

보이차는 가지고 있는 양보다 차 생활의 즐거움이 자랑이 된다

보이차가 다른 차류와 다른 점은 후발효차라는 것이다. 다른 차류는 대부분 만들어진 그 해가 지나면 새 차를 마시므로 버려야 한다. 그런데 보이차는 오래된 차일수록 가치를 더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보이차는 오래 마신 사람일수록 수장하고 있는 양이 많다. 보이차를 마신 지 몇 년이 되면 수십 편은 보통이고 수백 편, 혹은 방 하나 가득 채우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수장하고 있는 양만큼 자랑거리로 삼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보이차는 많은 양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는 것일까? 내가 마시면 좋은 데 다른 사람이 마시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는 차가 보이차이다. 또 지금 마시면 괜찮은 차인데 시간이 지나 내 입맛이 달라져서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차를 배웠던 선배님은 소장하고 있는 차를 따로 가지지 않고 필요할 때 구입해서 마셨다. 선배님은 만든 지 수십 년이 지난 노차를 주로 마셨고 우리 발효차나 고급 무이암차를 즐겨 마셨는데 그 차들은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선배님은 당신의 입에 맞는 차를 마셔야 했기에 친분이 있는 차상인에게 할부로 구입하기도 했다.


보이차를 마시기 위한 차가 아니라 수장해서 오래 두면 값어치가 오를 것이라 여기는 사람이 많다. 값싼 보이차는 시간이 지나도 단지 묵은 차일뿐 가치가 그만큼 올라가지 않는다. 지금 마셔도 좋고 묵혀서 성분 변화가 일어나면 달라진 향미도 그만큼 좋아져야 가치가 올라간다.


가지고 있는 보이차가 지금 마셔서 만족스럽지 않다면 후일을 기약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한 편의 가치가 모여서 가지고 있는 전체 차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므로 수장한 양이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이차는 한 통 값으로 한 편의 차를 보라고 권하는 의미를 새겨야 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편, 그 차가 한 트럭이 있다고 한들 그건 그냥 버려야 할 쓰레기일 뿐이다. 많은 양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보다 지금 마시면서 만족하는 몇 편을 가지고 있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은가? 한 사람은 아무도 탐내지 않는 차 덩어리를 가지고 있을 뿐이고 또 한 사람은 가족들과 몇 편의 차를 즐겨 마시고 있다.



보이차는 한 통 값으로 한 편을 구입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 차는 마실 때마다 소확행의 시간이 된다. 한 편 값으로 구입한 한 통이 모여 방 하나를 채우고 있다면 버릴 수도, 가지고 있기도 버거운 짐일 뿐이다. 보이차는 내가 그 가치를 보고 선택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그 차를 마시는 생활이 내 삶의 가치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


보이차는 물리적인 자산을 증식할 수 있는 수단이기보다 내 삶을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매개체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무 설 자

매거진의 이전글 보이차 춘추전국시대, 차 구매 기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