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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Jul 08. 2022

'더 좋은 차'는 채워질 수 없는 욕망

차를 좋아하는 사람과 찻자리를 좋아하는 사람

차를 마시는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겠다. 차에 집중하는 사람과 차를 마시는 자리를 즐기는 사람이다. 차를 마시는 사람이 두게 되는 관심을 두는 방향을 차와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차에 집중하는 사람은 '더 좋은 차'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더 좋은 차'라는 목표를 가지게 되면 차를 대하는 관점이 달라지게 된다. 지금 마시는 차에 만족할 수 없어서 부족한 점이 보완된 차를 찾으려고 애쓰게 된다.


쓴맛에 좋아서 입안이 깔끔하게 다가오는 건 좋은데 단맛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단맛이 풍부해서 목 넘김이 부드러워서 좋긴 한데 회감이 부족하니 아쉽다.

단맛도 풍부하고 쓴맛도 적당해서 좋지만 입 안에 남는 잔향이 부족하다.


이처럼 더 좋은 차에 대한 바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기준이 점점 높아질 뿐이다. 누구든지 욕심을 가지게 되면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고 만족하기 어렵다. 차에 집중하는 사람은 차를 마실 때마다 부족한 향미를 탓하며 불만족한 차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차를 마시는 자리에 집중하는 사람은 어떤 차생활을 하게 될까? 그날 찻자리에 참석하는 사람을 배려해서 차를 준비할 것이다. 차를 자주 마시지 않는 사람과 오래 마셔온 사람에게 대접할 차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차를 따지지 않고 찻자리가 좋아서 오는 사람이라면 정성만 더해지면 차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차를 오래 마셔온 분이라면 나는 차를 함께 맛보자며 그분의 차를 청하기도 한다. 찻자리는 차의 우열을 논하기보다 다담을 나누며 교분을 돈독하게 하는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팽주가 따로 없는 찻자리, 나를 초대한 분이 자신을 낮추면서 감히 차를 낼 수 없다며 각자 차를 우려 마시며 다담만 나누는 시간을 가졌었다. 이보다 더 큰 배려가 있을까>


차가 목적이 되는 자리는 가끔 차에 대한 견해차로 다투기도 하고 서로 마음을 다칠 수도 있다. 차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면 차로 인해 다툴 일이 없다. 더 좋은 차를 얻으려는 욕심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지만,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자리의 매개체로 두면 이보다 더 좋을 게 없는 게 차이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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