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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Sep 19. 2022

내 나이 耳順이순에 마시는 차

차가 좋아 마시기보다 나를 위해 차를 마셔야지

매일 아침 당신 앞에 돈을 벌어야 할 24시간이 아닌 살아야 할 24시간이 펼쳐진다.

달아나고 싶은 유혹에 지지 말고, 지금을 생생히 살아야 하는 이유다.

당신이 투자할 것은 돈이 아니라 당신의 삶 자체다.

                                                                          – 틱낫한 –


환갑을 넘기면서 이전과는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만약 정년이 있는 직장 생활을 했었더라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월요일을 의식하면서 주말과 휴일을 보낼 필요도 없지 않은가? 일찍 일어날 수 있으니 늘 부지런해지고, 열심히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주말이 기다려진다. 하지만 젊었을 때는 일이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내 삶을 위해 일이 있다는 게 다르다.


분명 환갑이라는 나이는 살아온 삶의 줄기에서 하나의 매듭을 지어야 하는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이전처럼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지난날과 다름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사람을 만나면서 받아들이는 마음은 달라졌다 걸 느끼게 된다. 분명 환갑을 계기로 삶의 분기점이 만들어졌고 나를 위한 삶이라는 새 가지가 나온 것이리라.



공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마흔은 不惑불혹이라 미혹되지 않는 굳건한 의지를 세웠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쉰은 知天命지천명이라  하늘의 뜻을 알고 사람이 살아야 할 의미를 깨우쳐야 했으나 눈앞의 일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그렇지만 환갑에 이르러 耳順이순이라는 의미처럼 말하기보다 잘 듣고 살아야 한다는 건 받아들이고 행하려 애쓰는 마음이 생긴다. 참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십수 년간 보이차를 마시며 지내다 보니 수백 편의 차를 가지게 되었다. 어떤 경로로 차를 얻게 되었든 간에 마시는 차마다 맛과 향이 좋아서 가리지 않고 하루에 3~4리터가량 마셔왔었다. 그러다가 근래에는 차를 가려가며 마시게 되었다. 차를 위주로 量양으로 마시다가 이제는 나를 위해 質질을 따져가며 마시게 되었다고 하면 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좋은 차와 그렇지 못한 차로 구분해서 마시는 건 아닐 것이다. 양으로 많이 마시다 보니 내게 맞는 차가 가려져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다. 내게 맞는 차가 가려지게 되면서 차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는 걸 알게 된다. 보이차는 사람마다 선호하는 차가 달라서 내 입에 맞지 않은 차는 자식들이 좋아할 수 있으니 남아있는 차가 소용없지는 않다.


혼자 차를 마실 땐 나에게 맞는 차를 골라 마시면 되지만 함께 마시는 사람이 있으면 그분이 좋아할 차를 선택한다. 보이차 생차는 취향에 따른 공감대를 맞추기가 어려우니 차의 선택이 신중해야 한다. 숙차는 차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내주어도 잘 마셔서 생차보다 대중적이라 할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숙차만 마셨지만 지금은 거의 생차만 마시고 있으나 누구와 차를 마실지라도 즐거운 찻자리로 이끈다.




지금 마시는 차 한 잔, 내가 소장하고 있는 차 중에 가장 맛있는 차를 우린다. 차를 마실 때마다 선택하는 가장 맛있는 차는 오로지 나를 위한 일이다. 아내와 마실 때는 아내가 가장 맛있게 마실 차를, 내 자식들과 마실 땐 또 그 자리에서 가장 맛있을 차를 선택할 것이다. 비어있는 시간을 일없이 채우는 일로 나는 차를 마신다. 차를 마시면 나는 언제든 행복해질 수 있으니 '日日是好日일일시호일, 時時是好時시시시호시-날마다 좋은 날, 언제나 행복한 삶'이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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