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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도노채, 보이차의 지존을 마시다

대평보이 빙도노채, '백문불여일상' 시음기

by 김정관

빙도노채다. 이 시대 보이차의 최고봉이랄 수 있는 빙도노채를 마실 수 있다니 영광이라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니지 않을까? 내게도 빙도라고 표기된 차는 열 종류나 있어 생각나면 마시지만 큰 감흥이 없으니 오리지널 빙도노채는 아닌 게 틀림없다. 2009년에 빙도노채라고 표기가 되어있지 않았지만 최고급 철관음에 버금가는 황홀한 향미를 음미할 수 있었던 차가 있었다. 그 이후로는 그런 향미를 음미할 수 있는 빙도차는 없었다.

올해 2022년 산 빙도노채인 대평보이 '백문불여일상', 가격이 한시적으로 편당 380만 원이다. 좋은 차라면 구입해야지 하며 들일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되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지만 맛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다행이다. 대평보이의 멤버쉽차구독 프로그램에 등록하여 시월의 차로 시음차를 받았기 때문이다.


'시월의 차'를 받자마자 시음차로 온 양의 반을 마셔버려서 나머지 반은 다연회 다회에서 다우들과 함께 마시려고 했는데 그냥 독식하기로 했다. 대평님이 이 귀한 차를 보낼 때는 근사한 시음평이 올라오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래서 다우들께 미안하지만 혼자 조용하게 마시면서 빙도노채의 향미를 음미하기로 했다.


쓴맛 우선이냐 단맛 우선이냐


무릇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건 오미로 입안에서 느껴지는 다섯 가지 .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매운맛을 통틀어 이른다. 이 중에서 우리가 차맛으로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건 단맛과 쓴맛이다. 차맛에서 신맛이 나는 경우 매우 부정적으로 보게 되고 매운맛이나 짠맛은 구감이 예민한 사람은 느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쓴맛과 신맛은 선택적으로 좋아하고 단맛과 짠맛은 누구나 좋아한다. 맹해 차구의 차는 쓴맛이 강하고 임창 차구는 단맛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맹해 차구 차는 마니아층에서 호감도가 높고 임창 차구 차는 대중적 호감도를 가진다.



노반장차가 주목을 받게 되면서부터 고수차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고 본다. 노반장에서 시작된 고수차의 열기는 빙도에서 절정기를 맞고 있다. 빙도차가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알 수 있는 건 빙도노채 인근의 네 군데 산지인 파왜, 나오, 남박, 지계까지 빙도차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빙도 차는 빙도노채 인근의 네 군데 산지인
파왜, 나오, 남박, 지계까지 빙도차로 인정하고 있다


보이차의 지존으로 남북을 나누는 남-노반장이나 북-빙도의 차맛의 기준은 단맛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쓴맛에 익숙한 맹해파는 노반장에 손을 들어주고 단맛을 좋아하는 임창파는 빙도에 열광한다. 노반장차는 깔끔한 쓴맛을 단맛이 감싸주고, 빙도차는 풍부한 단맛에 쓴맛이 중심을 잡아준다.


맹해파는 노반장을 단맛이 좋은 차라고 하고 빙도는 싱겁다며 깎아내리려고 한다. 임창파는 빙도차의 화려한 단맛을 어떤 차에서 음미할 수 있겠느냐며 다른 차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엄지 척이라 말한다. 아무튼 남-노반장, 북-빙도는 단맛에서 다른 산지에서 따를 수 없는 깊고 진한 향미를 보여준다.


고수차만 가진 독특한 차향인 蜜香밀향


절대 구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차향을 환상적으로 표현한다. 각종 과일과 꽃의 향기로 차향을 이르는데 왜 나는 그 황홀한 표현에 공감하지 못하는지 안타깝다. 녹차부터라면 45년을 마셨고 보이차만 16년을 마셨는데 구감이 짧아서 그런지 쓰고 단맛을 겨우 느낄 뿐이다.


내가 보이차에서 특별하게 느끼는 향미는 蜜香밀향이다. 말 그대로 꿀맛인데 고수차의 단맛의 농도를 구별하게 한다. 마른 차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올라오는 향은 미미하지만 입안에 넣자마자 향이 그득해지면서 쓴맛을 따라 침이 나오면서 단맛이 더해진다.

蜜香밀향은 말 그대로 꿀맛인데 고수차의 단맛의 농도를 구별하게 한다


그리고 빈 잔에서 묻어나는 차향을 음미해야 한다. 이 과정을 聞香문향이라고 하는데 잔이 비어있지만 향은 찻잔에 가득하다. 문향을 통해 밀향을 음미할 수 있는데 고수차의 珍味진미가 여기에 있는 걸 놓치는 사람이 많다.


노반장이나 빙도 차가 아니라고 해도 고수차의 향미는 첫물차에서 특히 차향이 풍부하다. 아마도 차의 성분 중 아미노산에서 이 독특한 향기가 생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밀향이 풍부할수록 단맛도 깊고 그윽한데 첫물차가 귀한 만큼 밀향을 느끼지 못하고 무슨 밀향이냐고 하면 덧붙일 말이 없다.


이름만 빙도가 아닌 빙도노채-'백문불여일상'


우리나라에 병차 한 편에 380만 원을 주고 구입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체적으로 차를 구입하는 가격대는 10만 원 이하가 주를 이룬다. 온라인 구매처인 쿠팡에 보이차라고 검색을 해보니 주로 5만 원 이하가 많고 10만 원 전후가 고급 보이차로 라인업이 되어있다.


고수차는 아예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기 때문에 소비자는 값싼 보이차를 구입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내가 사는 동네 가까이 보이차를 마셔볼 수 있는 찻집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차를 구입할 수 있는 여건이 열악하기 이를 데 없다. 차를 마시고 싶어도 차의 기본적인 교육이나 마실 기회조차 가지기 어려운 현실이 안타깝다.

차를 마시고 싶어도 차의 기본적인 교육이나
마실 기회 조차 흔치 않은 안타까운 현실


이런 분위기에서 보이차의 지존인 빙도노채 차를 마실 수 있다는 건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차의 병면을 판매 글의 사진으로 봐도 입에 침이 고인다. 빙도노채 차라는 선입견에서 그럴지도 모른다.



시음차로 온 양의 반을 개완에 다 넣었으니 이 한 번의 시음으로 빙도노채 차의 향미를 기억에 잘 담아 두어야 한다. 한소끔 식힌 탕수로 짧게 세차를 하고 조심스레 뜨거운 물을 부으니 차향이 향긋하게 피어오른다. 기대했던 그 향기, 밀향이다.



연노랑빛 탕색을 보고 코끝에서 흩어지듯 다가오는 향을 맡으며 차를 마신다. 찻물이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진하게 단맛이 느껴진다. 그리고 혀의 여기저기로 쌉스레한 맛이 스미면서 침이 솟아난다. 그리고 단맛이 더해지니 단맛과 쓴맛이 어우러진 향미가 코로 넘어오면서 '이 맛이야'하는 충만감에 젖어든다.


차를 넘기니 걸림 없이 내려가면서 시원한 느낌이 아래로 뻗치듯 내려간다. 언젠가부터 좋은 차를 마시면 목 넘김이 부드럽고 시원한 느낌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기운이 아래로 향하는 이 시원한 느낌이 상기된 몸 상태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다. 치솟은 火氣화기를 주저앉혀 심신의 안정을 가져오는 효과라고 할까?



열 번을 우려도 차맛이 안정적으로 나온다. 아마도 앞으로 열 번은 더 우려도 될 것 같다. 오늘 이 차를 마시면 기억에 담아두었다가 끄집어내어 상상으로 향미를 음미해야 하니 우리고 또 우려 마셔야겠다. 참 좋은 차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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