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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Dec 12. 2022

스님 다우의 찻자리

멘토이신 무설자님께 어떻게 내가 차를 낼 수 있을까요?

나에게 스님 다우가 있다. 말 그대로 그 다우는 스님이신데 나이도 비슷한 연배라 쉬 가까워지게 되었다. 온라인의 인연으로 다연을 맺게 되어 오랜 벗처럼 다우로 허물없이 지내고 있다.


일면식도 없이 카페 활동을 통해 십년지기 못지않은 교분을 나누고 있으니 온라인의 만남을 어찌 가볍다 하겠는가?  인연이란 인드라망으로 이어져 있어서 때가 무르익으면 꽃을 피우고 열매도 맺게 되는가 보다. 글로 다담을 나누다 전화 통화도 하게 되고 차도 주고받으면서 茶情도 깊어졌다.


스님이 사는 곳은 중부지방이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글을 쓰다 보면 차 이야기를 벗어나 세상 이야기를 하면서 종교에도 날을 세우는 수도 있다. 그럴 때면 스님은 제동을 걸어오기도 하는데 무설자의 찻글 팬 중에 스님도 많으니 팬 관리를 당부하신다.

만날 사람은 어떻게 해서 라도 만나게 되는 게 인연일까?


그러던 중에 스님이 살고 있는 절은 비워두고 만행길에 나섰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태백산 어느 절에 사신다고 하면서 산봉우리에 운무가 드리워진 아침 산사를 사진으로 보내오기도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나선 만행길인데 스님은 어떤 세상을 만나고 싶어 길을 나선 것일까?


그러던 중에 스님의 만행 길이 부산까지 이르게 되었다. 스님의 거처를 당신이 직접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그 절에서 우연하게 만나게 되었다. 그 절의 법당에 잠시 앉아 있었는데 스님 두 분이 나누는 얘기를 듣자니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스님과 통화를 가끔 하면서 익숙해진 목소리를 알아들어 법명을 여쭈었더니 스님은 화들짝 놀라면서 반갑다며 어찌할 바 몰라했다.



객 스님인 당신의 거처는 절의 요사채의 한쪽에 차판 하나 펼쳐 놓으니 꽉 차는 작은 방이었다. 스님이 부산에 오기는 했지만 무설자를 따로 부를 예정은 없었는데 이렇게 만나지니 예사 인연은 아니라시며 같이 웃었다. 차 마시는 스님답게 그 절에서 얼마나 지낼지도 모르는데 차판은 방 한가운데 차려 놓으셨다.



그런데 스님의 방에 펼친 차판이 좀 희한하게 생겼다. 팽주와 팽객이 따로 없이 각자 차를 우려 마시게 되어 있지 않은가? 수많은 찻자리를 다녀 보았지만 차실의 주인과 손님이 마주 앉아서 각각 우려 마시게 되어있는 차판은 처음 본다.


더구나 公刹공찰이 아닌 개인 절에서는 주지 스님 외에는 신도를 스님의 방에 들일 수 없는 게 불문율이라고 들었다. 큰 절이 아닌 다음에야 다른 스님이 다객으로 자주 올 일도 없을 터인데 왜 이렇게 차판을 차려 놓은 것일까? 궁금증이 내 입에서 말로 나오기도 전에 스님 다우는 그 답을 전해 주었다.


스님은 오래전부터 '무설자의 차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를 차 멘토로 삼기로 했다는 말씀이셨다. 전화 통화를 나누면서 그런 얘기를 하시는 걸 듣기는 했지만 농으로 지나칠 일이지 설마... 부산에 오게 되면서 왠지 스님의 방에서 무설자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드셨다고 했다.

팽주가 따로 없이 마주 앉은 둘이 각자 차를 우려낼 수 있도록 만든 찻자리라니?


만약에 그렇게 무설자와 차를 마시게 된다면 스님이 팽주로 차를 낼 수 없다는 생각을 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객인 무설자가 주인 자리에 앉아서 팽주를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각자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도록 작은 차판을 두 개 마주 보게 놓으셨다고 한다.


스님 다우의 말씀을 듣고 나니 잠깐 말문이 막히면서 멍한 상태가 되었다. 약간의 글재주가 있어서 차를 마시면서 드는 느낌을 글로 옮기고 있을 뿐인데 이런 오해를 받게 된 것이다. 스님 다우가 보여준 그 후의는 혼돈과 감동이 섞이면서 뭐라고 할 수 없는 책임감이 밀려왔다.




곧 스님의 공양시간이 되어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작은 방에서 나왔다. 다시 그 찻자리에 앉을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스님은 운수납자雲水衲子라는 말처럼 부산을 떠나셨다. 무설자를 멘토로 모신다시며 극진한 예를 다해 준비한 찻자리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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