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지만 만족스럽게 살고 있는 집
경남 밀양 이안당은 주말주택으로 쓰는 단독주택이다. 건축주 부부는 2011년에 이 집을 짓고 목요일 저녁이면 귀거래 하신다. 집을 지은 지 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가끔 뵙게 되면 설계자인 내게 집 자랑을 늘어지게 하시니 아주 만족한 주거 생활을 하고 있으신가 보다.
이안당이 지어지고 난 뒤에 썼던 글을 다시 고쳐 쓰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집을 짓는 과정에 시공자가 마무리 단계에서 애를 먹여 고초를 당했는데 건축주께서 직접 나서서 준공을 하게 되었다. 입주를 하면서 건축주께서는 직접 공사를 해보니 시공자가 손해는 보지 않았는지 걱정이 된다는 말씀을 하면서 그만큼 해준 것이 오히려 고맙다고 하셨다. 덕을 베푼다는 게 어떤 것인지 우리 건축주의 모습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오래된 마을 한가운데 짓는 집이라 이웃을 배려해서 단층으로 해서 허리를 숙였다. 외관도, 외장 재료도 수수하게 하자는 당부를 하셨던 게 마음에 와닿는다. 당호도 국문과 교수였던 건축주의 처제가 지었는데 딱 그대로 이 집에서 미소를 잃지 않고 살고 있으시다.
이안당이라는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구절에서 따왔다.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안) - 뜰의 나뭇가지 바라다보니 얼굴에 기쁨이 가득 차누나
평소 전원생활을 꿈꾸던 이안당 주인 부부의 열망과 이 집을 찾는 이들과 정겨운 이야기를 즐기며 지내겠다는 따뜻한 마음을 당호에 담은 듯하다. 무릉도원과 전원생활을 사랑하던 도연명에 대한 흠모 등이 어우러진 당호라 하겠다. 그리던 전원에 돌아와 뜰을 바라보며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던 도연명과 이안당 주인 부부의 만족하는 마음을 담아 지인이 당호를 지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은 정년 이후의 삶에 대해 특별한 꿈을 꾼다고 한다. 직장이라는 틀에 묶여 살다가 정년퇴직을 한 뒤에는 각자가 꿈꾼 삶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을 것이다. 그 꿈 중의 하나가 전원에 작은 집을 지어 흙과 더불어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이고 사는 생활이라고 한다.
정년이 없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야 언제든 도시 생활이 싫을 때 떠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 시기를 정하지 못해 도시에 머무르고 마는지 모른다. 정년퇴직이라는 일을 손에서 놓는 시기가 정해진 분들은 그날을 기다리며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준비를 하는 분들이 많다. 그 준비가 어떤 것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전원생활을 꿈꾸는 분들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지만 일하는 환경을 벗어나기가 어려운 이들과 일에서 떠나 사는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날이 정해진 이들은 행복하지 않은가? 도시는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니라 머무를 수밖에 없는 곳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는 떠날 것이라는 희망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귀농학교를 다니며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손수 집을 짓는 교육을 받기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원생활을 꿈꾼다.
이안당의 주인도 정년퇴직 시기에 맞춰 전원에 집을 짓는 계획을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진행하여 마침내 꿈을 실현하였다. 땅을 구입하고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을 설계 기간을 잡아서 살고 싶은 집을 도면으로 옮겼다. 집을 짓는 기간도 6개월이면 충분한데도 일 년이나 걸렸으니 땅을 구입하고 집을 완공하는데 2년이라는 시간을 들인 것이다.
공사기간을 6개월로 잡고 설계 기간을 1년을 준비하여 검토할 수 있는 모든 안을 스터디하는 치밀함으로 집 짓기를 준비하였다. 집을 짓는 기간은 6개월이면 충분한데 예정된 일정이 거의 배로 늘어난 원인은 시공자가 문제를 일어 키면서 비롯되었다. 공사의 주요 일정이 다 끝이 난 상태에서 시공자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마무리 공사를 계속 미루면서 그 갈등과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시공자와는 합의를 통해 정산처리를 할 수밖에 없었고 마무리 공사는 건축주의 몫이 되고 말았다. 공사의 경험이 있을 리 없는 건축주가 직접 공사를 마무리하는 건 물론이고 이미 진행된 공정의 하자까지 해결해야 했으니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시행착오는 비용의 증가와 엄청난 고민을 가져왔지만 완공 후에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미리 해결하고 더 필요한 점을 보완하는 면에서는 다행이었다고 하신 건축주의 깊은 마음이 따뜻하다.
이안당이 지어진 곳은 경남 밀양시 단장면 무릉리이다. 무릉리, 왜 이 동네의 이름이 무릉리인지 알 수 없지만 동네 입구에는 무릉동이라는 안내석이 세워져 있다.
설계를 하면서 처음 갔던 그때가 가을이었다. 길가에는 낙엽이 뒹굴고 잎이 다 떨어진 나무와 새파란 하늘이 자연 그대로 여기가 사람이 살만한 곳이라 다가온다. 동네 이름은 무릉이지만 흔히 보이는 산 능선과 시골동네의 모습이 이름이 무릉이지 무릉은 어디에서 찾을꼬?
마을로 들어가 보니 골짜기가 마을의 남쪽으로 면해 깊이 올라가고 있다. 저 골짜기가 굽이치는 안 쪽까지 가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길이 끝나는 그곳에 무릉계곡이 숨어 있으려나. 그렇게 무릉동이라는 마을 이름을 해석해 보는 마음으로 대지를 아름답게 말로 치장해 본다.
깊은 곳에 숨어있는 것을 찾지 않아야 신비롭고 아름답지 않을까? 그곳에 그렇게 전설처럼, 이야기처럼 이름이 이름다와지는 것이리라. 무릉동에 지은 집 한 채, 그 집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감나무, 감이 달려 있어야 감나무라고 알지 이 감이 떨어지고 나면 감나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냥 나무일뿐이다. 흙과 돌로 만든 창고의 흔적도 이 공사를 하면서 허물고 나면 언제 이곳에 이런 집이 있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불편하다며 옛집을 허물어 버리고 짓는 이 시대의 건축물은 아무리 잘 지어도 싸구려집이다.
물질적 가치로만 평가받는 허우대뿐인 집이 대부분이니 겉은 멀쩡하지만 그 안에는 영혼도 없고 감동도 없다. 늘 닫혀 있는 현관문, 비어 있는 방에는 침대만 그 기능을 다할 뿐인 아파트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그 삶에는 공허한 돈 이야기로만 얼룩져 있으니 집이 삶의 주축을 만들어 가며 살았던 옛집의 의미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집 세 채만 짓고 저승을 가면 무조건 극락행이라고 하는데 시련과 고통을 감내하면서 지어낸 집을 살펴보자. 집주인은 화려한 치장을 한 허우대만 멀쩡한 집은 원치 않는다고 했다. 나이 들어서 살 집이니 2층집도 싫다고 했다. 2층으로 지어야 설계한 사람이 '뽄'을 좀 낼 수 있는 집이 되는데 단층으로 모양이 날까? 집주인은 사람이 사는 집을 원하지 보여주기 위한 껍데기집을 짓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뽄'은 나지 않지만 품위가 넘치는 그의 인품을 닮은 집을 만들게 되었다.
마을을 들어서면 길에서 살짝 올라선 마당에 나무로 만든 소박한 정자가 보이고 '뽄'나지 않는 집의 지붕이 살짝 보인다. 이층 집이었다면 허우대가 좀 있는 '뽄'나는 집이 보였을 텐데 하고 설계자는 아직 남아있는 아쉬움을 삼키며 집으로 들어선다. 만약 설계자의 욕심대로 2층으로 높이 지었었다면 이웃해 있는 촌집들이 얼마나 속상해했을까?
길을 굽이 돌아서면 지붕과 함께 집의 몸채가 보인다. 앞으로 나온 곳은 거실과 주방이고 물러서 보이는 큰 몸채에 안방과 전통구들로 만든 황토방, 서재가 있다. 벽은 점토벽돌로 옷을 입히고 지붕은 붉은 스페니쉬 기와를 얹어 골조는 콘크리트라도 옷은 자연 소재로 입혔다.
담장 없이 길에 닿은 집은 방문객을 안으로 이끄는 돌이 깔린 경사로로 맞아들인다. 한옥의 기단 높이 정도로 집을 들어 올려 땅과 경계를 만들어 습도와 벌레등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하였다. 널찍한 나무 데크는 안과 밖을 이어주는 완충공간이면서 거실에서 바라보이는 경관을 외부공간에서 적극적으로 만나도록 한다.
한옥은 잔디가 없는 맨땅의 마당이어서 작업공간으로도 쓰였지만 이 시대에는 땅을 누리는 공간으로 쓰기 위해 잔디로 옷을 입힌다. 잔디가 깔린 마당, 이 시대 단독주택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깔끔하게 잔디를 잘 관리하며 사는 건축주는 부지런한 성품을 가지신 게 분명하다.
잎이 떨어진 감나무가 봄이 오기 전에 기본 공정이 진행되었음을 알게 한다. 이 공정 이후에 새싹이 돋고 봄이 한참 접어들어 완성을 했으니 집주인은 얼마나 속이 탔을까? 사실 예정된 입주는 추석을 이 집에서 맞기로 했었지만 겨울이 되었는데도 이 상태였었으니....
마을 뒷산에서 흘러내리는 경사는 동향으로 흐르고 있어 이 마을의 집은 거의 다 동향으로 집이 앉혀져 있어 동서로 긴 대지에 집은 동향으로 앉혀야 했다. 남향집은 삼대가 적선을 해야 살 수 있다고 하는데 동향집에서 남향집의 장점을 누릴 수 없을까 고민해야 했다. 전체적인 매스는 동향으로 앉히고 거실과 안방은 남향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안을 정리함으로써 계획이 확정될 수 있었다.
동향으로 앉은 메인 매스에서 빠져나온 정자 같은 이 공간이 거실과 주방이다. 침실은 잠을 자는 곳이니 아침 햇살이 드는 동향이 좋을 것이다. 거실과 주방은 낮에 생활하는 공간이니 남향의 햇살을 받아들이기 위해 매인매스에서 앞으로 빠져나왔다.
적당한 높이로 뽑아낸 거실 공간은 천정높이도 더 높일 수 있어서 반자가 없는 한옥의 연등천정의 효과를 낸다. 내가 작업하는 주택의 거실은 한옥의 대청 역할과 사랑채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도록 배려한다. 안방이나 다른 방과 독립된 거실은 방문객이 머무르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므로 손님이 기꺼이 오도록 하여 사람이 늘 오가는 집이 된다.
한옥의 사랑채 공간은 가장의 공간이며 안채는 안주인의 영역으로 두 공간은 엄격하게 분리해서 만들어졌다.
이 시대의 집에서 옛집의 사랑채의 역할을 공용공간인 거실로, 안채는 사적인 공간인 방으로 영역을 구분시킬 수 있다면 사랑채에 일 년 내내 손님이 올 수 있었던 옛날처럼 활기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안당은 독립된 거실 공간의 역할을 통해 손님들이 자주 찾아와서 무료해지기 쉬운 전원생활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안채에 해당되는 매인 매스를 살펴보자.
동향으로 앉은 매인 매스의 남쪽에는 안방이 위치해 있고 현관으로 들어서면 폭이 넓은 복도를 끼고 전통온돌 황토방과 안방이 있다. 마당으로 면한 문과 황토방의 장지문과 뒷마당으로 열린 문이 일직선으로 열리니 대청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안방은 남향으로도 창문이 나 있어서 남향집의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황토방에서 그 앞의 홀로 난 문으로 푸른 잔디밭의 마당을 한눈에 내다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거실은 양식이지만 황토방과 마루는 한옥의 정서를 담은 공간으로 볼 수 있겠다. 한옥과 양옥의 퓨전주택이라고 할 수 있으니 아파트 생활에 젖은 그동안의 생활 습관과 한옥이 가지는 정서를 결합시킨 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안방으로 연결되는 복도의 폭을 충분히 두어 여러가지 공간으로 쓰이면서 앞마당과 황토방, 뒷마당을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전통구들과 장지문으로 만들어진 황토방이 다인들에게는 차를 마시는 공간이 되면서 우리 한옥의 맛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문을 다 열어두고 황토방에서 차를 마실 때, 차 한 잔의 향기가 지나가는 바람에 묻어 내 몸과 마음을 스치면 세상사가 다 잊히지 않을까?
황토방에서 보이는 마당의 정경이 이곳이 무릉동이라는 이름값을 할 것이라 강변해 본다. 이안당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지만 주인장의 얘기는 이 집에서 잠을 자 본 사람들은 이 집을 너무 부러워한다고 하니 그 정도면 이름만 무릉동을 구태여 그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겨울이 되면 황토방 구들에 불을 들여 알맞게 뜨거워진 방에 누워서 바깥을 바라보노라면 등 따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되리라.
안채의 지붕 아랫 공간을 활용한 다락공간인데 스무 평 가까이 나오는 잉여 공간이다. 경사진 아랫부분에는 서랍장을 두고 나머지 공간은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손님이 많을 때는 침실로, 앞으로 이 집에서 살아가면서 취미공간도 될 것이며 쓰이지 않는 여러 가지 물건은 이 공간에 모두 수납할 수 있으니 일층의 공간 효율이 충분히 발휘될 것이다.
데크에서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풍경이다. 저 계곡 깊숙한 곳에 무릉도원이 있다고 믿는.... 가까이에 있는 집들은 보기에 좀 거시기하지만 좋은 이웃이 있는 마을에 정을 붙이고 산다고 생각하면 그만한 복이 있을까?
동쪽으로 보이는 풍경이다. 밋밋한 선으로 막아서는 산,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밀양댐이 나오고 더 가면 배내골이다. 가까이에 표충사가 있고 청도 운문사도 지척에 있으니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닐까?
'뽄'나는 나무를 더 심어 가꾸고 집 둘레로 과실나무도 좀 심어둔다면 손자들도 기꺼이 할아버지 집이라며 즐겨 찾지 않을까? 아직 집도 주인이 낯설고 주인도 집이 익숙하지 않지만 이만하면 행복한 여생을 보내는 집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해 본다. 전원생활에 대한 열망이 담긴 이안당 怡顔堂이라는 당호가 어울리는 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푸르런 하늘에 구름이 산을 넘어와 이안당을 넘본다. 이안당은 작다 크다 높다 낮다고 하는 시비를 넘어서 내가 살아 행복하고 찾아주는 이가 부러워하는 집이었으면 좋겠다. 이 집은 살아갈수록 기품과 아름다움, 기쁨과 행복이 더해갈 것이라는 믿음으로 설계한 집이라 소개해 본다.
도반건축사사무소-대표 건축사 김정관은
집이 행복의 원천이라는 주거의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