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관 Apr 19. 2023

에코델타시티 상가주택 이안정, 옥상 정원을 마무리하면서

건축사는 집의 엄마, 내 자식을 정성으로 키워 세상에 내보내며

에코델타시티는 계획도시다 보니 건축물에 대한 설계 지침이 세부사항까지 정해져 있다. 그중에 건축사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사항도 있다. 지붕의 형태도 평지붕이나 경사지붕을 복합해서 쓸 수 없게 되어 있다.


상가주택의 경우 주거시설이 우선이라서 3층은 단독주택이 들어가는데 다락을 쓰려면 경사지붕으로 짓는 게 좋다. 그런데 지붕 전체를 경사지붕으로 하려면 외관을 억지로 디자인할 수밖에 없다. 건축주가 경사지붕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지어져 있는 상가주택은 거의 원만하지 못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지붕을 평지붕이나 경사지붕, 어느 한쪽만 선택해야 한다니 수자원공사는 왜 이런 지침을 정한 것일까? 경사지붕으로 짓는 게 원칙인지 평지붕으로 지으려면 옥상 면적 30%를 잔디 식재를 해야 한다. 아마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경관을 감안해서 이런 지침을 정했을 텐데 이게 얼마나 짧은 생각인지 아는지 모르겠다.   


이안정 전경, 평지붕으로 외관 디자인되었지만 거실은 천장고를 높여서 이안정에 쓴 亭에 어울리는 외관을 보여준다

  

이안정의 선택은 평지붕   


2021년 진해부산경제자유구역청-BJFEZ 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던 명지동 BALCONY HOUSE도 그랬지만 내가 설계했던 모든 단독주택은 경사지붕을 썼다. 경사지붕은 집의 형태에도 영향을 주지만 거실의 풍부한 공간성과 다락이라는 수납공간을 얻을 수 있다. 단독주택에서 아파트와 다른 주거 생활을 누릴 수 있으려면 이 두 가지 요소는 빠뜨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정은 경사지붕을 포기하고 평지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집을 설계하면서 외관 디자인을 우선하게 되면 평면 구성에 제약이 많다. 집을 짓는 목적은 생활의 편의를 가늠하는 기능을 담는 평면 구성이 우선이며 그다음에 외관 디자인이라는 옷을 입혀야 한다.


편리한 아파트 생활을 포기하고 단독주택에 살아도 좋다는 건축주의 바람을 담아내려는 내 의지의 결론은 평지붕이었다. 상가주택의 3층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작은 마당을 사이로 거실동과 침실동을 나누는 나의 주택 개념을 적용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채나눔이라는 설계 개념인데 건축주도 쾌히 공감하면서 거실동은 높은 천장 높이를 얻을 수 있어서 개성 있는 외관 디자인으로 설계가 마무리되었다.  

   

필자 설계로 2021년 BJEFZ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한 명지 BALCONY HOUSE


평지붕 옥상의 잔디 녹화


에코델타시티 건축 지침에 의해 확보해야 할 이안정의 옥상 녹화 면적은 52㎡로 적지 않은 면적이었다. 지침에 따르면 녹화 공간에는 잔디 블록을 깔 수 있는지 언급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준공검사를 받는 단계까지는 잔디만 심은 상태를 유지했다.


그런데 옥상에 52㎡의 잔디밭이 있는데 이 상태로 유지하려고 애쓰는 건축주가 있을지 생각해 보자.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도시경관을 좋게 하려고 옥상 녹화를 지침으로 만들었으면 수자원 공사나 강서구청에서 관리비를 지원해 줄까? 아마도 그런 옥상녹화 유지비용을 지원해 줄 리 없을 것이다.


옥상에 잔디밭을 만드는 건 행정 지침에 따라야 하니 어쩔 수 없다. 준공 이후에 잔디밭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명약관화하다. 옥상에 방치된 잔디밭은 여름 한 철만 지나면 말라죽든지 그나마 물을 주는 정도는 몰라도 잡초까지 뽑아가며 관리할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면 잔디는 다 말라죽고 잡초만 무성한 풀밭이 되고 말 것이다.         


에코델타시티 건축지침에 의해 설치된 옥상녹화잔디밭, 준공 후에 돌보지 않게 되면 잔디는 말라서 죽고 생명력이 강한 잡초만 무성하게 되고 말 것이다


이안정 옥상에 있는 휴게 정원


옥상 공간은 어느 건물 할 것 없이 방치되는 게 보통이다. 옥상은 쓰임새가 없으니 자주 올라갈 일이 없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버려진 공간의 쓰임새라고는 온갖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정도다 보니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경관에는 걸림돌이 된다.


이안정 잔디밭에 쓰임새를 부여하기로 했다. 녹화 공간의 일부에 잔디 블록을 설치하고 벤치를 놓아 휴게 정원을 조성했다. 한 여름의 낮이나 한 겨울에는 쓰기 어렵겠지만 봄가을과 여름이라도 밤에는 여기에서 소소한 파티를 열 수도 있을 것이다. 밤 시간에는 조명이 있어야 하니 태양광 정원등을 세워서 언제든지 이 공간을 찾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잔디를 관리하기 위해 수전과 콘센트를 설치했는데 파티를 하는 데도 필요한 시설이 된다. 옥상 휴게 정원으로 기능이 부여되었으니 주로 2층에 있는 다가구 세 세대 사람들이 자주 이용했으면 좋겠다. 이안정에 살게 된 사람들이 이 공간을 같이 쓰면서 서로 친해진다면 가끔 삼겹살 파티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버려질 수밖에 없는 옥상 공간에 쓰임새가 주어졌으니 잔디 관리는 능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잔디밭 가장자리에 철쭉을 심어서 가꿀 수 있으면 옥상 정원은 인기 있는 공간이 되겠다.      


건축사의 제안으로 잔디밭에 석판을 깔고 벤치를 놓아 휴게 정원을 꾸몄다. 태양광 정원등으로 밤이 되면 항상 밝은 이 자리에 이안정 사람들이 모여 대화 하며 정을 나누길 소망한다



불상을 깎는 장인을 佛母불모라고 하는데 설계자인 건축사는 집의 엄마라고 볼 수 있다. 엄마는 산고를 이겨내면서 아이를 낳고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운다. 건축사가 설계를 하는 과정은 산고를 겪는 일과 같고 시공 과정에 참여하는 건 육아 시기에 비유하면 어떨까?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면 부모를 떠나 독립하듯이 집이 다 지어지면 건축사가 할 일이 끝난다고 할 수 있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도 부모의 그늘이 필요하듯이 건축물도 그 집에 사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버려질 수 있었던 옥상 잔디밭에도 이 집의 엄마는 애정을 담아 쓰임새를 찾아내 이안정 사람들이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가진다. 이 집에 살면 그저 좋아서 웃음이 창문을 넘어 나오길 바라면서 지은 당호, 그래서 怡顔亭이안정이다.



도반건축사사무소-대표 건축사 김정관은 

집이 행복의 원천이라는 주거의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부산, 양산, 김해, 울산의 단독주택, 상가주택 및 공동주택을 주로 설계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독주택, 무릉동 怡顔堂이안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