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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Dec 26. 2023

동녘길 단독주택, 집만큼 작은 마당에 담을 넉넉한 행복

싱글맘의 집짓기 10

단독주택에 지어 살고 싶은 이유가 마당을 밟으며 사는 걸 꿈꾸었기 때문이라는 사람이 많다. 잔디 깔린 마당이 있는 빨간 지붕 집,  저녁이면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까지 있어야 그림이 된다. 그래서 넓은 마당에 잔디가 초록 초록 깔려야 바라던 집으로 그림이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다.     


마당이 우리 주택의 정체성인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마당에 진심인 집을 가진 나라는 없을 것이다. 어느 나라나 할 것 없이 실내 공간 위주로 집을 쓴다. 다른 나라의 단독주택은 외부 공간을 정원으로 꾸미거나 중정을 두어 채광이나 통풍을 위한 역할을 도모할 뿐이다.       

 

우리나라 주택의 원형은 조선시대 한옥에서 찾으면 되는데 마당의 역할을 주목해 보자. 한옥의 마당은 요즘 집처럼 넓게 쓰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무리 큰 한옥이라 해도 마당은 필요한 크기만 쓰고 있다. 왜 그럴까?     


한옥의 마당     


한옥의 배치를 보면 집터 한가운데 집이 앉아 있다. 사랑채, 안채, 행랑채, 사당 등 여러 채를 분산해서 앉히고 그 사이에 사랑 마당, 안마당, 정지마당 등 기능이 부여된 마당이 있다. 한옥에서 집이라고 하면 건물만 지칭하는 게 아니라 마당까지 포괄하여 구성되는 것이다.     


사랑마당 없는 사랑채, 안마당 없는 안채, 정지 마당 없는 정지는 성립될 수 없는 게 한옥이다. 따라서 담장으로 경계 지어진 전체가 집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실 내부만큼 외부 공간도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배려해서 지었던 것이다.


 멀리 서양의 집까지 언급할 필요 없이 동북아 삼국의 집을 살펴보면 집을 쓰는 게 판이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은 내부 공간 위주로 쓰고 외부 공간을 중국은 중정, 일본은 정원으로 사용한다. 우리 집의 마당은 내부적 외부공간으로 실내 공간을 연장하는 기능을 가진다.     


한옥의 마당에는 나무를 심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집-口에 나무-木가 있으면 곤궁할 곤-困이 된다는 글 새김도 있지만 집 안에 벌레가 낀다거나 습한 기운을 방지하는 지혜도 숨어있다. 텅 비어있는 마당에 백토를 깔아 햇살에 반사된 밝은 빛을 집 안으로 들이는 기능을 부여했다.    


지금 짓는 집에도 살려야 하는 마당의 역할     


아파트에 살아온 주거 습관 때문일지 모르지만 지금 짓는 단독주택은 건물만 쓰도록 설계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건물의 배치를 한쪽으로 몰고 마당을 넓게 두고 잔디와 정원수를  심는다. 아파트 평면으로 단독주택을 지었으니 외부 공간을 쓸 일이 없어 집 바깥은 정원으로 꾸밀 수밖에.     


마당은 없고 정원으로 꾸며진 외부 공간은 쓸 일은 별로 없고 일거리만 생기게 되어 한 여름에 풀과 전쟁을 치르느라 곤욕을 치른다. 어쩌다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볼거리가 될지 몰라도 집주인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마당이 아닌 정원으로 쓰는 대가가 만만찮은 장면이다.     


내가 설계하는 집은 당연히 건물이 집터의 가운데 배치된다. 분산 배치된 마당은 거실 앞마당만 잔디가 깔리고 다른 마당은 포장이나 데크를 깔아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테이블 근처에는 데크, 주방 다용도실과 뒷마당과 장독대, 서재는 툇마루로 이어지는 작은 뜰을 둔다.    

 

집의 규모와 상관없이 실내 공간과 이어지는 마당은 풍성한 주거 생활을 돕는다. 탁자와 이어진 데크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기분 좋게 차 한 잔 할 자리가 된다. 서재에서 툇마루로 나가면 만나는 뜰에 달빛이 내리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텃밭과 장독대가 있는 뒷마당은 우리집에서 먹는 맛있는 밥을 장담하게 한다.     


필자 설계-경남 양산 심한재, 건물은 대지의 가운데에 배치되고 적당한 크기의 마당과 함께 크고 작은 외부공간이 쓰임새를 가져 풍요로운 주거 생활을 지원한다 


동녘길 주택의 마당은?     


넓지 않은 집터에 건물을 앉히니 대지 경계를 따라 자투리 공간이 나온다. 동녘길 주택의 외부 공간에 꼭 두어야 할 법적 요건의 영역은 주차장이다. 주차장은 집을 쓰는데도 꼭 필요하지만 외부 공간을 많이 점유해 버렸다. 주차장을 쓰고 나니 정말 자투리 공간만 남았다.     


거실 앞에 남은 공간이 마당인데 남향의 햇살을 담기에는 부족하지 않겠다. 한쪽 모서리에 그늘이 넓게 드리워질 큰 나무 한 그루를 심어야겠다. 거실과 이어지게 데크를 깔면 겨울에는 햇볕을 즐기고 그늘이 좋은 계절엔 나무 아래에서 보내는 시간이 좋겠다. 데크를 놓고 남은 마당에는 잔디를 깔자. 백토를 깔면 전통 마당이 되겠지만 시대 흐름에 맞게 연두색 잔디를 밟을 수 있는 마당도 나쁘지 않겠다. 담장을 따라 철 따라 꽃 피는 관목을 심으면 어떨까?     


또 하나의 외부 공간은 뒷마당이다. 집터의 북쪽에 있는 도로가 높아서 가능한 많이 띄우도록 애썼다. 북쪽에 면한 방이 습할 수 있으니 통풍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뒷마당을 두었다. 가운데 방에서 드나들 수 있으니 뒷마당을 예쁘게 꾸밀 수 있겠다. 한 여름에는 뒷마당 끝에 햇볕이 들 수 있으니 작은 텃밭을 가꾸어도 좋겠다.    


동녘길 주택의 외부 공간이 작은 집에서 피어날 행복을 예감하게 한다

 

이제 남은 외부 공간은 두 곳이 있다. 집터가 이형이다 보니 큰 방 앞에 발코니만큼 자리가 생겼다. 담에 붙여서 유리지붕을 올리면 온실처럼 쓸 수 있겠다. 큰 방 문을 열면 사철 꽃이 피는 온실이 있다. 인접대지와의 사이에 주방과 연계해서 쓸 수 있는 외부 공간이 있다. 거실 벽에 붙여 수납공간으로 쓰면 좋겠다.    

        

동녘길 주택은 실내 공간도 그렇지만 외부 공간도 버려진 곳이 없다. 거실은 앞마당, 한실은 뒷마당, 큰방은 온실, 주방은 수납공간과 이어져서 작은 집이지만 모자람은 없다. 현관과 주차장 앞에 도로와 이어진 진입 마당은 우리집에서 가장 여유를 부리는 넓은 공간이다.         




동녘길 주택은 우리 전통 한옥의 결을 이은 집이다. 식구들의 개인 영역-안채와 손님과 함께 있는 공적 영역-사랑채가 구분되어 있다. 공적 영역은 남향의 햇살이 쏟아지는 마당과 대청마루 연등천장처럼 높은 천장고가 집의 격을 높이는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사적 영역은 한실은 뒷마당과 큰방은 온실이 있어서 혼자 있는 시간도 내 방이라서 더 편안할 수 있다.     


외부 공간이 실내와 이어지지 않으면 관리의 손길이 미치기 어렵다. 방치된 외부 공간이 있으면 집을 쓰면서 깔끔하게 관리하기 어렵다. 한옥의 전통을 이어 이 시대의 집으로 지어내니 우리 식구들은 절로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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