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건축잡지 기자로 시작해서 편집장을 거쳐 지금은 건축전문출판사 대표가 된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또 늦깎이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건축 역사 이론 비평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 건축으로 한국 건축 속의 인문학을 출간한데 이어서 이 책을 썼다. 기자 시절부터 한국 전통 건축에 대해 관심이 남달라서 주역 등 동양 철학에 심취해 글을 쓰기 위한 바탕을 탄탄하게 준비해 왔다.
그는 왜 우리 고건축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꾸준하게 공부하고 연구해 왔을까? 그와 나는 삼십 년 가까이 실무 건축사와 출판매체 관련 기자와 발행인으로 친분을 유지해 왔다. 그는 우리 사회와 건축사들이 한국 건축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점에 실망과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우리 건축 환경의 뿌리가 일천함을 안타까워했다.
우리 건축의 역사는 조선시대를 끝으로 목조 건축으로 그치고 말았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근대 건축은 일본인들의 기술로 지어졌고 현대 건축 또한 한국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복구하며 급속하게 진행되고 말았다. 급격하게 거대 도시가 이루어지면서 초고층으로 현대 건축물이 지어졌지만 소위 한국 건축이라는 족보는 찾기가 어렵게 되어 버렸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우리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일제의 식민 정책으로 오염된 자료가 난무한 실정이다. 한국 건축에 대한 이론적 기반이 일본인들에 의해 가공되었을 뿐 아니라 급속한 경제 성장에 따른 정체성이 없이 지어진 현대 건축은 우리 건축의 정신적인 뿌리 없이 혼돈 속에 빠져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목조건축인 한국 건축과 콘크리트와 철골 등으로 지어진 현대 건축이 어떤 연관성을 가질 수 있는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드웨어로만 따진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건축물을 지어내는 전문가의 정체성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도시와 건축물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도시계획가나 건축사들이 그들이 하는 일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얼마나 깊은 성찰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을까?
목조로 지을 수밖에 없었던 조선시대까지의 건축물은 전쟁으로 인한 병화나 일상의 실화로 거의 소실되어 남아있는 건 석조로 된 가 대부분이다. 병화가 아니더라도 실화로 도시 궁궐이나 사찰 등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불을 화마-불 마귀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은 계획도시로 궁궐을 중심으로 도성을 구축했다. 한양을 도읍지로 삼으면서 풍수지리로 천년을 이어갈 수 있는 길지를 선정했다. 그런데 문제는 도성에서 바라다 보이는 남쪽의 관악산이었다. 남쪽은 오행에서 주작에 해당되니 불의 방위인 데다 관악산이 불이 타오르는 형상이어서 그 화기가 궁궐에 미칠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조건축물로 지어진 궁궐에 화재 한 번으로 잿더미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경복궁의 정문에 해당되는 광화문을 중건하면서 현판이 잘못되었다며 다시 만들어 붙였다는 기사를 접했다. 현판의 재료인 목재가 갈라져서 다시 바꾼 걸로 안다면 부실한 하드웨어를 수정한 게 될 것이다. 현판이 멀쩡했더라도 다시 만들어 붙여야 할 이유는 따로 있었다.
새로 지었던 광화문 현판은 흰 바탕에 검은 글자였는데 다시 만든 현판은 검은 바탕에 금색 글자이다. 왜 흰 바탕은 틀렸고 검은 바탕이어야 했는지는 화마를 물리치는 역할이 들어 있는 걸 알면 오답과 정답이 따로 있음을 알게 된다. 검은색은 오행에서 물의 기운이어서 정문에 검은색 바탕의 현판으로 화마를 막아서는 역할까지 부여했다.
또 필자는 관악산 정상 바위에 육각형으로 파낸 유구를 주목했다. 치솟아 오르는 불의 형상을 한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다. 숫자 6은 오행에서 물을 상징하는데 육각형의 우물을 파서 불기운을 누르고자 한 것임을 문헌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경복궁의 곳곳에 화마에 대항하려는 장치가 있다는 걸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비단 경복궁뿐 아니라 사찰에도 화마를 물리치려는 노력의 소산이 있다는 걸 통도사와 해인사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두 사찰에서 단오절이 되면 큰 행사를 하고 있는 통도사는 용왕재를, 해인사는 절 곳곳에 소금을 묻는 행사를 가지고 있다.
통도사에서 열리는 용왕재는 물을 주관하는 용왕을 모셔서 화마를 제압하려고 하는 것이다. 해인사의 소금 묻기 행사는 물이 응축된 소금 절 곳곳에 묻어 수기로 화마를 막고자 하는 일이다. 용의 형상이 궁궐뿐만 아니라 사찰에도 빠지지 않고 조각이나 그림으로 장식하는 게 바로 화마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하겠다.
이 책에서는 우리 선조들이 목조로 지어지는 우리 전통 건축물을 화재로부터 지키기 위한 노력이 어떠했는지 밝히고 있다. 그 옛날에 지금처럼 소방 설비가 없었다고 해서 불조심이라고 건물 곳곳에 써 붙이고 화재 예방을 위해 구호를 외치는 정도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현대 건축물이 최첨단 소방 시설로 방비를 한다고 하지만 화재가 나면 속수무책으로 잿더미로 변해 버리고 마는 걸 뉴스로 접하고 영화로도 실감 나게 보고 있다.
화재를 진정 두려워한다면 수십 층을 넘어 백 층 이상 초고층 건축물을 지을 수 있을까? 최첨단 기술로 소방 설비를 설치한다고 하더라도 불 마귀의 존재가 얼마나 무서운지 당해 보지 않으면 실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어가노라면 불 마귀를 제압하려는 조상들이 어떤 정성과 노력을 다해 그나마 지금의 전통 건축물이 보전될 수 있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