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20년 가까이 보이차를 마셨지만 야생차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단맛이 별로 없는 데다 야생차 특유의 향이 거부감을 주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구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소장하고 있는 야생차가 네 편이나 되지만 내 입에 맞는 차는 없었다.
그런데 천년보이차 야생차를 마시게 되면서 이런 편견을 벗게 되었다. 천년보이차 야생차는 특유의 향이 거부감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묘한 중독성마저 불러올 정도이니 이 무슨 조화라 말인가? 단맛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쓴맛도 그렇게 많지 않으면서 야생차 고유의 향이 은근하게 입안에 담기면서 회감으로 단침이 그득해진다.
천년보이차 야생차, 만든지 10년이 넘어서 세월이 만들어내는 향미를 더해가고 있다
야생차는 재배차와 병면의 색깔로 쉽게 구별이 된다. 야생차는 검붉은 색이기 때문이다
천년보이차 이인종 대표는 야생차에 각별한 관심이 있어 그동안 마신 차의 배꼽 부분만 남겨 이렇게 보관하고 있다
재배차는 가지가지 이름으로 수십 수백 편을 소장해서 마시지만 야생차는 그냥 한 가지로 소개된다. 물론 산지 이름을 가진 야생차도 있긴 하지만 향미에서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그동안 마셨던 야생차는 너무 자극적이었는데 그 향미를 패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게는 일상적인 차로 마시기에는 부담스러웠다.
내가 마시는 재배차는 보통 한 번 쓰는 양이 5g 내외라야 간이 맞는다. 그런데 천년보이차 야생차는 3g이면 족하다. 3g으로도 내포성이 너무 좋아서 스무 포가 넘어도 향미가 그치지 않고 지속된다. 탕감은 두텁지 않으나 세밀하게 다가오는 쌉싸래한 맛이 자꾸 잔을 더하게 한다.
천년보이차 야생차는 이른 봄 첫물차로 만들어서 부드럽고 그윽한 향미를 음미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대부분 야생차가 자극적인 향미를 보이는 건 아마도 늦봄에 잎이 커졌을 때 채엽하기 때문일 것이다. 야생차도 첫물차로 마시니 이렇게 오묘하고 깊은 향미를 음미할 수 있나 보다.
2010년 야생차의 탕색, 필자는 이 사진만 봐도 입에 침이 고인다
야생차를 아시나요?
보이차는 그 종류가 너무 많아서 명칭에 익숙해지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생차, 숙차, 대지차, 고수차, 소수차, 중수차, 단주차, 신차, 노차, 조춘차, 곡화차, 병차, 전차, 타차, 과차, 칠자병차 등을 알아들을 수 있으면 초보 딱지를 떼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 더 알아야 하는 종류가 있는데 재배차와 야생차이다.
흔히 야생차라고 하면 재배차보다 더 순수한 것 같아서 가치를 올리는 경향이 있다. 과연 그럴까 싶은데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야생 동물, 야생 식물, 야생 꿀을 그냥 먹다가는 독성으로 병원 신세를 질 수도 있다. 가축, 채소, 양봉 꿀은 사람이 안전하게 먹을 수 있게 야생의 그것을 개량한 먹거리이다.
차도 그러한데 야생차를 오랜 시간 개량해서 안전하게 마실 수 있게 만든 게 재배차이다. 차를 마시는 사람에게는 야생차라는 말에는 익숙할지 몰라도 어떤 차인지 제대로 알고 마시는지 궁금하다. 야생차와 비슷한 말로 야방차가 있지만 재배차를 관리하지 않고 자연환경에서 자란 차나무에서 채엽해서 만든 차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차는 야생차가 아니라 야방차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운남은 차의 始原地시원지이므로 야생차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재배차로 마신 지 오래되었는데 가장 오래된 재배차나무는 운남성 봉경 향죽청 차왕수인데 수령이 3200년이라고 한다. 수천 년 전부터 차를 마셨다는 걸 향죽청 고차수를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재배차보다 야생차?
야생차가 재배차보다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하는 건 편견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재배차는 어떤 차를 마셔도 안전하지만 야생차는 독성이 있어 위험할 것이라는 것도 기우일 수 있다. 그러면 재배차와 야생차는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야생차를 개량해서 과수원에 과수 농사처럼 재배차를 키운 게 삼천 년도 넘었다고 한다. 결국 야생차보다 더 맛있는 차로 개량하고 또 개량해서 더 맛있는 차를 마실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더 맛있는 차? 쓰고 떫은맛을 줄이고 달고 감칠맛이 나도록 개량해 온 결과물이 지금 마시는 차라는 말이다.
차를 마시는 입장에서 재배차는 익숙한 향미지만 그 종류로 보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그렇지만 야생차는 몇 가지를 마셔 봐도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마시는 사람의 입맛에 맞춰 개발된 차가 아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MSG가 들어 있지 않은 차가 주는 본연의 향미를 그대로 음미할 수 있는 게 야생차의 매력이다.
야생차와 재배차를 비교해 보면
야생차의 향미 스펙트럼은 단순하지만 깊고, 재배차는 부드럽고 풍부하다. 야생차는 차라는 식물의 본성이 그대로 살아 있어 담백하고 순수하다. 반면에 재배차의 향미는 사람이 바라는 욕구에 맞춰 향기롭고 풍부하다. 야생차가 화장기 없이 순박한 시골 처녀라면 재배차는 세련되게 꾸민 도시 아가씨로 표현하면 어떨까 싶다.
야생차를 마셔보면 순수하고 담백한 차의 본성을 오롯이 음미할 수 있다. 더 맛있는 차를 탐하는 나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게 아니라 차가 주는 순수한 매력에 젖고 싶으면 야생차를 마셔보면 될 것이다. 야생차는 쓴맛이 이런 매력적일 수 있다는 걸 음미할 수 있게 한다.
시골 사람과 도시 사람은 어떻게 다를까? 도시에는 사람도 많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개성을 뽐낸다. 머리 스타일도, 입고 있는 옷도, 신발도 비슷한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데 시골 사람은 꾸미지 않고 살다 보니 사람은 달라도 눈에 띄게 달라 보이는 게 없다.
도시 사람은 겉모습을 꾸며 사람마다 개성이 다른 만큼 속내를 알아내는 게 쉽지 않다. 반면에 시골 사람은 외모를 꾸미는데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경계 없이 마음을 나누는 게 쉬운 편이다. 재배차는 차마다 향미가 다르니 내 입맛에 맞는 산지의 차를 찾기 위해 애써야 한다. 야생차는 차의 속성이 산지가 달라도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으니 선택하는 조건이 단순하다.
천년보이차 야생차는 그동안 마셔왔던 보이차와 확연하게 다른 향미를 보여준다. 풍부한 밀향의 단맛이나 차기라고 하는 쓴맛과는 다른 차원의 담백하면서 섬세한 향미가 차의 본질처럼 다가온다. 차를 마시며 단맛을 취하려고 하는 건 어쩌면 탐심이 발동하는 게 아닌가 싶고, 쓴맛에 집중하는 건 차를 대하는 자만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단순하면서 오묘한 천년보이차 야생차의 쌉싸래한 향미는 아마도 차의 본질을 음미하게 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