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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May 07. 2024

보이차를 마실 때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일

여성경제신문 '더봄' 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연재 3

온라인 카페에서 인연을 맺어 절친 다우라고 할 만큼 가깝게 지내는 분이 있다. 다우는 내가 차 관련 카페에 올리는 글마다 정성 어린 댓글을 붙여 주는 분이다. SNS에 글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좋아요’라는 반응도 쉽지 않은데 댓글을 받는 건 희유하다고 할 정도이다.    

      

댓글로 주고받는 대화지만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의 일상도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댓글로 나누는 정은 메시지와 통화로 이어지고 마침내 만남의 자리까지 가지게 되었다. 안산에서 부산, 일흔이 넘은 연세인데 다우 부부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여섯 시간을 운전해 나를 찾아오셨다.      


보이차 스승님을 뵈러 왔다는 다우     


다우는 나를 보이차 스승님이라고 깍듯하게 불러 주신다. 내가 좋아서 써 올릴 뿐인데 내 글을 통해 보이차를 배우고 있다며 제자를 자처하신다. 다우께 혹시 내 글이 도움이 된다면 멘토라는 호칭이 좋겠다고 당부를 드려 승낙을 받았다.   

        

다우 부부는 귀한 글을 그냥 받아 읽을 수는 없다며 인사라도 드려야겠다며 찾아오셨다. 이 얼마나 귀한 만남의 자리인가? 다우는 나를 만나기 위해 부산에 오려는 일정을 수차례 잡으셨다고 했다. 손주들을 돌보다 보니 방문 일정이 여의치 않아 죄송하다는 말을 댓글에 몇 번이나 했었는지 모른다. 이번에는 자식들과 손주들이 떠밀다시피 해서 내려올 수 있었다며 스승님을 만난다는 기대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셨다.


온 가족이 차를 즐겨 마시는 다우의 가족 나들이는 여느 집과 다르다. 우리나라 차의 성지로 일컫는 해남 대흥사 일지암에서 함께 한 다우 가족의 봄나들이

      

댓글로 나누는 다담이지만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누다 보니 다우의 차생활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우께서 마시는 보이차는 단순히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두 딸네 가족들과 다우 부부가 한 동네에서 대가족을 이루어 한 마음으로 살 수 있는 게 바로 보이차 생활이었다.

     

집에서 온 가족들이 모여 차를 마시며 내 이야기를 얼마나 하셨는지 손주들도 무설자 스승님이라 부른다고 한다. 다우께서 집 안의 어른으로서 가족들을 이끄는 두 가지의 매개체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신앙, 그다음이 차 생활이라고 했다. 그분이 보이차를 대하는 마음만큼 무설자의 존재감에 가볍지 않은 무게가 실려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보이차를 마시며 자라는 손주들      


요즘 삼대가 가까이 살며 화목하게 지내는 가정이 얼마나 있을까? 다우께서는 신앙과 보이차 생활을 통해 세 가정을 한마음으로 이끌어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고 한다. 보이차에 대해서는 나에게 배울 게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삼대가 하나 되는 가정을 꾸려가는 지혜는 내가 다우께 배우고 있다.  

        

다우는 광주에 살았는데 딸 셋 중에 둘이 출가해서 모두 수도권에 살고 있었다고 했다. 딸들은 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육아에 아주 힘들어해서 딸네 근처에 이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다우가 이사를 하고 나서 딸들이 모두 부모님이 계시는 온 동네로 옮겨와 세 집이 한 동네에 살게 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오면 손주들은 차상 앞에서 가장 신난다. 손주가 팽주 자리에 앉아 차를 우리는 자세가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라는 듯 의젓하다 


다우께서는 세 가정이 집만 근처에 모여 사는데 그치지 않고 마음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신앙이라고 생각해서 다우는 매주 함께 만날 수 있도록 성당에 나가기로 했다. 딸네 식구도 성당에 다니기로 해 신앙이라는 큰 가르침 아래 가족들이 한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다음은 일상에서 함께하는 자리에 차를 매개체로 삼고 있다고 한다. 다우께서는 손주를 맡아 기르면서 어릴 때부터 차 생활을 접하도록 했다고 한다. 네 가정이 한 자리에 모이면 손주가 팽주를 맡아 차를 우리하기도 한단다. 이 자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일지 상상만 해도 부럽기 이를 데가 없다.


손주들도 만나고 싶어 하는 할머니 보이차 스승님     


할머니 할아버지가 부산에 다녀오니 손주들도 무설자 스승님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듣자하니 다우의 가정 분위기가 얼마나 차의 향기로 그득할지 알 수 있었다. 매일 차상을 가운데 두고 차를 마시며 나누는 손주들과의 대화에 내 얘기도 적잖게 나왔던 모양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주가 다우가 되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주제가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인가?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차를 마시며 자란 손주들은 여느 아이들과는 정서가 다르지 않을까 싶다. 삼대가 일요일마다 미사를 함께 보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손주들의 정서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종교의 가르침 속에 삶의 근본을 마음에 새기게 되고 차를 마시며 나누는 가족들과의 대화에서 소확행을 누린다.


가끔 찻집 탐방을 나서는 일도 다우 가족이 즐겨하는 일과이다. 집에서 마시는 차와 얼마나 다른 향미를 맛 볼 수 있을까?

    

요즘은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면 집에서 독립해서 사는 게 보통이다. 집을 떠나 사는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살았던 날을 돌아보며 어떤 기억을 되새길 수 있을까? 다우네 손주들은 아마도 신앙생활과 차 생활을 함께 했던 대가족의 일상을 반추하며 살게 될 것이다.

          

온 가족이 차를 마시는 다우의 집을 보면서 부부, 부모자식,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주의 이상적인 가족 관계를 배우게 되었다. 부부만 사는 집, 부모자식이 한 집에 살지 못하고 손주가 있어도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은 삶에서 행복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다우께서는 손주의 육아를 자처해 세 가정을 신앙과 차 생활로 대가족이 어우러져 살면서 행복을 일구어내는 지혜로운 분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내는 아이들의 정서는 나누고 받아들이는 마음일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무조건, 무한정으로 손주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분들이니 그 정서를 받아 자라기 때문이다. 다우께서 일상에서 신앙과 차를 매개체로 삼으니 대가족이 하나 되는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손주들은 오늘도 할아버지께서 차를 우려 담아 주는 텀블러를 받아 들고 등굣길에 나선다.     

     

보이차는 가족들이 다반사로 마실 수 있는 차이다. 서너 살 먹은 아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한 자리에서 밥 먹듯이 함께 마실 수 있다. 세 가정, 삼대가 보이차를 함께 마시며 일상의 소확행을 누리며 살고 있는 다우는 우리 가족도 본받아야 할 스승님이시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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