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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Jun 02. 2024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오듯 황산차가 내 입맛을 찾아 주네

Daily Tea-일상차로 대평보이 황산차를 기준 삼다

매일 오전 6시에서 7시는 숙차, 오후 8시에서 9시는 생차를 마신다. 이렇게 매일 아침 저녁으로 차 마시는 시간을 습관으로 삼은 지는 십년 정도가 된 듯싶다. 숙차도, 생차도 십여 종을 두고 매일 바꿔가며 마시고 있다.     


아침에 마시는 숙차는 식전 차지만 빈 속이라도 무리가 없다. 세면을 하기 전에 소금물로 입을 헹구고 생수부터 한 컵 마신다. 그리고 서재에서 숙차를 마시며 한 시간 가량 책을 읽는다. 먼저 내린 차는 머그컵에 담아 우리집 보살 아내에게 올린다.      


저녁에 약속을 잡을 일이 거의 없어서 7시 전에 귀가를 한다. 저녁은 간단하게 먹는 편인데 차를 마시기 위해 속을 채우는 정도이다. 환갑을 넘어서면서 특별한 약속이 아니면 귀가를 서두른다. 저녁 차, 아니 밤차를 마시는 나만의 시간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아침 차는 밤새 쉬었던 속을 깨우는 의미로 따뜻한 숙차를 마신다. 숙차는 향미를 음미한다기보다 하루를 시작할 마음을 준비 하는 시간을 채워준다. 넉넉한 숙차의 탕미는 출근 전에 조급해지는 아침에 긴장된 마음을 편하게 한다.     


이런 저런 일에 힘들었을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서둘러 돌아간다.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은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요즘은 매주 하루 이틀 아내가 손주 육아를 돕느라 집을 비우긴 하지만 귀가 길은 늘 서두르게 된다. 여덟시부터 차를 마셔야 하니까.     




이번 주는 밤차를 마시며 소설가 한승원 선생의 ‘차 한 잔의 깨달음’을 읽고 있다. 소설가로 한 평생을 사신 분이 노후에 차밭을 일구며 지낸다고 한다. 그는 아내와 함께 차농사를 지으며 직접 덖은 차를 마시며 차 생활의 오묘함을 글로 옮기고 있다.     


아침 차와 달리 밤차는 차의 향미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생차를 마시는데 카페인에 영향을 받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 어제와 오늘은 매일 다른 날이다. 그래서 오늘 밤에 마시는 차를 정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다. 어제 마셨던 차는 이미 지난 일이라 잊고 오늘 마실 차의 향미에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얼마 전부터 첫물고수차에 입맛이 맞춰져서 밤차를 정하는데 곤란을 겪고 있다. 첫물고수차를 소장한 분이 넉넉하게 나누어 준 차를 몇 달 마시다보니 다른 차는 손길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귀한 차만 마시며 차 생활을 이어갈 수 없지 않은가? 첫물고수차에 맞춰진 입맛의 방향을 조정해야 한다는 내 차 생활이 다시 편안해질 수 있다.     



이번에 마시게 된 대평보이 출시 황산차가 그 단초를 제공해 주었다. 황산차는 한자 그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황폐해진 다원의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다. 산지와 차나무의 수령은 밝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채엽 시기를 유추해보니 첫물차임에 틀림없었다. 단맛과 쓴맛이 조화롭게 다가오는데다 목넘김에 걸림이 없으니 밤차로 매일 간택하게 된다.     


화려한 밀향이나 독특한 향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쌉스레한 맛이 바탕을 이루고 입안 전체로 단맛이 퍼진다. 밤차는 딱 한 시간을 마시는데 일곱 여덟 포까지 우리면 마시는 내내 같은 향미가 지속된다. 대평님의 발품 덕분으로 이만한 차를 이 가격에 마실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생차는 가성비로 구입하면 안 되는 차라고 다우들에게 당부를 하지만 황산차는 예외라고 고쳐 얘기했다. 앞으로 밤차를 황산차만 마실 예정인데 한 편만 마시고 나면 그동안 손이 잘 가지 않았던 차도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보이차는 밥처럼 마셔야 하는데 입맛이 올라가면 차 생활에 지장을 주게 된다.     


황산차를 만나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던 입맛을 다시 평상으로 돌릴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밥맛이 왜 이러냐며 밥상 앞에서 밥투정한다고 없는 살림에 식단을 바꿀 수 없지 않은가? 일상차를 찾게 해 준 황산차가 고마워서 글로 남겨본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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