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 건축사, 시공자가 삼위일체로 이루어낸 성공적인 집짓기 스토리6
심한재는 중목구조로 공사가 진행되니 현장을 갈 때마다 진행되는 공정이 금방 금방 달라진다. 골조공사가 한창이더니 벽체와 지붕이 덮어지고 단열공사까지 금방 마무리되었다. 설계자 입장에서 너무 좋은 건 설계도대로 변경 없이 집이 착착 지어진다는 점이다.
주택을 스무 채 이상 설계를 해서 지었지만 설계자와 의논 없이 현장에서 변경되는 것을 피할 길이 없었다. 감리자가 현장에 상주하지 않으므로 시공자와 건축주가 협의해서 바꾸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외장 마감재와 인테리어를 임의대로 변경하고 디테일이 살아나지 않아 작품으로 승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설계자의 고민이 담겨있는 도면을 제대로 읽어내지 않고 시공자는 편의대로 공사를 해 버리기 일쑤이다. 그럴 때 감리자로서 지적하면 현장 사정을 들먹이며 핑계를 대면 진행되어 버린 작업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건축주의 일방적인 생각으로 도면이 무시된 경우는 자신이 살 집인데 자기 뜻대로 못하느냐고 하면 어쩔 수 없게 된다.
중목구조는 공사 진행 속도도 빠를 뿐 아니라 현장에서 변경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설계하는 과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설계기간이 여유 있게 주어져서 건축주, 설계자, 시공자 간의 충분한 협의와 검토가 이루어져서 설계가 마무리되어야 한다. 집 짓기가 설계대로 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고 공정이 진행되는 만큼 기대하는 결과가 드러나야 한다.
심한재는 채 나눔으로 두 채가 나뉘어 서로 계단홀로 연결되어 있다. 또한 좌우가 다른 이형異形의 경사도와 처마를 가진 단순하지 않은 형태의 집이다. 거실동은 지붕의 경사가 내부공간의 높이감을 주고 다락공간으로 접근하는 계단설치를 위해 공사가 쉽지 않은 지붕 형태로 설계가 되었다.
두 개층의 침실동과 여유 있는 천정높이를 가진 거실동을 이어주는 계단홀이 어우러져 리듬감을 만드는 외관으로 구성했다. 설계자가 고민을 많이 한만큼 현장에서 공사의 애로가 많다며 혀를 내두르면서도 공사는 잘 진행되고 있다. 창호공사와 외장재인 세라믹 사이딩 공사가 거의 끝나고 금속재 지붕공사를 일본 기술진이 직접 하게 되는데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1미터로 처마가 빠져나온 지붕을 가진 단독주택 심한재, 지붕이 있다고 해서 고전적인 집의 외관으로 떠올려야 할까? 붐처럼 지어지고 있는 단독주택들이 대부분 처마 없는 경사지붕이나 박스를 돌출시킨 평지붕이 대부분이다. 만약 단독주택에 처마가 없다면 정남향의 집 안으로 드는 여름 햇살을 견디며 살아야 할 것이고, 비 오는 날 창문과 마당으로 나 있는 거실문을 닫아야 하므로 빗소리를 듣는 정서를 포기해야 하는 일상이 될 것이다.
지붕재 마감공사가 남아있기에 비계가 쳐져 있는 심한재의 외관은 아직 실루엣에 머물고 있다. 아직 투시도와 모형과 비교해 보아야 완성된 결과를 유추할 수 있지만 설계자의 눈에는 만족스러운 결과가 그려진다.
심한재에는 내부공간의 변주가 다양하다. 일상이 리듬이 있어야 지루하지 않은 것처럼 집도 다양한 공간의 느낌이 필요하다. 강, 중, 약의 리듬의 조화로운 변화가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을 만들고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짜증 날 때도 노래로 감정을 풀어낸다. 심한재의 다양한 공간 느낌이 아마도 일상의 감정을 이끌어낼 것이라 기대한다.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면 맞닥뜨리는 계단홀은 소통의 장이다. 강 중 약으로 치자면 ‘강’에 해당되는데 뒤뜰로 열린 그라스커튼월이 통층공간通層空間을 느낌 있게 해 준다. 거실공간은 강중약의 ‘중’에 해당되겠지만 그냥 중이 아니라 강중이겠다. 공간느낌이 상상보다는 크게 나와서 마감이 끝나봐야 알겠지만 그냥 좋다. 평면 밖에 없는 아파트는 리듬을 느낄 수 없지만 채 나눔으로 공간리듬의 다양한 변주를 담아내는 시도, 그 결과는 구상보다 맘에 들어서 다행스럽다.
스프레이폼 단열재로 구석구석 단열공사를 끝내니 열이 샐 틈은 없어 보인다. 벽두께는 얇지만 창호와 벽체의 마감, 치밀하게 채운 단열재, 3중 유리 등 공사 중에 볼 수 있는 벽체가 가져야 할 기능을 충실하게 반영한 디테일을 본다. 패시버하우스 수준은 아니지만 이 정도에서 무엇을 더 바랄 게 남았을까 싶다.
실내 마감재의 색상과 질감에 맞는 자재를 살피러 건자재상을 돌아다니고 등을 고르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건축주의 취향을 살피니 설계자의 의지를 존중해 줘서 소신껏 선정을 마쳤다. 중목구조는 공사 중의 시간을 찰지게 쓸 수 있게 해 줘서 다행이다.
심한재 현관 위, 계단홀 상부에 좀 크게 낸 듯해서 신경이 쓰이던 고정창이 있다. 이미 설치를 마쳐서 잊고 있었는데 이 창의 역할은 다른 데 있는 것으로 건축주께서 찾아냈다. 사실 없어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여겼던 창이었다.
현장에 가 있는데 우리 담당 과장이 끌고 뒤뜰로 가자고 한다. 건축주가 발견한 기가 막힌 그림이 있다며 계단홀 안이 들여다보이는 자리에 나를 세운다. 고개를 들고 계단홀을 바라보니 그 고정창에 건너편 산봉우리가 떡하니 들어와 있었다. 고정창의 프레임이 액자가 되어 산봉우리가 그림처럼 담겨 있었다.
계단홀 안에 건너편 산봉우리를 집 안으로 들이는 재주, 마술처럼 산봉우리가 프레임에 걸려 집 안으로 들어왔다. 산봉우리가 참 참하게 생겼으니 건축주가 너무 좋아한다, 아직 비계가 걸려 있는 현장 상태가 분위기를 살려주지 못하는데도 묘하게 괜찮다. 심한재에 담은 설계자의 에피소드가 셀 수 없이 많지만 앞산을 당겨 계단홀의 창을 액자 삼아 담아낸 이만한 결과에는 미치지 못할 듯싶다.
지난한 설계 과정을 거쳐 도면으로 옮겨진 집이 공사 현장에서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면 설계자로서 기대반 염려반이 된다. 그동안 수십 채의 단독주택을 설계해서 지었지만 중목조를 택한 건 심한재가 처음이다. 철근콘크리트 조로 지으면 현장에서 왜곡되기 십상인데 중목조는 설계도 그대로 구현된다. 곧 완성된 집을 볼 수 있겠지만 벌써 염려는 간 곳 없고 기대만 마음에 부푼다. (2018,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