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 심한재, 집 짓는 이야기 - 프롤로그
우리는 누구나 집에 산다, 바깥에서 지내다가 집으로 가는 게 아니다. 집에서 지내다가 잠깐 밖으로 나간다. 바깥에서 잠시 볼 일을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는 곳, 그곳이 집이다. -이갑수 산문집 ‘오십의 발견’
길에서 길을 찾고, 길에서 길을 묻는다고 한다. 내가 서 있는 길은 그냥 길일뿐이다. 내가 찾는 길은 목적지로 갈 수 있는 길이다. 갈 곳이 없는 사람에게 길은 또 다른 길로 이끌어 방황하게 한다. 목적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길은 단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집에서 집을 찾고 있다. 집에 산다고 하면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이 바빠야 한다. 퇴근 시간이 임박해지면 집에 갈 차비를 차려야 한다. 해가 기울면 집에는 불이 밝혀지고 저녁밥 짓는 냄새가 동네에 가득해야 한다. 어둠이 짙어져도 불이 켜지지 않고, 저녁밥을 먹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들어서는 식구가 없다면 그 집은 집이 아니다.
아파트가 그냥 사는 집이라면 행복이라는 목적지를 향하는 집이 단독주택이라며 무모한 집 짓기를 꿈꾼다. 공중에 떠 있는 집을 떠나 땅을 밟고 살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의 소산일지도 모른다. 꿈은 꿈일 뿐이라는 사람은 꿈에서 꿈을 이루지만 꼭 이루어내겠다는 꿈은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집에서 나와 집을 물어가며 지은 집은 식구들의 행복한 삶을 잘 담아내고 있을까?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단독주택에서 산다는 상상을 하는 것도 녹녹한 일이 아닐 것이다. 단독주택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실내 공간밖에 없는 아파트에 익숙해진 습관을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잃어버린 바깥 생활을 일상에서 찾아내는 것이 단독주택과 아파트 생활의 큰 차이가 아닐까 한다.
아파트와 닮은 평면에 예쁘게 디자인된 외관을 가지고 넓은 마당에 잔디가 깔린 단독주택을 상상해 보자. 아파트는 외부공간을 따로 쓰지 않고 생활이 가능하도록 진화해 와서 발코니까지 떼어내 버렸다. 발코니는 공중에 떠 있는 집의 최소한의 외부공간인데 그마저도 탈피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화분 하나도 키우지 못하는 삭막한 공간에서 잠자고 씻는 기본적인 생리활동만 하게 되었다.
가장 합리적인 아파트 평면을 기본으로 하여 주택을 짓게 되면 외부공간은 정원처럼 눈요기 공간이 되기 쉽다. 단독주택이 아파트 평면처럼 구성되면 내부 공간은 생기를 잃게 되고 외부공간은 정원처럼 관리대상으로 전락한다. 아파트에서 벗어난 단독주택은 어떤 얼개를 가져야 할까?
단독주택을 지으려는 첫 번째 마음은 유목민처럼 떠도는 생활에서 한 곳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는 삶을 시작하려는 것이 될 것이다. 보통 은퇴한 이후의 삶을 보내기 위해 단독주택을 지으려 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직장 여건이나 이사를 해야 할 상황이 되면 미련 없이 집을 옮길 수 있다. 그렇기에 아파트는 집으로 쓰는 기능이 주로 밤 시간에 한정되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휴일을 아파트에서 지내더라도 거실에서 소파를 벗어날 일이 별로 없다.
정착민의 삶을 시작하는 단독주택은 하루 종일 집에서 머무는 생활을 담아야 한다. 사회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자연인으로 돌아가서 단독주택에서의 생활을 돌아보자. 처음에는 마치 유배된 듯한 외로움을 겪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침에 눈을 뜨면 집을 나가서 잠자는 시간마저 줄여가며 밖에서 할 일을 하느라 바빴는데 온종일 집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까? 우리집에서 무엇을 할 수 있지?
집 안이라는 내부 공간(陽)과 마당과 뜰 등의 외부 공간(陰), 함께 어울려서 쓰는 생활영역인 동적 공간(陽)과 개인적으로 쓰는 정적 공간(陰)으로 구분되어 음양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집은 건축물이라는 내부 공간(陽)과 마당과 뜰 등의 외부 공간(陰), 함께 어울려서 쓰는 생활영역인 동적 공간(陽)과 개인적으로 쓰는 정적 공간(陰)으로 구분하여 음양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양이 과하면 개인의 안정된 생활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음이 과하면 집의 사회적인 기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음양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집이라야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이 확보되고 각 구성원의 안정된 생활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집은 식구들이 모두 집에 머무르기를 좋아하게 되어 ‘우리집‘의 소속감을 가질 수 있다.
건축물은 공적 공간公的空間과 사적 공간私的空間으로 채를 나눔으로써 사회적인 활동과 개인적인 생활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한다. 공적 공간의 채에는 거실, 주방, 식당이 들어가고 사적 공간에는 침실과 서재, 다실이 포함된다.
공적 공간은 한옥의 사랑채에 해당된다고 보면 되겠다. 바깥주인의 영역이었던 사랑채는 일 년 내내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손님들이 드나들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따라서 거실채는 식구들이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쓸 수 있어야 하며 손님이 찾아와 편히 머물 수 있어야 한다.
사적 공간은 옛집의 안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사랑채에 손님이 있어도 안채의 생활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었다. 식구들의 방은 거실로부터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어야 하고 위치나 면적도 쓰기에 만족스러워야만 집에 대한 소속감이 커진다.
대지에 건축물을 앉히면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외부공간의 쓰임새를 부여하는 일이다. 빈 대지에 건축물을 배치하면서 가능한 넓은 마당을 두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단독주택의 외부공간으로 마당만 있으면 그만인 것은 아닐 것이다. 한옥을 살펴보면 건축물의 각 실과 이어지는 크고 작은 외부공간이 있다. 외부공간도 그 기능에 따른 역할이 있어서 내부 공간의 쓰임새가 풍부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옥의 외부공간은 사랑마당, 안마당, 뒤뜰, 행랑마당, 후원 등으로 그 역할이 내부 공간의 성격에 맞춰서 역할이 뒷받침되어 집의 분위기를 완성시키고 있다. 사랑채와 사랑마당, 안채와 안마당, 정지와 뒤뜰, 행랑채와 행랑마당, 정자와 후원 등으로 서로 기능과 역할을 공유한다.
우리나라 단독주택이라면 응당 한옥의 얼개를 이어받아야만 우리 체질-DNA에 맞는 집이 될 것이다. 우리 주택의 전통을 이어가는 이 시대의 단독주택이 갖추어야 할 요소들이 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내부 공간과 연계되는 다양한 외부공간인 쓸모 있는 마당을 찾아내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 주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내부 공간과 연계되는 다양한 외부공간으로 쓰임새가 주어진 마당을 찾아내는 데 있다
이 시대의 단독주택에 우리 한옥의 전통을 잇는 외부공간을 두는 것은 한국인이랄 수 있는 유전자가 적응하는 집이 되기 때문이다. 동북아 3국은 나라마다 외부공간을 쓰는 개념에서 집의 특성을 달리한다. 우리 한옥만 외부공간만 내부 공간과 같은 역할을 가진 기능을 가지고 있다. 내부 공간과 연계하여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다양한 외부공간을 두게 되면 풍성한 주거 생활을 누릴 수 있다.
큰 마당, 데크, 뒤뜰, 내정 등의 기능이 부여된 외부공간은 단독주택에서 사는 즐거운 일상을 기대할 수 있다. 이 시대의 단독주택에 한옥의 전통을 계승하는 요소인 외부공간인 마당을 통해 한국인의 집이라는 정체성을 찾아보자. 우리 주택이 가지는 고유한 외부 공간은 잔디가 깔린 큰 마당 하나가 아니라 내부 공간과 연계되는 다양한 마당으로 실현될 수 있다.
아파트에 살면서 잃어버린 일상은 손님이 집에 드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에서 손님을 집에 들이는 일이 사라져 버렸다. 식구들의 어떤 손님도 집에 부를 수가 없어서 친척들의 방문마저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부모님마저도 자식의 집에 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 되고 있다.
사위가 처가에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건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어서 백년손님이라 했겠다. 하지만 지금은 며느리가 시부모를 찾아와도 서로 편치 않아서 손주 보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아파트라는 집에 살기 때문이리라.
주인과 손님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해법은 조선시대 한옥의 사랑채와 안채에서 찾을 수 있겠다
출가한 자식들이 부모를 찾아와서 하룻밤을 묵어가는 것이 서로 불편한데 다른 손님들은 오죽할까? 핵가족 시대를 지나 독가족 시대라고 하는 이 시대의 삶은 외로운 노년을 보내야 하는 두려움이 여생을 걱정하게 한다. 손님을 배려한 집, 누구라도 기꺼이 집을 찾아와서 편히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단독주택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한다.
손님이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하는 해법은 한옥의 사랑채에서 찾을 수 있다. 안뜰을 중심으로 안채의 생활이 이루어지고 사랑마당을 끼고 사랑채의 동선이 분리된 한옥의 얼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실과 식당, 주방을 묶어서 공적공간을 설정하고 일층에 부부의 공간을 넣고 이층에 객실을 넣은 사적 공간을 두어 채 나눔을 한다면 해법이 보이지 않는가?
우리 몸에는 조상들께 물려받은 DNA가 있으니 우리 주택은 조선시대 한옥에서 집의 맥락을 찾아 이어나가야만 세대를 막론하고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된다
우리의 몸에는 조상들이 물려준 DNA가 심어져 있다. 살아 보지도 않은 한옥에 가서 편안함과 정겨움을 느끼는 것이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도 호감을 느끼게 되는 한옥, 한옥의 DNA를 찾아 이 시대의 단독주택에 심어야만 세대를 막론하고 백년가로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