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27
홍인이라는 오래된 차는 만들어진 지 80년 정도 되었는데 마실 수 있는 골동품이라고 한다. 357g 보이차 한 편에 2억이 넘는다고 하면 과연 차라고 마실 수 있을까? 만약에 홍인을 마신다고 하면 1g당 60만 원 이상이니 5g을 우리면 300만 원가량 된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이 어마어마한 금액의 홍인을 나도 마셔보았으니 어디 누군가는 일상의 차로 마시고 있을 것이다.
이제 고인이 된 선배는 노차를 주로 마셨는데 지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포장지를 풀지 않은 홍인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그 선배도 홍인을 마셔보지 않았을 리 없지만 포장지에 싸여있는 차가 궁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선배의 간절한 눈빛에 마음 약한 차 주인은 포장지를 열어 병면을 보게 해 주었다. 그날이 지나 얼마 되지 않아 홍인을 팔게 되었는데 포장지를 열었던 차는 천만 원이 깎였다고 한다.
1900년대 중반에는 보이차의 모든 포장지를 한 종류만을 써야 했다. 동그란 병차의 가운데 차자(茶字)를 가운데 두고 중자(中字) 여덟 개가 둘러싼 디자인이었다. 중차패(中茶牌)라고 부르는 이 포장지로 만든 차는 2000년도 초반에도 널리 쓰였다. 1996년 맹해차창에서 대익패 디자인이 나오고 2000년도 초반부터는 중차공사에서 중차패 포장지를 단독 사용하게 되었다.
중차패 디자인 포장지로 된 보이차는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포장지로 나오는 차는 대부분 노차로 유통되고 있다. 이 포장지의 문제점은 아무런 정보도 적혀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급차나 대익 7542 등 숫자급 차로 나올 때부터 생산연도마저 기입하지 않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산연도를 속이는 가짜 노차가 이 포장지로 유통되는 빌미가 되고 있다.
30년 이상된 90년대 초기 노차부터 진기 70년 정도 되는 홍인까지 중차패 포장지로 유통되고 있어 진위 여부를 가리기 어렵다. 그래서 차의 병면은 살필 수 없으니 포장지를 감별하는 전문가가 따로 있어 진품 여부를 판별한다. 포장지가 풀어졌던 흔적이 있으면 일단 차 가격이 떨어지는 건 포장지는 진품인데 차가 가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급 차인 경우 시음한 후에 구입 여부를 판단할 수 없으니 포장지를 열어버린 차는 진위 판별이 불가능해진다.
지금도 중차패는 중차공사에서 생산 중이라고 하는데 시중에서는 신차를 보기 어렵다. 대부분 노차로 판매되고 있는 차가 중차패 포장지인데 생산연도 마저 담겨 있지 않다, 그래서 중차패 포장지로 판매되고 있는 차는 판매자의 말만 듣고 구입해야 한다. 시음하고 구입한다고 해도 시음차와 구입하게 되는 차가 다를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유명 보이차창으로 대익패-맹해 차창, 노동지-해만 차창, 송학패-하관 차창을 3대 브랜드로 꼽는다. 이밖에도 수많은 보이차 브랜드가 있는데 2010년 무렵 고수차가 시장에 대세가 되기 전까지는 차창을 보고 구입해 왔다. 숫자급 보이차라고 부르는 차창차의 대표는 역시 맹해차창 대익패 7542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7542는 차 이름인데 앞의 두 자리는 75년에 출시된 차, 세 번째 숫자 4는 찻잎의 등급이며 마지막 숫자 2는 차창 고유번호이다. 7542는 생차, 7572는 숙차인데 생차는 3등급, 숙차는 7등급의 찻잎을 써서 생차를 더 고급으로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마지막 숫자 차창 고유번호 1번은 곤명차창, 2번은 맹해차창, 3번은 해만차창, 4번은 하관차창이다.
숫자급 보이차 포장지에는 대익 7542에도 2004년까지 차 이름도, 생산연도마저도 표기되지 않았다. 2005년 차부터 포장지에 7542라고 인쇄되어 나오고 2008년도 7542에는 801, 802라는 숫자가 암호처럼 적혀 있다. 보이차에 대한 정보를 포장지에 상세하게 기재해 주면 좋을 텐데 암호와 다름없는 내용으로 만드는 게 안타까웠다.
2010년 이전 보이차는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생산자도 차에 가치를 부여하기 어려운 것이었을까? 2010년 무렵부터 고수차가 시장의 대세가 되면서 찻값도 광풍이라 할 정도로 치솟아 올랐다. 보이차가 중국 대륙의 주력이 되면서 대익패 등 차창 차의 포장지부터 달라졌다. 보이차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징후가 포장지 디자인에서 감지되었다.
녹차는 물론이고 홍차나 청차류도 만들어진 당해 연도에 마셔야 하고 해가 바뀌면 새로 나오는 차를 구입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보이차는 다른 차류와 다르게 유통 기한이나 음용 기한이 없다. 보이차를 마시기 시작하면 수백 편을 구입하게 되는 건 금방인데 그 이유는 저렴한 찻값 때문이다. 보이차는 십 년만 지나면 쇠붙이가 황금이 되는 것처럼 파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믿기 때문이다.
아직도 보이차는 다른 차류에 비해 저렴한 차가 많다. 그렇지만 고수차가 보이차 시장의 대세가 되면서 찻값이 폭등하면서 지금은 대익 7542의 수십 배가 되는 차도 많아졌다. 보이차의 기준, 혹은 대표라고 했던 대익 7542는 지금도 십 년 전에 비해서 찻값이 많이 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대익 7542에 비해 몇 배에서 몇십 배가 더 비싼 차라면 포장지에 차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보이차와 비견될 수 있는 위스키는 포장박스와 병에 상세한 정보가 있어서 신뢰하고 합당한 값을 치르고 구입한다. 그렇지만 보이차는 아직도 찻값이 수십만 원이라도 포장박스는 고사하고 포장지에도 별 정보를 찾아보기 어렵다. 수십 년을 보관해서 가치가 높아진다고 해도 오래 보관한 차의 정보를 알 수 없으니 가짜 차가 난무하는 빌미가 된다.
고수차가 대세가 되면서 보이차도 포장박스를 갖추고 차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포장지에 담아 나오고 있다. 포장지에 들어 있어야 하는 차에 대한 정보는 생산연도와 채엽 시기, 차 산지, 와 차나무의 수령이다. 이 정보는 고수차의 가격 결정의 근거가 되므로 중국 정부나 윈난 성에서도 진위여부를 검정해 주면 좋겠다.
지금은 보이차 한 편에 몇 만 원을 넘어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이 되는 차가 적잖게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백 년 전 죽포에 싸서 말등에 싣고 차마고도로 가던 그 시절의 포장에서 큰 변화가 없으니 안타깝고 한심하다고 해야 할까? 오래될수록 더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보이차도 위스키의 포장에 관심을 두면 좋겠다. 이제 고수차부터 한 통 포장은 지양하고 한 편씩 개별 박스에 담아 차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기재해 주면 좋겠다.
보이차는 커피나 홍차처럼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인이 즐겨 마시는 차이다. 죽포에 싸서 보관하는 건 상인들이 창고에 보관하는 용도로 쓰고 소비자들에게는 한 편씩 종이박스에 담아 유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보이차를 개별로 종이박스에 담아 유통하면 여러 편을 보관하며 마시기도 좋고 선물로도 그만한 가치를 담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차에 대한 정보도 소비자가 보이차를 마시는데 꼭 필요하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 - '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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