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종의 보이차를 가지게 된 건 오늘 밤 최고의 차를 마시기 위함이라
저녁 8시 반이면 밤차를 마십니다. 매일 거르지 않는 내 하루 일과의 마지막 일정이지요. 밤 시간에 마시는 차는 오롯이 차 향미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카페인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서 생차를 마십니다.
매달 십여 종의 차를 정해 곁에 두고 그날의 밤 차 한 가지를 선택합니다. 매일 선택하는 차는 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차가 됩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오늘 밤이니 가장 맛있는 차를 선택해야 하지요. 오늘 밤은 '밤이면 밤마다'가 아니라 '다시 돌아오지 않는 밤'입니다.
어제도 마셨던 차일지라도 오늘 마시는 차는 향미가 같을 수 없습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생차는 수백 종이 넘지만 오늘 마실 수 있는 차는 딱 한 가지입니다. 제가 앉아 있는 차실에 곁에는 아무도 없고 차를 마시는 저만 있습니다. 내가 나를 위해 차를 정하고 물을 끓여 차를 우려서 차 향미에 젖어 봅니다.
이십여 년 간 차 생활을 하다 보니 수백 종의 차를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차를 많이 가지게 된 건 지금 마시는 이 한 잔의 차를 만나기 위함입니다.
차가 많다는 게 자랑일 수 없지만 이 차를 마실 수 있는 저만의 소확행을 누립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