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 생산연도를 가진 1997년 홍콩 반환 기념 숙차

'1997年慶香港回歸' 홍콩 반환 기념병 숙차 시음기

by 김정관

'숙차는 숙차다'라고 얘기한다면 숙차를 높여 부르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어떤 차일지라도 좋다거나 맘에 들지 않다는 건 차를 대하는 사람의 욕심이라 해야겠지요.

그렇지만 아직도 숙차와 생차를 비교하며 우열을 가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손병목 님의 글을 읽으며 생차와 숙차를 받아들이는 입장에 지극히 공감했습니다.


숙차를 위하여

— 차를 가르는 것은 맛이 아니라 몸의 형편이다


차는 저마다 다른 결로 시간을 품고 있다.

선택은 몸이 한다.


생차는 먼저 말을 건다.

향이 서고, 맛이 앞선다.


몸이 가볍고

마음이 앞서 있을 때

생차를 마신다.

지금을 붙잡고 싶은 날이다.


숙차는 말을 늦춘다.

향은 낮고

맛은 깊다.


탕에는 두께가 있고

미끈하게 넘어가

목이 아닌 속을 적신다.


윤기는 설명되지 않는다.

몸이 먼저 안다.


단맛은 늦다.

혀가 아니라

시간을 돌아온다.


잡내가 없다.

지워야 할 것을

세월이 안고 갔다.


향은 땅에 가까워

고개를 숙여야 느낀다.


밤이 길어지고

하루가 무거워질수록

사람은 숙차를 찾는다.


차를 가르는 것은

맛이 아니라

몸의 형편이다.


생차는

지금을 깨우고

숙차는

오늘을 견디게 한다.


생과 숙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각자의 시간에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남는다.


저는 숙차가 오래되었다고 해서 '老'를 붙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노백차, 노우롱차 등으로 숙차도 오래 묵히면 '老숙차'라고 부르지요.

그렇지만 '노차'는 시간과 함께 긍정적으로 변화된 차라야 존중의 의미로 '老'를 쓰는 것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숙차는 이미 발효 과정을 거쳐 후발효를 기대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보관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온라인 카페 다우께서 나눔 해준 '1997년경향항회귀' 기념병은 '老'자를 붙여 마땅한 숙차였습니다,

이 숙차는 1997년 홍콩이 영국 관리령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것을 축하하는 기념병으로 생산되었습니다.

1997년에는 숙차뿐 아니라 생차에도 차산지와 생산연도를 표기하는 걸 찾아보기 어려운 때입니다.

그런데 이 차는 숙차인데도 기념병이라서 그런지 생산연도와 반장이라는 차 산지가 표기되어 있습니다.



숙차가 만들어진 지 30년인 데도 보관이 잘 되어 엽저에 탄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갈색이 살아 있습니다..

숙차의 숙미는 거의 사라지고 반장 차 특유의 쌉쓰레한 맛이 바탕이 된 부드러운 단맛이 참 좋습니다.

숙차에서 쓴맛이 없으면 밋밋해서 단맛도 별 감흥이 없는데 이 차는 회감과 함께 단침이 입안을 채웁니다.

'향은 낮고 맛은 깊으며 탕에는 두께가 있고 미끈하게 넘어가 목이 아닌 속을 적신다'는 말 그대로입니다.


무 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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