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관 Dec 16. 2021

인생의 맛과 닮은 보이차의 향미

보이차의 첨미甛味, 회감回甘 그리고 회운回韻

사는 것이 참 재미가 없다. 예전에는 쉰이 지나고 나면 내 일도 시간이나 경제적인 면에서도 여유가 있었다. 시절이 좋았던 때는 나이에 걸맞게 그 여유를 봉사나 여가시간으로 보내면서 세상에 회향하며 사는 준비를 하는 분들도 많았을 터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여유를 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세상 탓만 할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은 의무와 책임만 있을 뿐 누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건 요원해보인다. 그냥 나의 부족함 때문으로 돌리며 앞만 주시하고 살아야 할듯 싶다. 


신세 한탄만 하고 살 수만 없으니 작은 변화라도  계기를 삼아 나를 바꿔보려고 애써 봐야겠다.  어떤 동기가 주어지지 않고서는 자신을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 긍정적으로 개선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마음을 먹으며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보려 마음을 다잡아본다. 



재미없는 요즘이지만 그나마 차가 있어 다행이지 싶다. 녹차를 마신지는 오래 되었지만 차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따로 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은 차에 대한 관심을 갖고 차모임도 가지면서 이런저런 차생활의 너비와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오래전에 네 시간을 연강으로 차에 대한 강의를 들었던 기억을 반추해본다. 차에 대한 지식은 꽤 가지고 있는 편이었지만 고수를 만나서 듣는 차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부족함을 보완해준다. 나의 어느 쪽이라도 부족하다고 여기게 되면 전체적인 일상에 이를 보완하려는 동기부여가 된다. 언젠가부터 차가 내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어서 내 삶을 흔들어 놓고 있다.

보이차는 그 맛이 어떤가 느껴보려고 하지만 딱 이 맛이라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차를 마시면서 그 맛이 어떤가 느껴보려고 하지만 이렇다며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차는 쓴맛과 떫은맛이 주를 이루지만 다른 맛이 아주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다가온다. 그렇지만 주로 단맛이 좋은 차를 찾는데 단맛은 감甘, 첨甛, 회감回甘이라고 다양하게 정의된다. 


요즘 밥보다 자주 즐기는 차는 보이차이다. 사실 보이차는 특별히 이런 맛이라고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차마다 다르게 다가오지만 초보자에게는 그 맛이 그 맛이라 할 정도로 뚜렷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왜 그런지는 꾸준하게 여러가지 차를 마시면서 알게 되는 게 보이차 음미의 왕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보이차의 맛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보이차는 쓴 맛과 떫은 맛이 강해서 그 해에 만들어진 차는 마시기가 어렵다고 한다. 보이차는 만든 지 적어도 5년은 지나야 마실만 하며 제 맛을 내기 위해서는 20년은 되어야 좋은 맛을 느끼게 된다. 


오래된 보이차에는 다른 차류茶類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깊은 맛이 있다. 오래 묵힌 세월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맛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회운回韻이라고 하는 향미는 차를 넘긴 후에 속에서 되돌아 나온다고 한다. 좋은 차는 이 회운이 몇 시간씩 지속된다고 하는데 초보는 감지하기 어렵고 감각이 예민하지 못한 사람은 아예 느낄 수가 없다고 한다.

보이차의 향미를 표현하는 말로 첨미甛味, 회감回甘, 회운回韻이 있다 


회감回甘이란 차를 넘긴 뒤에 바로 입안에 감지되는 단맛이다. 쓴맛과 떫은맛 뒤에 돌아 나오는 단맛이다. 회운은 좀 더 디테일해서 맛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일종의 향과 기운 같은 것이라고 할까? 회감은 차를 마신 즉시 느낄 수 있는 단맛이다. 회감은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회운은 느끼기 위한 훈련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니 고수가 되는 기준이랄 수도 있겠다.


또 다른 단맛으로 첨미甛味가 있습니다. 이 맛은 차가 입 안에 들어오자마자 혀로 감지되는 단맛이다. 한자를 파자한 대로 단(甘) 맛이 혀(舌)에 바로 느껴지는 맛이다. 흔히 말하는 단맛을 말하는데 그냥 입에 머금으면 달콤한 맛이 느껴지는 그 맛이다.



이렇게 표현하는 향미를 보이차에서 구분해서 느끼려면 꾸준하게 마시고 여러 종류를 마셔보아야 한다. 어떤 차에서는 첨미가 뚜렷하게 감지되고 어떤 차에서는 회감이 좋게 느껴질 수 있다. 회운은 차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도 있지만 차를 받아들이는 감각의 차원일 수 있어서 어려운 향미라 할 수 있다.


첨미는 아미노산의 함량이 높은 봄차를 마시면 밀향蜜香이라고 하는 기분 좋은 단맛을 음미하게 된다. 또 숙차는 쓴맛이 나는 폴리페놀 성분이 줄면서 단맛이 많아진다. 쓴맛을 따라 다가오는 깔끔한 회감은 차 산지의 특징으로 쓴맛이 좋은 차에서 느낄 수 있다. 

첨미는 바로 감지되는 단맛, 회감은 쓴맛을 따라오는 단맛,
회운은 차를 마시고 난 뒤에 속에서 올라오는 차의 향기이다 


고수차가 아닌 대지차-관목차엽으로 갓 만든 보이차는 쓰고 떫은맛이 강해 바로 마시기가 어렵다. 그래서 바로 마실 수 있게 급속 발효시킨 보이차로 숙차가 나오게 되었다. 숙차는 급속 발효되는 과정에서 회감과 회운이 모자라게 되는데 세월을 억지로 당긴 대가를 치른 것일지도 모른다. 


생차 중에서 관목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는 자연환경의 상태에서 시간이 지나야 쓰고 떫은맛이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오래된 교목 잎으로 만든 고수차古樹茶는 맛이 부드럽고 향기가 좋아서 만든 생산 당해의 차도 녹차처럼 바로 마실 수 있다. 관목과 교목은 어떤 차이로 다른 향미를 가지는 것일까?



광운 공병-생차가 이 색을 가지려면 30 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하다


 ‘재미로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을 얘기하는 것일까? 달콤한 인생이라고 표현하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서도 단맛을 찾는다. 달콤하다는 표현은 깊이는 없어도 즐겁고 재미있는 상태가 바로 느끼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쉽게 얻을 수 있는 단맛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빨리 느껴지지는 만큼 금방 끝나 버리는 것처럼 단맛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쓴맛 뒤를 따르는 회감이 필요하다.


그럼 재미와 다른 것으로 느끼는 인생이 있을 것이다. ‘느끼는 인생’이라고 표현한다면 몸보다는 마음으로 와닿는 맛이지 않을까? 그 느낌을 얻기는 어렵지만 한 번 느낌을 받게 되면 여운이 오래 지속되어 금방 사라지지 않는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다가오는 맛이야말로 자신만 가지는 고유한 의미로 즐기는 것이 될 것이다.

 보이차는 이 맛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자신만 느끼는 그 의미가 담긴 숨어있는 맛을 찾아 마시다 보니
흥미진진한 차생활이 된다


이처럼 보이차에는 재미와 의미가 함께 담겨 있는 것 같다. 보이차는 이 맛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자신만 느끼는 그 의미가 담긴 숨어있는 맛을 찾아 마시다 보니 흥미진진한 차생활이 된다. 세월이 만들어내는 차의 맛, 보관되는 환경과 세월의 연수에 따라 달라지는 맛, 차가 자란 환경에 따라 다른 맛, 수장하여 지켜보며 마시며  차마다 다른 맛을 음미하는 보이차에서 삶의 의미도 함께 느끼게 된다.


기본적으로 쓴맛과 떫은맛이 바탕이 되는 차가 보이차이다. 팍팍한 현실의  삶과 바탕에서 함께 어우러지고 그 안에서 조금씩 느껴지는 단맛과 그래도 살만하다는 희망의 여운이 보이차의 회운이 닮아 있다. 그렇게 찾아내는 보이차 한잔의 차맛으로 이 어려운 세상을 이겨내는 마음을 지킬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무 설 자

매거진의 이전글 그대와 마시는 차는 늘 향기롭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