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며칠 전, 산책길에 가까운 서점에 들렀습니다. 집에서 서점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도서관은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날씨와 기분에 따라 서점에 가기도 하고 도서관에 들르기도 합니다. 이 날은 하늘도 맑고 포근한 날씨로 산책을 하다 조금 더 돌아다니고 싶어 져 서점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인문학 코너에 다양한 책들을 둘러보다 사이토 다카시의 《훔치는 글쓰기》라는 제목에 눈길이 멈췄습니다. 독자를 사로잡는 제목이란 바로 이런 거구나 감탄을 하며 자연스럽게 이 책을 뽑아 들게 되더군요. 뭘 훔친다는 건지 괜히 궁금해지고, 훔친다는 것은 남의 물건을 슬쩍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글쓰기를 훔치다'라는 제목만으로도 부정의 행위를 긍정적으로 해내는 것 같아 호기심이 발동했죠.
결론부터 이야기할까요. 사이토 다카시 저자는 백 마디 말보다 강력한 문장의 힘이 어디서 온다고 강조했을까요? 예상대로 바로 독서입니다. 뻔한 결론이라면 읽을 필요가 없을까요? 모두 다 알고 있는 결론이지만 사이토 다카시만의 신선한 아이디어로 전개해 나갑니다. 자연스럽게 끌리는 문장들을 메모하게 만들고 완독 하게 만들더군요.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책을 읽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천재적인 작가는 읽지 않아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교만해도 보통 교만한 생각이 아니다. 세계적인 작가는 모두 엄청난 양의 책을 읽으면서 노력했다."
사이토 다카시는 여기에 적합한 작가로 미시마 유키오,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니자키 준이치로, 오에 겐자부로를 예로 들었는데 특히 오에 겐자부로는 도서관의 책을 전부 읽었다고 합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68, 오에 겐자부로는 1994년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들인데 이들처럼 천재적인 작가도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을 정도로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나 봅니다.
글쓰기 관련 책들을 읽으면 이런 부분이 공통적으로 나옵니다. 작가들의 자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을 예로 들면서 말이죠. 이게 참 부러웠는데 이제 한국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가 있어 언젠가 한강 작가와 인터뷰해서 비슷한 문장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노밸 문학상을 받은 우리나라 한강 작가도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 기도나 하면서 거저 얻으려고 하면 안 되겠죠." 이렇게 쓰는 거죠.
그건 그렇고 많이 읽기만 하면 되는 건가 하는 발문을 하게 됩니다. 독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심정으로 이에 대한 해답도 책의 흐름을 타고 전개해 나갑니다.
독해력과 문장력을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읽은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
배운 것? 느낀 점?
어떤가요? 책을 읽을 때마다 이런 부분들을 염두에 두고 읽고 있나요? 저도 스스로 자문해 봅니다. 저는 대체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보다는 마음에 와닿는 부분을 중심으로 메모를 하는 편입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깨우칠 수 있는 책도 있지만 깨우칠 때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책도 있거든요. 예를 들어 철학서들이 그렇습니다. 니체의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쇼펜하우어의 인생수업》과 같은 철학서들은 읽는 횟수보다 독자의 연륜에 따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소금 크기만큼 알아가는 것 같아요. 어쩌면 저만 그럴 수도 있겠지만요. 배운 것, 느낀 점 등은 매번 시간을 내서 메모하고 기록해 두려고 합니다. 결국 글쓰기는 노트에 정리해 둔 이런 메모들이 숙성되고 발효되어서 맛을 낸다는 진리를 알고 있으니까요.
글을 쓰는 전문가도 초보자도 글감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쓸만한 주제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그 주제에 대해 어떻게 깊이 있게 쓸 수 있는지에 대해 다들 고민하죠. 저도 그중 한 사람인데 사이토 다카시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읽기와 글쓰기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논픽션은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가 적은 텍스트이니 가급적 피하고 우리가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비교적 많은 작품들을 선택하여 그 간극을 나만의 상상력으로 채워보자."
사이토 다카시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으로 도라에몽 만화책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 도라에몽 책으로 초등학생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이런 교재를 쓰면 아이들은 흥미를 갖게 되고 도라에몽을 읽고 등장인물들의 입장에서 조금 더 면밀하게 새로운 대사를 만들 때 상상력이 자극된다는 거죠.
아이들은 그렇다 치고 이 부분에 대해 어른들은 찬반의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화에서 소재를 찾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면 다른 분야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꼭 책만이 아니니까요. 인상 깊게 읽은 만화책도 좋지만 인상 깊게 본 영화, 드라마도 있잖아요.
드라마를 보다가 마음을 흔드는 대사가 있다면, 음악을 듣다가 행복을 느끼는 가사가 있다면, 길에서 마주친 기억에 남는 광고 카피가 있다면 여기서부터 상상력을 동원해 글을 써보는 거죠. 저는 주로 이 방법을 사용합니다.
사이토 다카시는 일본문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을 다시 한국문화에 접목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문화보다 한국문화에 친밀감을 느끼기 때문에 아이디어도 쏙쏙 뽑아내기가 쉽거든요.
그것이 무엇이든 저자는 인상 깊게 읽은 것에 대해 문장으로 쓰라고 추천합니다. 한 번 써보면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고 쓴다는 것은 읽는 것보다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니 그만큼 흡수력이 높아진다는 것이죠. 이 내용에 대해서는 정말 깊게 공감합니다.
지난날 읽었던 책들을 다 기록해 두었더라면 지금은 그 기록으로 몇 권의 책은 거뜬히 출판하지 않았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도 해봅니다.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지식 곡간이 꼭 필요하잖아요. 이제라도 하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스스로를 위로해 봅니다.
의도와 상관없이 쓰던 글이 길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저도 이런 고민을 하는데 그 해답 또한 명쾌히 제시해 주어서 속이 시원했습니다.
"한 문장 안에는 가급적 하나의 정보만 담는 게 좋다.(중략)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주어와 술어를 대응시키는 '대응의식'을 완전히 습관화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되도록 간결하게, 한 문장 안에는 하나의 정보만 담아, 주어와 술어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문장이 길다고 전달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사이토 다카시 저자는 꼬임 없이 논리 정연하게 쓰기 위해서는 오늘도 내일도 쓰기 훈련을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모든 작가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하죠.
사이토 다카시의 《훔치는 글쓰기》후반부 3장과 4장은 개인적으로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3장에서는 '유혹하는 글쓰기를 하려면 국어 입시 문제를 보라'라고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도쿄대학 입시 문제로 예시를 들면서 문제의 의도를 파악하는 법, 삼각형으로 내용을 확장해 나가는 법, 키워드를 활용하는 법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메이지 대학 문학부 교수님 다운 글쓰기 비법일 수 있지만 대학 입시에 울렁증이 있는 저는 여기서부터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 책이 리포트나 논문,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한 목적으로 저술되었다면 책제목을 바꿔야 했던 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목차 3장 이후로는 연신 앞표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책 표지에 '리포트, 논문, 자기소개서를 위한 글쓰기'라고 적혀 있지는 않은지 확인이 필요했거든요. 일반 글쓰기에 대한 내용인 줄 알고 구입했는데 후반부는 원하는 내용들이 아니었습니다. 일반 글쓰기가 목적이라면 예시가 좀 적절하지 않습니다.
저자 사이토 다카시 교수님은 직업상 입시문제가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일반 사람들도 그럴까요? 한국사회 특성상 '입시'라는 단어만으로도 어깨가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저는 아직도 가끔 대학입시를 치르는 악몽을 꿀 때가 있거든요. 도쿄대학 입시가 아니라 작품성이 뛰어난 시나 소설, 수필을 예로 들어도 충분히 좋았을 거 같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두 번째는 틀에 박힌 정형화된 글쓰기입니다.
4장의 '자기소개서 잘 쓰는 9가지 방법'을 알려 줍니다. 일본에서 일본 학생들에게는 이 9가지 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겠죠. 한국 학생들은 이렇게 쓰는 것이 도움이 될까요?
우연히 미국에서 명문대를 합격한 학생들의 에세이를 모아 만든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보통 미국 대학입시 에세이는 2개에서 3개를 제출하는데 그중 하나는 일종의 자기소개서에 해당합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미국적인 에세이 형식과 자기소개서의 형식을 배워 아이에게도 가르쳐 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그런데 읽고 나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에세이의 공통점은 A4 한 장의 분량이라는 것 하나. 다른 점은 저마다 깊은 '울림'과 '진정성'이 있었습니다. '글이란 문장을 모은 것이 아니구나. 내면의 나를 진정성 있게 표현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전달하는 도구구나.'를 알게 되었죠.
이제는 한국도 대학에서도 사회에서도 획일화된 자기소개서를 원하지 않습니다. "Who are you?"라는 질문에 진정성 있는 "I am 000"를 보여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쉽나요? 아시다시피 아주아주 어렵습니다. 글을 쓸 때 좋은 습관을 배우기 전에 꼭 해야 할 것은, 나쁜 습관부터 버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옷에 묻은 커피 얼룩을 지우는 것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닙니다. 하물며 몸에 밴 주입식 글쓰기 교육의 흔적을 지우는 데는 정말 오랜 세월이 걸리기 때문에 틀에 박힌, 붕어빵을 찍어내는 듯한 글쓰기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이 있을까요?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글쓰기에도 커다란 들판이 필요하다. 너무 고삐를 세게 잡아당기지 말라. 스스로에게 방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허용하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조금 더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글을 쓸 수 있도록, 겹겹이 쌓여 있는 마음의 층을 벗겨 내고 글을 쓸 수 있는 방법들을 가르쳐 줍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글쓰기가 왜 멋진 일인지를 알려 줍니다.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합니다. 소설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멋진 것은 그런 게 기본적으로 공짜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올바른 한쌍의 눈만 갖고 있다면 그런 귀중한 원석을 무엇이든 선택 무제한, 채집 무제한입니다."
다른 책들과 함께 틈틈이 글쓰기 책들도 다양하게 읽고 있습니다. 이 책도 그중 하나인데요, 이런 글쓰기 책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은 각자의 자유로운 영혼을 일깨워 뭐든 창의적으로 만들어 보라고 제시하는 글쓰기 책에 나의 미래가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책은 이렇게 훔치고 싶은 부분과 훔치고 싶지 않은 부분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어떤 부분을 훔치고 어떤 부분을 훔치고 싶지 않나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가려서 배우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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