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네팔로 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타이밍이 있고,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처럼 사람과 장소 사이에도 그런 때와 연이 있다.
2008년 지구 한 바퀴 돌기 위해 집을 떠났다. 서쪽으로 향하던 나의 발걸음을 잡아 끈 것은 다름 아닌 히말라야였다. 당시 나는 이란부터 이집트까지 여행하고 아프리카로 넘어가려던 참이었다. 중동의 미칠듯한 태양, 메마른 산, 건조한 공기, 황량한 벌판과 사막, 무엇보다 친절하고 무슬림들. 다 좋았지만 무의식 중에 푸른 산과 물기 머금은 공기를 그리워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 ‘산이 나를 불렀다’고 하는 게 맞겠다. 서쪽으로 가던 내게 산은 어서 오라 손짓했고, 홀린 듯이 네팔로 날아갔다.
삼 년 간 세계 여행을 하겠다는 계획을 엎어버리고 다시 네팔로 간 건 2007년 ABC 트레킹의 기억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ABC 트레킹을 할 무렵 건강이 좋지 않았고, 웬만큼 회복된 후에도 복통과 두통은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녔다. 그런데 네팔 산행을 끝내고 나니 거짓말처럼 몸이 가벼워진 것이다. 그때와 같은 정화를 바랐는지 모른다. 몸에 쌓인 독소,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 오랜 시간 억눌린 채 쌓여 있는 감정의 때를 말끔히 청소하고 싶었다. 아니면, 그 모든 이유를 합친 것보다 단순한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그저 '걷고' 싶었다.
하루 온종일 걸으면서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고,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 싶었다. 내가 없어지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저 존재하기만 할 뿐인 황홀한 느낌.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산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중에 영국인 청년을 만났다. 면 티, 면바지에 얇은 운동화. 배낭에는 큼지막한 밀짚 모자와 무지개색 장우산이 달려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산 타기에는 불편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공기는 누구보다 가볍고 자유로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옷차림을 훑었다. 고어텍스 등산화와 쟈켓, 합성 섬유로 만들어진 기능성 등산복과 선글라스. 자조 섞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자연을 닮고 싶어 나왔으면서 산에서조차 인위적인 것들을 두르고 있다.
숨이 턱턱 차오르는 돌계단을
쪼리 신고 깔깔대며 뛰어다니는 네팔 꼬마들,
고산병에 걸릴까 봐 꽁꽁 싸매고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웃통 벗고 머리 감는 동네 청년들.
나는 아직도 벗겨내고 던져버릴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