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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il Madigun Jan 24. 2018

Walkholic Couple in Jeolla

긴길나그네 커플 in 전라도

강의를 듣기 위해 발걸음을 옮겨 강의장에 도착한 그 날은 여느 날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기계적으로 강의를 듣고, 논문 작업을 병행하다가 점심을 먹고 나니 너무나 나른해져서 꾸벅꾸벅 졸던 그 순간 누피가 나에게 브런치 하나를 보여준 것이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었다.


이번 일의 시발점이 된 눌산 님의 브런치 글(https://brunch.co.kr/@ozikorea/1)


금산여관에 꽂히다


첫 감상은 굉장히 단순했다.


우와... 좋다... 가볼까??


지난번 일본 여행도 그러했던  것처럼 저 한 마디가 우리의 일상을 또 송두리째 새롭게 만들어 주었다.

필자는 한옥의 그 예스러움을 굉장히 좋아한다. 지극히 한국적인 모양새에서 나오는 옛날 느낌과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특히, 한국사람)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안락함이 있다. 문을 열고 나오면 보이는 너른 마당과 그 마당을 바라보면서 햇빛을 오롯히 받아낼 수 있는 마루. 그리고 그 마루에 앉아서 살짝 고개를 들면 보이는 파란 하늘. 필자에게 한옥은 그런 자연스러움과 여유의 느낌이 강하다.

물론, 단열이 잘 되어 늘 따뜻하고, 세련되게 지어진 현대의 아파트나 양옥과 같은 편리함은 없다. 아파트는 굉장히 효율적인 주거 형태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처럼 땅덩어리가 작은데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많이 몰려있는 경우에는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주거형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술과 노래를 좋아하는 것처럼 우리의 유전자 속에는 한옥에 대한 알 수 없는 호감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 같다. 필자는 그 와중에서도 전통적인 한국의 것들에 대해 많이 끌리는 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금산여관 하나로 시작해서 우리는 순창으로 가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순창을 가는 직통 버스는 그 배차 수도 적거니와 일단 마지막 차가 떠나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우리가 출발하기로 마음먹은 날은 금요일. 짐을 싸들고 출근해서 교육이 끝나고 바로 출발하는 것을 가정하더라도 순창 직통 버스는 이미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선택지였다. 다음으로 가능한 방법이 서울-전주-순창, 혹은 서울-광주-순창 두 가지. 전주를 경유하는 편이 한 시간 이상 시간이 짧았지만, 이 역시 버스 시간에 밀려서 그렇게 우리는 광주로 출발했다.


광주, 그리고 순창


아무래도 출발시간이 늦다 보니  첫날의 목표는 무조건 금산여관 하나였다. 일단 간다라는 느낌이었달까. 금요일의 터미널은 혼잡스러웠고, 짐은 무거웠다. 생각했던 시간의 버스는 이미 만석이었고, 떡볶이로 대충 배를 채우고 우리는 늦은 광주행 버스에 몸을 싣었다.

광주행 버스 안. 흡사 야반도주의 분위기가 풍긴다.

생각해보면 필자에게는 굉장히 오랜만에 떠나는 버스 여행이었다. 대학교 새내기 배움터나 군 입대 전 시내버스 여행, 대학원 시절 지리산 종주를 위해 교수님을 모시고 떠난 것을 제외하면 고등학교 이후로는 거의 처음인 셈이었다. 여행을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늘 계획 없이 떠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동이 제한되는 기차나 버스보다는 승용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쉽게 목적지를 수정할 수 있고,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새벽, 버스가 다니지 않는 시골까지도 이동할 수 있다 보니 훨씬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하였다.

스쳐지나가버린 광주터미널

그렇다고 기차나 버스를 타고 하는 여행이 주는 낭만을 모르고 있지는 않다. 다만, 점점 더 그런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줄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랜만에 타는 고속버스는 생각보다 많이 진화(?)했고, 핸들로부터 자유로워진 몸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3시간 30분여를 달려 도착한 광주는 정말로 스쳐 지나가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누가 보면 노리고 출발한 것처럼 우리가 도착했을 때 바로 순창으로 떠나는 버스가 있었고, 다음 차량과 고민하는 와중에 우리는 '일단 금산여관'이라는 목표 하에 스쳐 지나가 듯 그렇게 다시 버스에 몸을 싣었다.


금산여관 게스트하우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5시 30분 출발. 그리고 5시간 30분이 지난 11시 우리는 금산여관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자보겠다고 버스만 5시간 30분을 탔다.

너무 늦게 도착한 나머지 주변 경관이나 여관의 전경 같은 건 거의 보지도 못했다. 다만, 늦은 시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짜증이나 불편함이 아니라 걱정스러움과 따뜻함을 보여준 것은 이 곳의 주인장인 홍대빵님과 남편인 사장님이셨다.

밤에 도착한 금산여관의 정문과 본채, 그리고 마당의 모습

하루의 피로와  이동 중의 시간적인 압박으로 힘들어하던 몸은 예상치 못한 환영을 시작으로 점점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그 절정은 게스트 하우스의 방 내부였다.

따뜻한 온돌 바닥은 정말로 오랜만에 방바닥에 녹아내리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중에는 너무 뜨거워서 어쩔 줄 몰라하기는 했지만, 따뜻한 이불과 광목이불의 조합은 어릴 적에 필자네 세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서 자던 옛날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겨울인데다 온돌바닥의 특성 상 이불 밖이 춥다는 문제가 있지만 이불 밖으로만 나가지 않으면 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광목 배게와 이불에 놓여진 수와 아기자기한 소품들

배게와 이불에는 직접 수가 놓여있었고, 방안의 소품들은 정말로 아기자기함 그 자체였다. 특히, 저 꽃잠이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귀여움은 보자마자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물론, 저 거울이 한 번 굴러 떨어지는 대형 참사가 벌어지기는 하였으나 천만다행스럽게도 깨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방 한 구석에 놓여진 귀여운 스탠드 전등

게다가 애당초 이 방은 우리가 예약했던 방은 아니었다. 우리는 1인실에 추가 1인으로 예약을 했으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정에 의해 방이 더 큰 곳으로 옮겨진 듯했다. 아마 당일 방문한 1인 손님을 1인실로 배정하고, 2인인 우리를 비어있던 더 큰 방으로 옮겨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은 우리의 추측. 그래도 이러한 사소한 배려들이 이 곳 금산여관으로 여행객들의 발길을 이끄는 큰 힘이 아닌가 싶다.

게스트 하우스 내부의 곳곳에는 이런 홍대빵님의 배려들과 콘셉트들이 배어있었다. 넉넉하게 마련된 수건이나 여러 가지 생필품들이라던가 특히 화장실은 정말 어릴 때나 봤던 타일이나 욕조들로 꾸며져 있어서 여기가 한옥집이구나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화룡점정은 세숫대야. 요즘에야 세면대가 어딜 가나 있어서 쓸 일이 잘 없는 세숫대야는 누군가에게는 추억과 향수를, 누군가에게는 새로움과 신기함을 자극할 수 있는 너무나도 적절한 소품이 아닌가 생각된다(물론, 씻다 보면 허리가 좀 아프지만). 그렇게 금산여관에서의 밤은 깊어져 갔다.


금산여관의 아침


아침에 일어난 우리를 맞이해 준 것은 지난밤 제대로 보지 못했던 금산여관의 정취였다.

한옥 게스트하우스 금산여관의 다양한 모습들

기존 한옥의 모습을 최대한 살려서 리모델링한 금산여관은 어떻게 보면 별다를 것은 없었다. 과거 우리들이 쉽게 보고 실제로 살았었던 주택들의 모습. 그냥 그러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이 이 금산여관이다. 마당을 둘러보면서 옛날 텔레비전들이나 빨래판, 오래된 책들, 그리고 마루와 미닫이 문들은 사실 새롭거나 신기한 것들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아파트와 빌딩들 속에서 살아오면서 이젠 쉽게 접할 수 없는 잊히고 있는 그러한 것들이다. 그 점이 바로 금산여관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새로운 것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나도 많이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그런 새로움에는 점점 지쳐가고 있지 않은가 싶다. 더 새로운 것을 원하는 사회의 모습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움의 역치를 높이고, 그래서 더 자극적인 것만을 찾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 아닐까.

금산여관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잊힌 것들, 잊혀가고 있던 우리들의 소중한 무언가를 자극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너무나 익숙하고 친숙한 것들이지만 이제는 보기 힘든 것. 사회생활로 인해 소원해지고 있는 옛 친구들이나 어느 집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겼던 누렁이들처럼 그런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비행기 장식과 아침을 먹었던 본채의 전경

그렇게 마당을 둘러보는 우리에게 금산여관의 주인장인 홍대빵님은 우리에게 아침을 먹으라며 손짓을 주셨다. 아침메뉴는 떡국. 엄청 맛있는 주인장만의 비법이 담긴 그런 떡국은 아니었지만 거실에 주인과 손님 모두가 둘러앉아서 먹는 떡국은 다른 비법이 필요 없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면서 김치하나, 장아찌 하나와 먹는 떡국은 또 다른 금산여관만의 손님 몰이 비법이 아닐까.

본채의 내부는 따로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 허락을 받고 찍는 것을 말릴 홍대빵님은 아니었겠지만 본채가 풍기는 그 느낌은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것이라고 느껴졌기에 카메라를 들었다가 그냥 다시 내려놓았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이제 본격적인 관광객으로의 마음가짐으로 돌아섰다.

고급커피와 일반커피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

목적지는 강천산.

많은 사람들이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은 알지만 군립공원을 아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군립이라는 이름처럼 규모적인 부분이나 인지도가 높은 편은 아닐 것이다. 전라도 순창에는 이런 군립공원이 있다.  그곳이 바로 우리의 목적지였던 강천산 군립공원이다. 순창이라고 하면 누구나 고추장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우리에게 고추장을 담그는 비법은 크게 매력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연이 오롯이 있는 산, 바다, 강 등이 우리의 취향에 가까우면 가깝달까. 강천산 군립공원은 그래도 그중에서는 가장 먼저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서 그런지 조금은 알려진 곳이다. 특히, 강천산에 있는 구름다리는 꽤나 많은 블로그에도 소개되어있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그렇게 순창 터미널에서 아직도 고급 커피와 일반 커피의 차이를 모르겠는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나누어 마시고 강천산으로 출발했다.


강천산 군립공원


강천산 군립공원은 그냥 이름 그대로 산이다. 전체적으로 등산로가 평지에 가까워서 특별히 높이 올라가는 부분이 많지 않아 실제로 유모차를 끌고 오는 사람들도 많은 정도로 등산로보다는 산책로에 가까운 곳이다.

강천산 군립공원 입구를 걸어가는 누피

우리가 방문했던 날은 나름 날씨가 좋았다. 주중에 비와 눈이 온 덕분에 공기가 깨끗하고 하늘도 맑았다. 조금 쌀쌀하기는 했지만 걷는데 큰 문제가 될 정도로 추운 날씨도 아니었다.

군립공원 입구 앞 주차장까지는 여러 음식점들도 많이 있어서 주말에 들려 산책 후 식사를 하고 돌아가는 코스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버스가 많지는 않아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조금 불편할 수는 있다. 우리도 도착 후에는 제일 먼저 돌아가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군립공원 내로 발길을 옮겨야만 했다.

그만큼 생각보다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점을 느낀 것은 버스 정류장의 매표소는 문을 닫았다... 정말로 그냥 닫혀있다.... 그래서 표를 사려면 매표소가 아니라 주차장 인근의 음식점을 찾아가야 한다. 찾아가서 버스표를 구매하면 주는 것은 이미 사용하고 회수된 버스표들. 그만큼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입장료를 내고 강천산 군립공원으로 들어가면 평평한 흙길이 펼쳐진다. 여름에는 사람들이 맨발로 다니면서 건강 걷기 같은 것도 하는 곳이다 보니 별다른 시설물이 없는 흙길이다. 지난 비와 눈으로 바닥이 조금은 진흙이 되어있었지만 나중에 날 따뜻할 때 맨발로 걷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강천산을 따라 흐르고 있는 맑은 물

강천산의 또 다른 멋들어짐은 물이다.

강천산에는 물이 많이 흐르고 있다. 길 옆에는 계속 물이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물이 많은 산이다. 그리고 그 물이 엄청날 정도로 맑다. 우리가 흔히 가는 서울의 북한산이나 관악산에서 보는 정도의 물이 아니라 시내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양의 물이 그것도 바닥이 다 비추어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곳에 은어들이 살고 있다고 하니 맑은 정도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이 증명된다고 본다(은어는 1급수에서만 사는 민물고기다. 맛있다고 한다.....!?).

이렇게 물이 많이 흐르다 보니 곳곳에 폭포도 굉장히 많이 볼 수 있었다. 강천산에 들어서면 초입부터 바로 병풍바위와 그곳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구장군 폭포나 산 곳곳에서 쉽게 폭포들을 찾을 수 있다. 폭포가 아름다운 이유는 떨어지는 물도 있지만, 물이 떨어지기 위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절벽의 모습일 것이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절벽과 그 위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은 어느 곳이든 아름답겠지만, 강천산의 폭포는 묘한 자연스러움이 녹아져 있는 모습이었다.

강천산의 풍경들과 병풍바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모습

폭포와 맑은 물, 그리고 곳곳에 있는 콘셉트가 녹아든 작은 다리들은 2km 남짓되는 구름다리까지의 길들을 쉴틈 없이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강천산 군립공원의 컨셉 다리들

병풍바위 앞의 항아리를 시작으로 고추, 메주, 단풍 그리고 십장생을 콘셉트로 만들어진 작은 다리들은 아이디어가 돋보이기도 하고 아기자기한 귀여움도 있었다.

그렇게 걸어서 우리는 원하던 구름다리에 도착했다. 사실 처음에는 가는 길목에 뭔가 지나칠 수 없도록 존재하고 있을 줄 알았지만, 구름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등산을 해야 했다. 너무 평지를 걷고 있어서 높은 곳에 있을 것이란 생각을 안 한 것도 있지만 누피가 얘기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그냥 그대로 지나쳐서 구름다리가 어디 있나 하고 찾았을 가능성이 높을 정도로 정말 저~ 위에 덩그러니 다리 하나가 걸쳐져 있었다.

강천산 구름다리를 올라가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은 것 같다. 대나무 숲 쪽 산책로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는 길과 구장군 폭포 쪽의 나무 계단을 이용하는 방법.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오르는 길. 역시나 계획이란 것이 없었던 우리는 가파른 철제 계단만을 보고 무작정 오르기 시작했다.

구름다리를 바라보는 누피

구름다리를 올라가는 길은 조금은 위험했다. 물론, 우리가 선택한 길이 위험한 길이지 다른 길들은 그렇게 위험한 정도의 길은 아니었지만 늘 그렇듯 우리는 익스트림한 길로 구름다리로 올라갔다. 올라간 곳에서 바라본 전경은 장관이었다.

열심히 계단을 오르는 누피

강천산은 해발 583m 정도로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다. 게다가 등산로 자체가 산을 오른다기 보다는 산과 산 사이를 걷는 느낌이 강하다 보니 주로 산을 아래서 위로 쳐다보는 경치만을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구름다리를 건너기 위해 산 위로 올라오니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여러 산 봉우리들 사이를 거닐다가 위로 올라오면서 보이는 것은 이 곳이 꽤나 산세 안 쪽에 위치한 다는 점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보이는 여러 봉우리들은 강천산이 그리 작은 산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우리가 건너려는 구름다리가 그 산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다리라는 점이었다. 비록 구름다리 자체는 조금 흔들리는 정도라 위험하지는 않았고 다리 자체의 미관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화려한 금문교와 같은 모습이나 사극에서나 볼 것 같은 나무와 굵은 밧줄로 연결된 위험천만한 낡은 다리가 아닌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빨간 철교였지만, 그 위에서 바라본 풍경만은 전혀 밋밋하지 않고 오히려 이 작은 산에서 볼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멋들어진 풍경이었다.

예전에 한 외국 여행객이 했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다. 기억나는 대로 써보면 다음과 같다.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너무나도 멋진 산의 풍경들을 볼 수 있고, 끝없이 펼쳐진 것만 같은 평야를 본 적도 있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의 아름다움이나 맑은 계곡, 그리고 가슴이 탁 트이는 푸른 바다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보았던 그 모든 것들을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모두 보았다.


구름다리 위에서 바라본 강천산의 절경들

우리나라 여행의 묘미가 바로 저 외국인의 이야기라고 본다. 작은 땅덩어리 안에 산이 있고, 강이 있고, 바다가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 곁에서 아무렇지 않게 존재할 때는 잘 모르다가도 막상 내가 경험하는 그 순간 감동이 밀려들어오는 그러한 멋이 있다. 이번 강천산의 구름다리 위에서 바라본 절경들은 다시금 그것을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맛있는 더덕, 그리고 동동주


강천산의 절경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입구를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은 별다른 이야기 없이 그저 걷기만 했다. 일본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종종 서울을 걷다가 누피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고, 아는 것이 없어서 두렵고, 말이 통하지 않아서 서로 말보다는 행동으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그렇게 걸었는데, 한국에 와서는 왠지 말이 끊기면 안 될 것 같고, 주변을 둘러보기보다는 서로만을 보다 보니 걷는 것보다는 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아.

아마 저 이야기가 은연중에 뇌리에 박혀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것 또한 좋아한다. 걸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많이 하기는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게 조금은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던 듯 싶다. 그저 가끔은 조용히 아무런 말하지 않고 나의 주변, 나무, 돌, 지나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랑하는 이의 존재 자체에 조금은 더 주의를 기울이면서 걷다 보면 그게 또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려온 강천산의 입구에서 우리는 두 번째 여행의 목적 달성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본 여행에서는 맥주였다. 일본이 맥주의 본 고장은 아니지만 맥주를 좋아하는 국가인지라 지역마다 지역맥주들이 있었던 것처럼 한국에서는 우리의 전통주인 동동주와 막걸리가 있었다.

순창은 누구나 아는 것처럼 고추장이 유명하지만, 이 곳 강천산은 더덕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강천산 앞에 있는 많은 음식점들의 주요 메뉴는 바로 더덕구이. 그리고 강천산에만 판매하고 있는 지역 술은 바로 더덕동동주였다. 우리의 목표는 이 더덕동동주를 맛보는 것. 그리고 우리는 음식점들 중에서 가장 바깥쪽에 있는 '전주선비식당'을 방문했다.

전주선비식당의 불더덕구이정식(?)과 더덕동동주 한 상

사실 맛도 보기 전에 버스표를 구매하면서 이미 동동주를 6통(;;;)이나  구매해버린 터라 이게 맛이 없으면 큰일 나는 상황이기는 했다. 둘 다 아침을 먹은 지 오래 지난 시간이 아닌 터라 크게 배가 고픈 상태는 아니었지만, 더덕이 정말로 맛있었다. 그냥 그거 하나로 모든 상황은 종료가 되었다.

고추장불고기더덕구이(메뉴명이 정확히 생각이 안 나서 내 멋대로 지었다)는 불고기보다 더덕이 더 맛있었고, 강천산의 더덕동동주는 동동주 특유의 단 맛과 함께 더덕의 씁쓰름한 맛이 잘 어우러진 잘 만들어진 술이었다. 다만, 강천산 산행 직후 낮술로 마신 동동주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우리를 실신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6통이나 되는 동동주를 들고 우리는 짐을 맡겨놓은 금산여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다시 금산여관, 그리고 이제 전주로


돌아온 금산여관에서 우리를 맞이해준 것은 역시나 홍대빵님.

입구에 부재중이라는 푯말을 보고 본채에서 우리의 짐을 꺼낸 뒤 동동주에 대한 걱정과 앞으로의 이동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햇볕을 쬐고 있는데 방 안에서 불쑥 홍대빵님께서 나타나셨다.

마루에서 햋볕을 쬐고 있는 누피

우리를 보신 홍대빵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다 금산여관 뒷문을 지나 순창군립도서관으로 인도하셨다. 그리고  그곳에는 신미식 작가님의 아프리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순창 군립도서관에 전시된 신미식 작가님의 아프리카 사진들(@전북도민일보)

볼 수록 감탄만이 나오는 사진들을 보고 한쪽에 놓인 커피 한 잔의 여유와 이쁘게 잘 지어놓은 군립도서관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이제 금산여관을 떠나게 되었다. 과하게 구매한 동동주 2통은 이후 금산여관을 방문할 또 다른 방문객들을 위해 맡겨놓고, 남은 동동주들이 터지지 않도록 새로운 봉지와 가방에 꽁꽁 싸매고 우리는 새로운 목적지인 전주를 향해서 금산여관을 뒤로 하였다.

나오면서도 금산여관 본채에 대한 생각을 쉽게 떨쳐낼 수가 없었다. 너무도 아름답게 지어진 한옥과 그 안에서의 여유로운 생활(물론, 여유로울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은 언젠가는 이루고 싶은 꿈으로 또 한편에 남아있을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순창터미널에서 전주로 이동하는 버스에 몸을 싣었다.


추억을 남기기 전에 추억을 만들어야 한다


전주라고 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비빔밥, 그리고 한옥마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필자와 누피는 딱히 한옥마을에 대한 환상은 이미 너무나도 오래전부터 깨어져있었다. 한옥이기는 하지만 금산여관처럼 오래된 옛 건물이 아닌 한옥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현대식 건물들의 모임. 물론, 옛 한옥을 유지하는 곳들도 많지만 이미 관광지로 개발이 된 지 오래된 전주의 한옥 마을은 금산여관을 보고 온 우리들에게는 지나치게 신식 건물의 느낌을 주었다.

전주터미널에 도착해서 우리는 그렇게 한옥마을을 지웠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중앙시장. 전주터미널 남쪽에는 전주천이라는 이름의 작은 내천이 하나 흐른다. 이 내천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곳이 바로 한옥마을 바로 앞에 자리 잡은 남부시장이다. 우리는 전주천을 따라 걷다 중간에서 중앙시장으로 빠지기로 하고 또 걷기 시작했다.

전주에서는 거의 사진을 찍지 않았다. 특별히 찍을 것이 없었기도 했지만, 조금은 사진기를 내려놓고 내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에 집중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얼마 전 읽었던 글(죄송하지만 원글의 출처가 기억나지 않습니다...ㅠ.ㅠ)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해서 수만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지나고 보니 자기 사진은 몇 장 되지도 않고, 와이프와 함께 찍은 사진도 몇 백장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우리야 주로 발이 커플로 나오는 사진이 많지만...

필자도 사진을 좋아하고 많이 찍고 사진을 통해 추억을 남기는 편이다 보니 극히 공감되는 글이었다. 사진을 찍다 보면 사진기를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많다. 특히, DSLR을 쓰다 보니 함께 찍는 사진보다는 주로 상대방의 사진만이 많이 남겨지고, 실제로 사진을 찍어 추억을 남긴다는 이유로 오히려 추억을 만드는 것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주객이 전도되어 버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주에서는 카메라와 사진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면서 걷고, 주변을 내 두 눈을 통해서 둘러보고 추억을 남기는 일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어찌 보면 전주가 이런 일을 시작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늘 보는 우리의 시내의 풍경들, 이런저런 건물들의 틈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무언가를 찾지 않고 내 옆에 있는 사람과의 시간에 집중을 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전주가 만들어 주었다.


이제 다시 집으로...


전주에서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사람들이었고, 버스와 서울에서의 지하철 시간에는 제한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전주의 3대 콩나물국밥집 중 하나인 현대옥에 들어갔다.

전주 현대옥의 콩나물국밥(남부시장식)과 수란, 그리고 모주

필자는 전주는 비빔밥보단 콩나물국밥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에는 서울에도 현대옥이나 삼백집의 체인들이 많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에서 먹는 콩나물국밥의 맛이 나지를 않는다. 그래서 전주에 오면 꼭 콩나물국밥은 한 그릇씩 먹고 올라가는 편이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우리는 터미널 앞에 있는 현대옥에 들어섰고, 역시나 콩나물국밥은 옳았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우리는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에게는 두 번째 여행이 또 이렇게 끝이 났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걸으면서 여행을 다닐 수 있을지는 사실 모르겠다. 건강이나 체력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며,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들이 우리를 방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이런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운 지금 많은 여행을 함께 다니고 싶은 욕심도 있다.


여행은 참 좋은 경험이다. 특히,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은 더욱 그렇다.

지난 일본 여행의 마지막에도 말한 것처럼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건 지난 여행을 통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지나간 여행을  되돌아보면서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을 알게 되고, 지금은 잊고 있는 무언가를 다시금 일깨워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현실을 살아가는데, 그리고 미래를  꿈꾸는 데에 아주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또 떠날 것이다. 언제 어디가 될지는 지금 우리도 모르지만, 또 떠나고 또 웃고 또 추억할 것이다.


Learn from Yesterday, Live in Today, Hope for Tomorrow.




Routes & Steps

전체 이동 경로(서울-광주-담양-순창-전주-서울) | Day 01: 5.97km / 8,014 steps | Day 02: 22.95km / 30,385 steps
순창 내 이동 경로(순창터미널-금산여관-강천산-순창터미널)


Summary


Total Distance: 28.92km

Total Steps: 38,399 ste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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