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의기양양하게 하는 것,'추억'

<서울 1964년 겨울>

by 카이로스엘

얼마 전에 김승옥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을 읽었다. 김승옥 작가님의 글은 그 문장들이 어쩌면 그렇게 호흡이 길고 유려한지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안에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을 비롯, 총 10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 있다.


사실 좋은 글의 기본적인 조건으로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을 꼽는 경우가 많은데(대부분의 경우는 그러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김승옥 작가님의 문장은 간결하지도 않고 명확하지도 않은 경우가 많다(심지어 약 열 줄 정도가 한 문장인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빠져들게 된다.


어느 순간 그 문장들에 휩싸이다 보면 글을 ‘읽는 것’이 아니고 ‘보는 듯한’ 착각과 환상을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마치 눈앞에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지듯 말이다. 그것도 그냥 보기만 하는 그림이 아니라 촉감까지 느껴지는 그림이랄까, 어떨 때는 냄새까지 느껴지는 것 같은... 온 몸의 감각기관이 총동원되어 자극을 받는 느낌이 든다.




김승옥 작가님의 <서울 1964년 겨울>에서 기가 막힌 문장을 발견했다. <무진기행>을 비롯한 다른 작품에서도 내 마음을 사로잡는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서울 1964년 겨울>에서 찾은 문장에 대해 써 보려 한다.


추억이란
그것이 슬픈 것이든지 기쁜 것이든지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한다.

슬픈 추억일 때는 고즈넉이 의기양양해지고

기쁜 추억일 때는 소란스럽게 의기양양해진다.



이것은 1964년 서울, 겨울의 어느 날 밤, 선술집에서 만난 ‘나(스물다섯, 시골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구청 병사계에서 일하고 있음)’와 안 씨 성을 가진 동갑내기 부잣집 대학원생과의 대화 부분에서 나온 문장이다.


대학원생 안 씨가 ‘나’를 향해, “김 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라는 물음에 “사랑하구 말구요.”라고 의기양양해하며 자신의 경험담(추억)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인데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냐’라는 질문 자체도 놀라웠지만 추억에 대해 저렇게 서술한 내용이 더 놀라워서 한참 그 문장을 바라보게 되었다.



‘의기양양’이란 말의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 ‘뜻한 바를 이루어 만족한 마음이 얼굴에 나타난 모양’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래, 정말 그렇다. 누구든 자신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것이 기쁜 것이든, 슬픈 것이든 자신의 진심과 열정을 가지고 이야기하게 된다.


그런데 이 문장이 더 놀라운 것은 그냥 의기양양해지는 것이 아니라 ‘슬픈 추억’일 때는 ‘고즈넉이’ 의기양양해지고, ‘기쁜 추억’일 때는 ‘소란스럽게’ 의기양양해진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역시 위대한 작가는 생각하는 바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이렇게 뛰어나고 독창적이구나... 를 느꼈다.


‘고즈넉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고요하고 아늑한 상태로’, 혹은 ‘말없이 다소곳하거나 잠잠하게’라는 의미를 가진다.


‘추억’이란 ‘지나간 일이나 생각’ 등을 의미하는데 보통은 긍정적인 기억일 때 많이 사용하는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슬픈 기억’과 ‘슬픈 추억’은 어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슬픈 기억’이라고 했을 때는 그야말로 객관적인 관점에서 단순히 슬펐던 과거의 일에 불과하지만, ‘슬픈 추억’이라 했을 때는 슬프지만 마음에 간직하고픈 소중한 기억이라는 의미가 덧붙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슬픈 추억’을 이야기할 때는 그냥 단순히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의기양양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잘난 체하며 시끄럽게 의기양양해하는 것이 아니라 ‘고즈넉이’, 즉 그 슬픈 추억을 떠올리면서 고요하면서도 잠잠한 모습으로 의기양양해지는 것이다.


‘고즈넉이’라는 말과 ‘의기양양’이라는 말이 대비를 이루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렇게 하나의 노래 속 멜로디처럼 잘 어울릴 수가 있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나는 이 문장을 보고 내가 가진 추억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정말 ‘추억’이라고 해서 한결같이 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이 있는 게 아니다. 개중에는 각종 부정적인 감정이 섞인 추억들도 포함되어 있다. 고통, 우울감, 패배 의식, 공포, 불안, 연민, 열등감, 자책감, 분노, 질투, 교만, 거짓, 위선 등등...


그런데 내가 이러한 것들을 모두 ‘추억’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담아둘 수 있는 것은, 이것들이 '극복', '성장', '내려놓음', ‘반성’, 혹은 ‘회개’ 등의 정화장치를 통해 걸러지고 썩어져서 지금의 ‘나(과거보다는 조금 더 괜찮아진 나)를 만드는 거름으로 작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가장 가깝게는 최근 코로나로 인해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일들을 우리 가족이 직접적으로 경험했던 일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남편과 아들이 코로나에 확진이 되어 격리 생활을 했을 당시에는 불안과 공포, 짜증, 원망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엄습해서 우리 가족들을 괴롭혔었다. 그러나 온 가족이 힘을 합해 극복해내고 일단락이 된 지금은 어느새 '고즈넉이' 의기양양하게 말할 수 있는 추억이 된 것이다.


반면 ‘기쁜 추억’을 이야기할 때는 그야말로 누구나 ‘소란스럽게’ 의기양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의 기쁨, 행복, 희열이 그대로 소환되는데 어찌 잠잠하게 의기양양할 수 있겠는가.




가끔 친정아버지께서 당신의 어렸을 때 이야기, 학창 시절 때 이야기 등을 해 주실 때가 있다(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될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그것이 자랑할 만한 것이든, 돌아가신 할머니 얘기처럼 슬픈 것이든 아버지의 얼굴이 빛나면서 그때의 추억에 젖어 눈빛이 아련해지시는 것을 본다.

김승옥 작가님은 이런 보통 사람들의 모습과 추억이 지닌 속성을 정확히 짚어 내고 그것을 저리도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문장으로 표현해낸 것이다.



나에게도 역시(지금도 그렇지만), 아버지처럼 나이가 들어갈수록 꾹꾹 눌러 담은 추억 바구니가 넘치고 넘쳐 담아두지 못하고 누군가와 나누지 않고는 못 배길 때가 올 것이다.


그 추억거리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이야기할 때면 나 또한 때로는 고즈넉이, 때로는 소란스럽게 의기양양해지겠지.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이 문장을 떠올리며 감탄해 마지않을 것이다.


추억이란
그것이 슬픈 것이든지 기쁜 것이든지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한다.

슬픈 추억일 때는
고즈넉이 의기양양해지고

기쁜 추억일 때는
소란스럽게 의기양양해진다.

-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中에서 -



매거진의 이전글길모퉁이, 설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