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삶을 가치 있게 하는 것
<위대한 유산>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영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인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읽었다. 민음사에서는 총 두 권짜리로 나와 있다.
이 작품은 예전에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는데 보지는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두 배우, 에단 호크와 기네스 펠트로가 주연을 맡았다. 책 표지에도 두 사람의 사진이 있는 걸 보니 영화가 꽤 유명했었나 보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가장 중시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 사랑, 믿음, 정직, 정의 등... 중요한 정신적 가치들이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쉽게 말해 ‘돈’이다.
가장 받고 싶은 선물 1위에 늘 ‘현금’이 꼽히는 것도 그런 현대인의 욕구를 반영한다. 돈 때문에 형제들이 싸우고 부모와 자녀가 원수가 되는 일도 다반사로 발생한다. 그만큼 인간은 본성이 욕심이 있는 존재이고, 물질적인 것을 탐하는 존재인 것 같다.
나도 인간이기에 돈이나 물질에서 완전히 초연하고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솔직히 명품이나 값비싼 보석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천성적으로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도 돈이 풍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당연히 돈이 있어 만족감을 느꼈던 적도 많다.
“돈으로 사람 마음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말이다. 드라마에서 들었는지 영화에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질문에 대해 ‘아니’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위대한 유산>의 주인공 핍은 어려서 고아가 되어 누나와 대장장이인 매형 조의 집에서 성장한다.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누나와 달리 조는 비록 무시를 당하고 배움이 없는 사람이지만 매우 따뜻하고 진실된 성품의 소유자이다.
핍은 원래 매형인 조 밑에서 대장장이 수업을 받고 대장장이가 되어 살고자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미스 해비셤의 저택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아름답지만 거만한 소녀 에스텔러로부터 천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로 스스로를 한없이 초라하게 느끼게 된다(그때부터 출세와 돈에 대한 욕망이 싹트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핍은 해비셤의 저택에 다녀온 후 어땠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자기가 믿고 따르는 매형 조에게만은 자신이 거짓말을 했음을 솔직하게 말한다.
자신이 천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 그래서 자신이 천하지 않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 그런 것들로 인해 어쩌다가 그만 거짓말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그런 핍에게 조가 이런 말을 해 준다.
진정한 친구로서
내가 너에게 해 주는 말을 잘 듣거라.
진정한 친군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네가 만약 똑바른 길을 가는 걸로
비범하게 될 수 없다면
비뚤어진 길을 가는 걸로는
더더욱 그렇게 될 수 없을 거다.
그러므로 더이상 거짓말을 하지 말거라, 핍.
그리고 잘 살다가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하거라.
이 말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아서 다이어리에 적어 놓았었다. 나중에 이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조의 이 말이 어쩌면 작품 전체의 주제를 아우르는 암시적인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뚤어진 길을 가거나 거짓된 방법이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똑바른 길을 진실되고 성실하게 걸어가는 것이 진정 행복한 삶이라고.
나중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거대한 유산을 상속받고 신사 수업을 받기 위해 런던으로 가게 된 핍. 핍은 그 이후로는 자신을 돌봐주고 사랑해 주었던 조를 창피해하고 결국 외면하게 된다.
그러다 자신에게 거대한 유산을 상속해 준 사람이 어렸을 때 만나 자신이 도움을 주었던 죄수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계속해서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던 중 나중에 정체를 밝히며 자신을 찾아온 그 죄수를 숨겨두었다 영국 밖으로 탈출시킬 것을 계획한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에게 발각되고 죄수는 죽음을 맞이한다. 핍은 그의 죽음으로 모든 유산을 잃게 된다.
갑자기 유산을 잃고 빚더미에 오르게 된 핍. 거기다 그간의 육체적, 심적 고통과 충격으로 심한 열병에 걸린다. 핍의 소식을 들은 조는 한달음에 달려와 극진히 간호를 하고 핍의 빚까지 조용히 대신 갚아 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핍은 돈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즉 이 작품에서 말하는 ‘위대한 유산’은 결국 ‘돈’이 아니었던 것이다.
핍이 받았던 진짜 위대한 유산은 매형 조로부터 받은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과 신뢰, 죽을힘을 다해 핍을 신사로 만들기 위해 애썼던 죄수의 헌신, 언제나 진실되며 지혜로운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비디와 허버트 같은 친구들의 우정이 아니었을까.
어느 날 갑자기 핍에게 떨어졌던 막대한 유산은 핍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 핍을 방탕하게 만들고, 가까운 사람들을 외면하게 했으며, 끝없는 불안의 구렁텅이로 몰아갈 뿐이었다.
1등 복권에 당첨되어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게 된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이 예상과 달리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다는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 돈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돈 앞에서 한없이 비굴해지며 망가져가는 인물들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그 모습을 디킨스는 매우 해학적이고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은 지금으로부터 150년도 훨씬 전(1860년)에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고전으로 계속해서 읽히고 있다.
아마도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성, 즉 돈을 최고로 알고 돈을 좇는 인간의 모습, 그로 인한 허무함과 고통 등이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물질로 인해 끊임없이 목마름을 느끼고, 그것 때문에 인간성마저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조가 핍에게 해 준 이야기가 큰 울림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잘 살다가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과연 어떤 삶인지 자꾸만 곱씹어보게 된다.
진정한 친구로서 내가 너에게 해 주는 말을 잘 듣거라. 진정한 친군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네가 만약 똑바른 길을 가는 걸로 비범하게 될 수 없다면 비뚤어진 길을 가는 걸로는 더더욱 그렇게 될 수 없을 거다. 그러므로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말거라, 핍.
그리고 잘 살다가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하거라.
-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