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위대한 유산>을 읽고 그와 관련된 내용과 생각을 적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위대한 유산>에서 찾은 인상적인 내용과 그것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을 적어 보려 한다.
나는 어느덧 40년이 넘는 인생을 살아왔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수많은 ‘하루’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고 나의 삶이 되었다. 만약 지금까지 지나 온 그 ‘하루’들 중 단 하나라도 빠지거나 아니면 다른 ‘하루’를 선택했다면 난 지금 어떤 모습이 되어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위대한 유산> 1권에서 발췌한 내용을 적어 보겠다.
그날은 나에게 잊지 못할
중대한 날이었다.
그날은 나에게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느 누구의 인생이든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에서 어느 선택된 하루가
빠져 버렸다고 상상해 보라.
그리고 인생의 진로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해 보라.
이 글을 읽는 그대 독자여,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라.
철과 금, 가시와 꽃으로 된,
현재의 그 긴 쇠사슬이
당신에게 결코
묶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느 잊지 못할 중대한 날에
그 첫 고리가
형성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위의 내용에서 ‘나’는 주인공 핍이고, ‘그날’은 핍이 미스 해비셤의 저택에서 해비셤과 그녀의 양녀인 에스텔러를 처음 만난 날이다.
핍은 원래 매형인 조의 밑에서 대장장이 기술을 배워 대장장이가 되어 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다가 큰 변수가 없었다면 지혜롭고 성격이 온화한 비디와 관계가 진전되어 결혼도 했을 것이다(비디는 결국 나중에 조와 결혼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핍은 어떤 계기에 의해 미스 해비셤의 저택에 가서 그 저택과 사람들의 모습에 압도를 당한다. 그리고 첫눈에 반했던 에스텔러로부터 천하다는 냉대를 받으면서 그의 삶에 변화가 시작된다. 이날 이후로부터 핍은 에스텔러와 자신의 처지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괴로워한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과 환경이 한없이 초라하고 천하다고 느끼며 신분 상승과 돈에 대한 욕망을 가지게 된다.
핍에게 있어 해비셤의 저택에 방문했던 ‘그날’은 핍의 인식에 풍랑과 같은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으며 그것을 계기로 핍은 완전히 다른 인생을 꿈꾸게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익명의 후원자로부터 유산 상속을 받는 행운이 주어졌을 때 그는 주저 없이 자신을 돌보아 준 매형 조와 비디 등을 외면하고 런던으로 떠나 버리게 된다.
그러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좇던 것들이 허망한 것들이었음을 깨닫고, 자신에게 주어진 소박하지만 진실된 삶이, 그리고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핍이 미스 해비셤의 저택에 가서 에스텔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해비셤의 저택에 방문했던 그 ‘하루’가 없었더라면 핍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아마 매형인 조에게 착실히 대장장이 기술을 배워 비디와 결혼해 평범하지만 평온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물론 엄청난 돈을 벌거나 하진 못했겠지만 적어도 이전 삶에서와 같이 지독한 불안, 우울, 방탕, 슬픔... 과 같은 것들을 경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삶을 돌아볼까.
나는 예전에 오래 일했던 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 일본 대학에 파견강사로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당시에 일본어를 못했다. 일본어를 하실 수 있는 선생님들이 계셨음에도 왜 한국어센터 실장을 맡으셨던 교수님께서 나에게 다녀오라고 하시는지 의아했다.
외국 대학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한국어를 가르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는 분명했지만 나는 일본어를 못하는 데다 혼자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엄두가 안 나서(대학교 때 미국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지내다 오긴 했지만 그때는 host family와 함께 생활했었다.) 처음에는 정중히 거절을 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그 대학은 일반 일본 대학과 달리 국제 대학교라서 일본어보다는 오히려 영어가 더 중요하다고 하시며 일본어는 못해도 되니 내가 꼭 가 주었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더 이상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가겠다고 했다. 사실 한국어 강사로서 너무나도 감사하고 분에 넘칠 만큼 좋은 기회임에는 틀림없었다.
덕분에 1학기 동안 일본에 가서 아주 좋은 경력과 경험을 쌓았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 기간에 일본에서 우리 남편 공룡 씨를 만났다는 것이다(그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는 또 다른 글(연하 남편이라서 좋은 점? (brunch.co.kr))에서 이미 언급을 한 적이 있다.).
만약 내 인생에 교수님이 꼭 가 보라고 재차 나를 설득해 주셨던 그 ‘하루’가 없었다면 나는 결국 일본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일본에 가지 않았다면 당시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던 우리 남편을 만날 일은 평생 없었을 것이고, 귀염둥이 우리 아들도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겠지.
이 책에서 저 부분을 읽고 나서 매일 평범해 보이는 이 ‘하루’가 인생 전체를 두고 볼 때 얼마나 중요한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하루'는 어떤 고리가 되어 어떤 방향으로 나의 삶을 연결하고 있을까. 나를 꽁꽁 묶이게 하는 무거운 쇠사슬로 연결이 되고 있을까, 아니면 나를 힘껏 끌어당겨주는 든든한 도움의 줄로 연결되고 있을까. 그리고 어떤 인연들과 나를 연결하고 있을까.
나에게 주어진 이 특별한 ‘하루’, 어쩌면 내 인생 전체를 뒤바꿔 놓을 수 있는 이 ‘하루’를, 좋은 선택을 하며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다.
그날은 나에게 잊지 못할 중대한 날이었다. 그날은 나에게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느 누구의 인생이든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에서 어느 선택된 하루가 빠져 버렸다고 상상해 보라. 그리고 인생의 진로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해 보라.
이 글을 읽는 그대 독자여,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라. 철과 금, 가시와 꽃으로 된, 현재의 그 긴 쇠사슬이 당신에게 결코 묶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느 잊지 못할 중대한 날에 그 첫 고리가 형성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