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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Jan 30. 2022

연하 남편이라서 좋은 점?

연하 남편과 사는 이야기

  어제 다음 포털사이트를 둘러보다 재미있는 내용의 콘텐츠를 읽게 되었다.


  엘렌 랭어라는 교수가 수명과 사고방식이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지 연구한 내용이 귀여운 삽화와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이 중에서 특히 나의 관심을 끌었던 건(아니, 끌 수밖에 없었던 건) 어린 남성, 즉 연하 남성과 결혼한 여성들이 평균보다 오래 사는 반면, 나이가 많은 남성과 결혼한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죽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사회적 시계를 배우자의 나이에 맞추면서 상대적으로 젊은 배우자는 '더 늙게' 되고, 나이가 든 쪽은 '더 젊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오호, 그럼 나는 오래 산다는 얘기네?'



  나는 연하 남편과 살고 있다. 우리 공룡 씨는 나보다 세 살 연하이다. 남편이 연하라고 하면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어머, 능력자시네요!!"


  나도 이 말을 꽤 자주 들었다. 왜 연하의 남자와 결혼을 하면 여자가 '능력자'라는 소리를 듣는 걸까?  일반적으로 연상의 남자와 결혼하는 여자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연하의 남자와 결혼한 여자가 특별하게 보여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쨌든 나는 이 '능력자'라는 말이 내가 뭔가 '노련해서(?)' 연하의 공룡 씨를 '휘어잡아' 결혼했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서 별로일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남편한테 유치하지만 당부 아닌 당부를 한다.


  "여보(우리의 호칭은 '여보'이다.), 사람들이 우리가 어떻게 결혼했는지 물어보면 당신이 나를 먼저 따라다녀서 결혼했다고 분명히 말해 줘."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남편이 먼저 나를 '졸졸(!?)'까지는 아니지만 내 주위를 빙빙 돌면서 나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눈치 없는 나는 그걸 특별한 감정이라고 깨닫지 못했고.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일본에서였다. 남편은 외고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바로 일본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당시 4학년 졸업반이었다(군 복무까지 마친, 복학생이었다.). 나는 서울 모 대학의 한국어강사였는데 일본 대학으로 1학기 동안 파견이 되어 온 상태였다.


  남편을 만난 곳은 현지에 있던 한인교회였다. 대학이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일반 성도들보다 대학생들이 훨씬 많았다. 그곳에서 일본 생활에 필요한 도움도 많이 받았고, 일본 대학에 온 한국 유학생들과도 친하게 잘 지냈다. 남편도 그 친하게 잘 지낸 유학생 중 한 명이었고, 그 교회 청년부의 회장으로서 많은 역할들을 맡고 있었다.


  내가 대학의 강사로 왔기 때문에 어린 1, 2학년 학생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남편을 비롯해서 나와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는 학생들은 '언니'나 '누나'라고 불렀다.


  당시에 남편은 중고차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차를 이용해서 주일마다 후배들에게 라이딩을 해 주고 있었다. 주일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도움이 필요한 후배들에게 늘 무료로 라이딩을 해 주었다. 나도 교회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야 했는데 남편이 픽업을 해 주겠다며 태워주곤 했다. 사람은 많고 차는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은 교회에다가 학생들을 내려주고, 다시 가서 또 다른 학생들을 데려오는 식으로 몇 번이나 코스를 돌았다.


  나는 그런 남편에게 가끔 기름값을 주었는데 남편이 지금도 말하기를 그때 내가 기름값을  준 것이 정말 고마웠다고 한다. 나는 학생도 아니었고 대학에 한국어 강의를 하러 온 입장이었기에 무료로 계속 차를 얻어 타는 것이 미안해서 그냥 조금 준 것뿐인데 남편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일본에 파견강사로 가 있으면서 교회에 있던 한국인 유학생들을 챙겨 주려고 나름 노력했다. 집에 초대해서 음식도 가끔 해 주고, 밖에서도 을  사 주고는 했다. 나 역시 외국에 혼자 나와 있던 입장이다 보니 저절로 우리나라에서 온 학생들을 챙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항상 주위에 여러 사람들이 있었고, 남편도 그중 하나였기에 나는 남편이 나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6개월간의 파견강사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남편은 부탁도 안 했는데 우리 집에 와서 하루종일 짐 싸고 집 청소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남편 덕분에 깨끗하고 청소도 하고, 기념품이나 선물 등을 잔뜩 사서 제대로 닫히지 않았던 내 캐리어의 입(?)도 무사히 닫을 수 있었다. 나 혼자였다면 아마 기진맥진해서 쓰러졌을 텐데 손이 빠른 남편이 도와주니까 일이 후딱후딱 끝났다.


  "누나, 내가 내일 아침에 와서 공항에 데려다 줄게요."


  집 정리, 짐 정리를 다 마치고 나서 남편이 내게 말했다. 다음 날 아침에 공항까지 자기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말이다. 얼마나 고마운 말이었는지. 혼자 대중교통으로 공항까지 갈 길이 아득했던 참이라 그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남편이 망설이다 덧붙인 말.


  "누나, 누나를 좋아해요. 우리 사귀면.... 안 돼요?"


  그때부터 우리는 한국과 일본에서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다. 내가 귀국 전날, 그 짧은 순간에 어떻게 '그러자.'라고 승낙을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내 성격과는 맞지 않는 매우 신속한(?!) 결정이라 신기하기만 하다. 나도 모르게 늘 나를 곁에서 도와주고 믿음도 좋고 성격도 좋았던 남편을 많이 의지하고 좋아하게 됐던 모양이다. 그러니 그렇게 신속한 대답과 함께 그 힘들다는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게 된 게 아닐까. 어쨌든 그 뒤부터 '누나'라는 호칭은 영영 사라져 버렸다.


  남편과 2월경부터 사귀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그 해 10월에 결혼을 했다. 장거리 연애로 사귄 지 1년도 안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당시 졸업반이었던 남편은 졸업 전에 일본 회사로 취업이 결정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남편은 취직도 했으니 장거리 연애를 접고 빨리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계속 장거리로 연애를 하다가는 헤어지게 될까 봐 걱정이 됐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했고 일본에서 4년간 지내다가 한국 회사로 이직을 해서 지금은 한국에 살고 있다.



  "아빠가 아니라 삼촌인 줄 알았어요!"


  전부터 우리 남편이 아들과 함께 밖에 나가면 자주 듣는 소리였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해서 한국 나이로 26살에 결혼을 했으니 그럴 수밖에. 아들은 결혼 후 그 이듬해에 태어났다.지금도 우리 아들(올해 중2) 또래 부모님들을 아버지들이 우리 남편보다 훨씬 연배가 높다. 그래서 항상 학부모들이 모인 자리에 가면 눈에 띈다. 너무 젊은 아빠라서.


  젊은 아빠라서 좋은 점이 있다면 '체력'이다. 아무래도 젊다 보니 체력이 좋아서 그런가 아이와 정말 힘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놀아 준다.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함께 몸으로 놀아 주는 아빠다.


  "우리 남편은 집에 들어오면 피곤하다고 TV만 보고 쉬고 싶어 하는데..."

  "우리 남편은 빨리 애들이 커서 독립했으면 좋겠대요. 애들하고 있는 거 너무 피곤하다고."


  우리 남편이 아들과 놀아주는 모습을 보고 친구나 지인들이 부러워했던 적이 많다. 나 역시 이 점에 대해서는 남편에게 정말 고마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야말로 저질체력에다가 워낙 몸으로 활동을 하는 성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 건지 뭔지 몰라도 사고방식이 대체적으로 나에 비해 말랑말랑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좀 더 새로운 문물(!?)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생각도 취향도 젊다. 그래서 남편한테 많은 배움과 도움을 받는다.



  우리 남편은 진정한 사랑꾼이다. 연애할 때 남편이 너무 잘해줘서 결혼해서 달라지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이 되었었다. 그런데 남편은 결혼하고 오히려 더 잘해준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마사지를 해 주는 우리 공룡 씨. 남편 휴대폰에 나는 'OOO주물주물'이라고 저장되어 있다. OOO은 내 이름이다. 늘 마사지를 해 주니까 '주물주물'이라고 붙였단다. 결혼 전까지는 마사지를 제대로 받아 본 적도 없고, 마사지에 대해 1도 관심이 없었는데 남편 덕분에 지금은 마사지 받는 시간이 제일 좋아졌다. 돈을 받는 마사지보다 남편 손으로 해 주는 마사지가 훨씬 좋다. 소파에 둘이 앉아 TV를 볼 때도, 밤에 잠들기 전에도 남편은 손이나, 발, 다리 등에 '주물주물' 마사지를 해 준다.


  남편은 뜬금없는 소리도 잘한다. 어제는 둘이 같이 차를 타고 인천대교를 건너는데, 인천대교를 건널 때마다 풍경이 너무 예쁘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반짝이는 바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이 정말 예쁘다고 말이다.


  "나는 당신이 더 예뻐."

  

  풍경 예쁘다는 소리를 하다가 갑자기 저런 소리를 한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러면 내가 굉장히 미인인 줄 오해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 객관적으로 나는 무척이나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남편은 내가 너무 귀엽다고, 예쁘다고, 사랑스럽다고 다소 오글거리는 이야기들을 늘 해준다(이 글을 쓰면서도 오글거림을 느낀다.).


  남편은 사랑이 많은 사람인데 그것을 무척이나 자주, 잘 표현하는 사람이다. 아내인 나에게도, 아들에게도.


  남편은 결혼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나에게 큰 소리를 치거나 화를 낸 적이 없다. 나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하고, 호르몬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예민해지는 시기가 오면 사소한 일에도 짜증도 내곤 했는데 남편은 그런 내 말들을 너그럽게 다 받아준다. 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들이 무언가 잘못을 하면 조용히 타이른다. 나는 그런 남편이 고마우면서도 신기했고, 지금도 신기하다.


  "당신은 정말 날개 없는 천사인 것 같아."


  이건 내가 남편에게 가끔 하는 말이다. 사람마다 그릇이 다르다고 하는데 우리 남편은 정말 마음의 그릇이 큰 사람 같다. 연하 남편은 좀 철이 없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우리 공룡 씨를 보면 그것은 정말 선입견에 불과한 말이다.


  그렇다. '선입견'. 


  '연하 남편'이라고 하면 여러 선입견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너무 좋게만 여겨지는 선입견도 있고, 부정적으로만 여겨지는 선입견도 있다. 그런데 내가 연하 남편과 살아 보니 그런 선입견들은 다 부질없는 것 같다. 나이가 많든 적든 두 사람이 결혼에 대해 책임감이 있고, 서로 아껴주며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나이는 인식이 되지 않는다.



  앞서 연하의 남성과 결혼한 여성들이 평균적으로 수명이 더 길다는 연구 결과가 있음을 소개했는데, 나는 좀 오래 살면 좋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남편보다 더 오래 살기는 싫다. 남편한테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여보, 절대 나보다 먼저 죽으면 안 돼. 알았지?"

  "알았어, 걱정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튼튼하니까 더 오래 살 거야."


  남편이 없는 세상을 혼자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울컥해진다. 너무 외롭고 쓸쓸하고 무엇보다 사무치게 보고 싶을 것 같아서. 내가 세 살이나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남편한테 너무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는 것 같다. 나보다 더 마음도 넓고 사랑도 많고 진짜 진짜 좋은 우리 남편 공룡 씨.


  이런 남편을 만났으니 어찌 됐든 난 정말 '능력자'가 맞는 걸까?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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