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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Jan 28. 2022

'천생연분' 퍼즐 맞추기

나는 오늘도 퍼즐 맞추기를 한다

  ‘천생연분’이라는 말은 보통 언제 쓰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부부가 생각과 마음이 일치해서 딱딱 들어맞을 때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우리 남편 공룡 씨와 나는 거의 모든 일에 대해 생각이나 의견 등이 일치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아이 교육에 대한 가치관, 인생에 있어서의 우선순위, 여행 스타일, 돈을 대하는 자세, 소비 성향, 집 꾸미기 취향, 심지어 부부 사이에도 꺼내면 안 다는 정치에 대한 견해까지.     


  이렇게 잘 맞을 때뿐만 아니라 맞지 않을 때도 천생연분이라고 느낄 때가 간혹 있다.      


  “우리는 정말 천생연분이야, 그치?”

  “그러게 말이야.”     


  우리 부부가 서로에 대해 천생연분이라고 격하게 공감하며 이런 대화를 제일 자주 나누었을 때는 어이없게도 치킨을 먹을 때였다.

     

  나는 ‘말랑쫄깃 닭다리파’인데 반해 공룡 씨는 ‘퍽퍽팍팍 가슴살파’라서 둘이서 닭 한 마리를 시키면 서로의 입맛대로 만족스럽게 치킨을 먹을 수 있다. 나는 닭다리 욕심 없는 남편 덕에 두 개를 다 차지하고 먹어도 눈치가 안 보이고, 남편은 남편대로 여유롭게 가슴살을 차지하고 먹는다(그런데 이 환상의 조화는 우리 아들이 치킨을 먹기 시작한 때부터 깨지긴 했다. 안타깝게도 아들은 엄마의 입맛을 닮아 닭다리파가 되었고, 난 더 이상 닭다리를 양손에 쥐고 행복해할 수 없게 되었다.).     


  청소를 할 때도 다르다. 남편은 ‘숲’을 보는 스타일이고, 나는 ‘나무’를 보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남편은 청소를 할 때 ‘크고 본질적인 것’에 더 집중한다. 그에 비해 나는 ‘작고 디테일한 것’에 집중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남편이 큼지막한 유리창 전체를 닦는 데 집중할 때 나는 그 유리창 틈새에 낀 먼지에 집중한다. 이 틈새에 낀 먼지가 안 없어지면 유리창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느끼는 거다. 그래서 청소할 때 남편은 큰 청소 도구를 가지고 돌아다니고, 나는 작은 걸레를 가지고 돌아다니며 청소를 한다.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우리 둘이 같이 청소를 하면 집은 완벽해진다.      


  하지만 진짜 ‘너무 다르다.’라고 느끼는 순간들도 있다. 시너지 효과를 내는 다름이 아니라 그냥 달라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 말이다.

      

  한 예로 우리 부부는 운동 성향이 완전히 다르다. 나는 진짜 나이 40이 넘을 때까지 숨쉬기 운동만 했을 정도로(이제야 울며 겨자 먹기로 운동을 조금씩 시작했다.) 운동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스타일이고, 남편은 동네 축구팀에 가입할 정도로 운동을 좋아한다. 남편은 같이 등산도 다니고 자전거도 타고 싶어 하는데 나는 거기에 절반도 응해주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저 집에서 쉬는 게 더 좋았으니까.

    

  그래서인지 남편은 아들이 어려서부터 아들을 데리고 나가 노는 것에 열심이었다. 아들이랑 둘이 나가 놀이터에서 놀기도 하고, 축구도 하고, 공 던지기도 하고, 자전거도 탔다. 여름이 되면 곤충 채집도 하러 다니고 겨울이 되어 눈이 오는 날이면 퇴근 후에라도 같이 밖에 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했다. 이때 남편은 늘 내게 말하곤 했다.

      

  “우리 놀고 올 동안 푹 쉬고 있어.”     


  둘이 나가 노는 동안 나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푹 쉴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아이가 없을 때라야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난 이런 남편의 배려가 정말 고마웠다. 남편은 나의 성향을 인정해 주고 집에서 편안하게 쉬도록 해 준 것이다. 셋이 외출해서 나가 놀 때도 나는 주로 풀밭이나 벤치에 앉아 쉬면서 둘이 뛰어노는 모습을 사진에 담거나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때가 많았다.      


  아빠가 놀이와 체육을 담당했다면 엄마인 나는 집에서 아이와 함께 숙제와 준비물 챙기기, 독서 계획 짜기, 방학 때 시간표 만들기 등을 담당했다. 그건 성격이 꼼꼼하고 계획 세우기 좋아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였다. 지금까지도 아이의 교육과 관련하여 챙겨야 할 것들(학원 스케줄 정하기, 학교 관련 준비 사항 등)은 내가 거의 도맡아 챙긴다.        


  또 하나 다른 점이 있다. 남편은 온 집안 전깃불을 환하게 다 켜고 다니는 스타일인데 안타깝게도 끄는 습관은 장착하고 있지 못하다. 정말 켜놓고만 다니는 것이다.      


  반면 나는 쓸데없이 불을 켜 놓는 걸 못 보는 스타일이다. 처음엔 남편의 그런 행동들이 고쳐지지 않아 속이 부글부글한 적이 많았다.


  "여보, 불 좀 끄고 다니면 안 돼?"

  "어, 내가 안 껐어? 껐는데?"


  더 기가 막힌 건 본인이 껐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처음에는 이렇게 잔소리를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남편이 불을 켠 뒤에 끄는 걸 깜박할 때마다 그냥 말없이 쫓아다니면서 끈다. 아무리 말해도 고쳐지지 않는 습관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굳이 입 아프게 잔소리할 필요 없이 내가 행동을 취하자고 생각을 바꿨다. 그랬더니 이젠 사소한 문제 때문에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할 일이 적어졌다. 남편이 나를 배려해 주었듯이 나도 남편을 배려해 주기 시작한 것이다.      


  ‘천생연분’은 결국 노력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관계'란 퍼즐 맞추기와 비슷한 것 같다. 퍼즐을 맞추다 보면 쉽게 맞출 수 있는 조각도 있지만 머리를 싸매야 겨우 맞출 수 있는 조각들도 많다. 그런데 퍼즐 조각을 맞출 때 그냥 눈으로만 보고 조각의 자리를 바로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손에 들고 있는 조각을 이렇게도 맞춰 보고 저렇게도 맞춰 보며 맞는 자리를 찾아낸다.


  이리저리 몇 번 맞춰 보다 잘 안 돼서 힘들다고 그 조각을 포기하고 내던져 버린다면 그 순간에는 속이 후련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퍼즐은 완성할 수 없게 된다.

     

  완전 남이었던 두 사람이 어떻게 모든 것을 단박에 딱 맞출 수 있을까. 이리 맞춰보고 저리 맞춰보고 나서야 ‘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요구되는 일이다.


  퍼즐은 급하게 완성할 필요도, 그럴 수도 없다. 서둘러 완성하는 데에만 급급하게 되면 초조해지고 짜증이 밀려와서 퍼즐판을 엎어버리고 싶어질 뿐이니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조각들을 맞춰가다 보면 언젠가는 멋진 그림이 완성되겠지...라는 느긋하고 너그러운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이게 바로 '관계'라는 퍼즐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까?


  남편과 나도 여전히 미완성 퍼즐이다. 아직도 부부로서 함께 맞춰나가야 할 날들이 많이 남았기에 퍼즐 조각들을 다 맞추려면 아직도 멀었다(애초에 그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오늘도 내일도 인내심과 즐거운 기대감을 가지고 하나하나 퍼즐 조각들을 맞춰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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