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일이면 학교들이 개학을 한다. 나도 곧 초등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을 하게 된다. 개학은 내일부터 하지만 내가 맡은 한국어 수업은 7일부터가 시작이다.
내가 이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국적은 매우 다양하다. 비율로 보자면 요르단, 예멘, 리비아, 시리아 등의 아랍 국가 학생들이 제일 많고, 그 다음으로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등 소위 러시아권에서 온 학생들이 많다.
초등학교라 더욱 그렇겠지만 아무래도 같은 언어를 사용하거나 같은 문화권에서 온 학생들끼리 무리를 지어 논다. 아랍 학생들은 아랍 학생들끼리, 러시아권에서 온 학생들은 또 그들끼리 자주 어울린다.
요즘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를 지켜보면서 작년에 해맑게 어울려 놀던 러시아 아이와 우크라이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한국어 수업을 하고 있는 초등학교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여학생이 한 명 있다. 러시아에서 온 학생들은 대부분 고려인의 후손들이라 겉으로 보면 한국 사람과 똑같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서 온 이 여학생은 우크라이나인과 고려인의 피가 반반 섞인 듯 보인다. 외모가 굉장히 이국적이면서 예쁘다. 그래서인지성격이 매우 조용하고 사교적이지 않은데도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무척 많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개학을 하고 아이들이 다시 만날 텐데 왠지 마음속으로 걱정이 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인해 혹시라도 상처를 받는 아이들이 생기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 때문이다.
친하게 지냈던 두 나라의 아이들이 올해도 작년처럼 잘 어울려 지낼 수 있을까. 그리고 러시아에서 온 아이들은 다른 국적의 아이들에게 괜히 비난 받지 않을까. 아이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내가 최초로 우크라이나 사람을 만나서 알게 된 것은 대학교 때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낼 때였다.
당시에 학교에서 ‘Russian girls’라고 불리던 교환학생들이 있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에서 온 학생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뭉뚱그려 ‘Russian girls’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에게는 매우 실례가 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엄연한 독립 국가이고 각 나라의 고유한 언어가 있는데도 ‘러시아’로 퉁쳐 버리다니 말이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워낙 같이 다니기도 하고, 함께 모여 이야기를 할 때 러시아어를 쓰니까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그냥 다 러시아에서 왔나 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요즘 우크라이나 사태가 계속 뉴스에 나오고 매일 우크라이나의 전쟁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가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때 만났던 우크라이나의 교환학생, 옥사나가 생각났다. 요즘 하도 이름을 잘 잊어버려서 20년도 더 된 그 이름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옥사나는 키가 아담하고 매우 날씬했으며 금발의 머리를 가진 예쁘장한 친구였다.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에서 온 학생들이 화장을 진하게 하고 하이힐을 신고 다니던 것과 달리 옥사나는 수수한 옷차림에 화장도 거의 하지 않았다.
나는 교환학생들 중에서는 주로 일본과 스위스에서 온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었기 때문에 옥사나와는 사실 많은 대화를 나눠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끔 카페테리아에서 만나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특유의 강한 악센트가 담긴 옥사나의 영어 발음이 생각난다. 옥사나는 매우 부지런하고 야무진 친구였다.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까지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옥사나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혹시나 다치거나 잘못된 것은 아닐까. 결혼을 했다면 그녀에게도 아이들이 있을 텐데... 무사히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 된다.
지금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는데 옥사나도 총이나 화염병을 들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얼마 전에 총을 들고 군사 훈련을 받는 우크라이나의 79세 할머니에 대한 기사를 읽고 눈물이 난 적이 있었다. 과연 나라면 나라를 위해 저렇게 직접 총을 잡고 나가 싸울 수 있을까?솔직히 상상조차 안 된다. 상상만 해도 손에 땀이 난다. 때문에 목숨을 걸고 결사항전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대통령과 국민들이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옥사나를 비롯한 모든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이 무사히 안전하게 이 시기를 잘 이겨내고 버텨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의 조국인 우크라이나가 하루빨리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온전한 평화를 되찾게 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