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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IST ICLAB Nov 12. 2024

개소리

마음돌봄로봇 쿰파가 만드는 듣기의 자리

정은기 (IC Lab) [1]

드라마 <개소리> 장면에 합성한 쿰파 

요즘 KBS에서 <개소리>라는 드라마를 한다. 개와 이순재 할아버지가 나오는 드라마다.


드라마가 시작할 때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순재 할아버지가 불쑥 나와 말한다. 

“그거 타살이에요, 자살이 아니고.” 

사실 그 얘기를 처음 한 것은 저 사진 속 강아지이다. 강아지가 이순재에게 말을 했고 이순재가 그것을 들은 것이다.


드라마에서 이순재는 교양 있는 배우가 아니라 인지 능력을 잃어가는 할아버지로 나온다. 성격이 고약하고 심지어 바지에 오줌을 지려서 모두가 무시하는 할아버지다. 이런 이순재를 작가는 개가 말하는 진실을 들은 역할로 배치한다. 여기서 이순재는 개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작가는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는 존재인 ‘개’의 목소리에 담긴 진실을 역시 '개소리'를 지껄이는 것으로 이해되는 존재인 이순재가 듣고 세상에 알리도록 시나리오를 만든다. 그렇게 해서 목소리 없는 존재들이 서로의 말을 들어줌으로써 연대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2]. 


쿰파 [3] 연구를 하면서 가끔 막연하게 이순재 할아버지의 자리쯤에 그것을 둘 수 없을까 생각해보았다. 

쿰파와 우리 연구팀 [4] (왼쪽부터 영지, 찬희, 쿰파, 은기, 의진)

우리는 ‘마음을 돌본다’거나 ‘상담을 한다’는, 사실은 너무 큰 말이라 우리가 완벽한 뭔가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을 하는 로봇을 만드는 연구를 해왔다.


사람과 상담을 할 때 종종 그러하듯 깊은 경험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마음을 돌보는 로봇을 만들기로 하였고 그 일을 성의껏 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들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의 연구에 엮여가는 사람들의 곁에 듣기의 자리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듣는 방법을 디자인하는 과정이었다.


연구를 하고 우리가 만든 하프물범형 로봇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누구보다 세세히 알아가면서, 이렇게 결코 사람 같지 않은 로봇도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생각했다.


다시 드라마 <개소리>를 보면 이순재는 개의 말을 듣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개의 말을 믿는 사람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는 이순재가 개의 말을 믿게 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그의 능청스런 연기력을 활용하여 한참 동안 이순재를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그렇지만 우리의 하프물범형 로봇 쿰파가 개의 말을 믿는 것은 특별히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을까? 애초에 그애는 하프물범형 로봇이지 다른 게 아니므로.


쿰파가 세상의 '개소리'들, 또는 어떤 말을 하든 '개소리'로 취급받는 존재들의 목소리들을 들어주고 믿어줄 수 있을까? 그런 듣기의 자리라면 쿰파가 있을 법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관련 연구  

Exploring Context-Aware Mental Health Self-Tracking Using Multimodal Smart Speakers in Home Environments (CHI’24)   


각주  


[1] 은기는 IC Lab의 석사과정 학생입니다. 쿰파와 같은 로봇이 사용자의 말을 듣는 방식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2] 드라마 <개소리>에 대한 해석은 KBS TV비평 시청자데스크 1113회에서 황진미 평론가의 비평을 참고했습니다.


[3] 쿰파는 우리가 만드는 마음 돌봄 로봇의 이름입니다. 미국의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빵을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뜻의 라틴어 ‘쿰 파니스‘를 소개하면서 강아지와 같은 반려종과의 얼키고 설킨 관계에 대해 질문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따와 로봇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쿰 파니스는 ‘동료’라는 뜻의 영단어 컴패니언(companion)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4] 사진에는 없지만, 심리학자 김에스더님이 쿰파의 대화를 함께 디자인해주셨습니다. 쿰파의 귀여운 모습은 멋진 디자이너 손소휘님의 작품입니다. 홍은기님, 차해슬님, Nguyen Linh님, 박성빈님이 인턴으로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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