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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IST ICLAB Nov 21. 2023

한(恨) 턱

아, 뭐야! 여기 언제부터 이런 턱이 있었어?

턱에 걸려 넘어질뻔한 인모의 팔을 민우가 급하게 낚아챘다. 그 바람에 민우가 양쪽 어깨에 하나씩 메고 있던 인모의 가방과 민우의 가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목발을 짚고 있어서 바닥에 있는 짐을 챙길 수 없던 인모는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짐까지 챙겨주는 민우를 보여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인모는 투덜거렸다. 

아니, 왜 이런데에 다니기 불편하게 괜히 턱이 있냐고…

인모는 몇 일전 카이스트 동기 친구들과 풋살을 하다가 발목을 잘못 접질렸다. 드리블 하는 도중 상대가 견제하겠답시고 발을 인모쪽으로 깊숙히 짚은게 화근이었다.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한 인모는 수술을 받고 1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있다가 오랜만에 N1에 있는 연구실에 출근하는 날이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인모는 처음으로 착용해보는 깁스와 목발이 마냥 족쇄처럼 느껴졌다. 인모의 친한 연구실 친구인 민우는 그런 인모의 연구실 출퇴근을 돕기로 했다. 오늘은 인모가 발목을 다치고 처음으로 민우와 함께 연구실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민우는 바닥에 떨어진 짐과 인모의 목발을 챙겨 일어서며 민망해하는 인모에게 자기 없었으면 어쩔뻔했냐며 웃었다. 뻘쭘해하는 인모를 위해 민우는 버스나 타러 가자며 가는 길을 재촉했다. 인모와 민우는 평소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카이스트 동문에 내려 N1까지 출근했다. 집에서 나와 연구실에 앉기까지 대략 25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인모와 민우는 얼마가 걸릴지 모르는 탓에 평소보다 30분 더 일찍 집에서 나와 출발했다.


출근길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집 앞 보도블럭 주변의 턱에 걸려 넘어질뻔 하기를 하지 않나. 저상 버스가 아닌 시내버스를 타는 것부터 내리는 것까지, 평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들이 목발을 짚고 다녀야하는 인모에게는 힘들게 해내야 되는 일들이 되었다. 인모와 민우는 평소처럼 604번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항상 출퇴근하면서 다니던 최단경로 루트로 향했다. 잔디밭을 지나 건물 앞쪽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이었다. 하지만 그 곳은 잔디가 무성하게 자란 잔디밭을 지나야 건물 앞으로 진입할 수 있는 경로여서 목발을 짚은 인모가 가기엔 힘들어보였다. 아쉽지만 둘은 카이스트 동문을 지나 잔디밭을 크게 돌아오는 루트로 건물에 도착했다.

야, 이거 꿈쩍도 안하는데?


N1의 1층 현관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크고 무거운 여닫이 문을 통과해서 학생증을 찍고 자동미닫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 여닫이 문의 무게를 얕잡아 본 인모가 문에 기대 어깨로 여닫이 문을 밀어보고 이내 빠르게 포기했다. 한쪽 다리로만 지탱해야 하는 인모의 힘은 문을 열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인모가 뒤로 물러서고 민우가 먼저 문을 밀고 들어갔다. 힘이 좋은 민우가 밀기에도 가벼운 문은 아니었다. 민우의 학생증을 찍고 자동미닫이 문이 열리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인모의 이마에 와서 부딪힌다. 인모는 그제서야 이마부터 등까지 온 몸이 땀에 젖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긴장이 풀렸는지 목발 때문에 계속 눌려있던 겨드랑이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25분이면 오던 거리를 40분이 걸려 돌아왔다. 괜히 배도 고픈 것 같았다. 인모는 자신의 가방까지 메고 긴 거리를 돌아온 민우가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건물의 문 하나 여는 것도 쉽지 않아서 민우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데, 한 달 동안 민우에게 민폐를 끼쳐야한다는 생각을 하니 인모는 답답했다.  

답답한 마음을 뒤로한 채 인모와 민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연구실이 있는 6층으로 도착했다. 인모는 목발을 옆에두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방금 출근했는데 출근길이 너무 고됐는지 바로 퇴근해야 할 것 같았다. 힘겹에 손을 뻗어 컴퓨터를 켜자마자 메일 알림이 울린다.


‘KAIST 1랩 1봉사 (L.O.V.E) 프로그램 시행 안내 Implementation of KAIST ‘1 Lab, 1 Volunteering’ (L.O.V.E) Program’


처음 보는 프로그램이라 어떤 프로그램인지 메일을 열어보려는 찰나에 곧이어 다음 메일 알림이 울렸다.


‘[CS592 공지] 오늘 CS592 수업은 1층 102호에서 오프라인으로 진행합니다.’


온라인으로 진행될지 오프라인으로 진행될지 모르는 수업. 오늘은 오프라인이다. 생각해보니 출근길도 평소보다 배로 걸렸는데 건물 내에서 이동하는 거지만 강의실까지 이동하는 데에 얼마나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인모는 일찍 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모는 수업을 같이 듣는 에밀리에게 노트북과 책을 갖다줄 것을 부탁하고 혼자 평소보다 15분 먼저 강의실로 향했다. 건물 내에서 층을 이동하는 엘리베이터는 평소보다 훨씬 편하게 느껴졌다. 만약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인모는 엘리베이터의 소중함을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102호 앞에 도달했다.  


N1 1층 현관에 있는 커다란 여닫이 문만큼이나 무겁고 비장해보이는 문이 102호를 지키고 서있었다. 인모는 오른쪽 목발을 벽에 기대놓고 왼쪽 목발에 의지해 오른손으로만 문을 당겼다. 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인모는 왼쪽 목발마저 벽에 기대놓고 한 쪽 발로 서서 왼손으로 다른쪽 문을 잡고 오른손으로 힘껏 문을 당겼다. 그러자 문이 열리면서 옆에 기대놨던 목발들이 옆으로 넘어졌다. 인모는 크게 한숨을 한 번 쉬고 목발을 챙겨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평소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인모의 눈에 들어왔다. 이 강의실은 계단식 강의실이었던 것이다. 평소 너무 아무렇지 않게 뛰어다녀서 평지같이 느껴졌던 이 강의실이 오늘은 스키장의 최상급 코스처럼 아찔하게 느껴졌다. 장애인 배려석이 가장 뒤에 마련되어 있었지만, 그 자리에 앉았다가는 그날의 판서를 모두 놓치게 될 것이 뻔했다. 눈이 그렇게 좋지 않은 인모는 교수님의 이목구비도 제대로 구분못할 것이 분명했다. 15분 전에 출발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인모는 한 계단씩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을 하나씩 내려갈수록 인모는 신체가 불편하여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조금씩 생각하게 되었다. 목발을 짚었기에 그나마 힘들게라도 이 계단을 내려갈 수 있지, 휠체어를 탄 사람은 저 강의실 앞에 가본적 조차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이겠지만 목발을 짚게 되니 내가 보지 못했던 세상의 또 다른 면에 눈을 뜨게 되는 느낌이었다.  


평소 앉던 앞에서 두번째 줄에 자리를 잡은 인모는 한 일이 출근하고 수업들으러 교실에 온 것 밖에 없는데 너무 지치고 힘들어 책상에 엎드렸다. 그 때, 인모의 노트북과 책을 챙겨와 준 에밀리가 교실에 도착했다. 에밀리는 인모 옆에 자신의 가방과 인모의 노트북과 책을 내려놓으며 앉았다.  

야, 너 불편해서 화장실은 어떻게 다니냐. 여기 자리까지 내려오면서도 보니까 다 계단이던데 어떻게 여기까지 내려왔어. 출근할 때 버스는 또 어떻게 탔대.

인모는 친구의 말을 듣고 문뜩 출근해서 봤던 메일이 생각났다. 이 건물로 출근을 하거나 수업에 오게 될지도 모르는 이동이 불편한 친구들을 위해 내가 뭔가를 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모는 핸드폰을 열어 메일 제목을 클릭했다.


‘KAIST 1랩 1봉사 (L.O.V.E) 프로그램 시행 안내 Implementation of KAIST ‘1 Lab, 1 Volunteering’ (L.O.V.E) Program’


첨부파일에 있는 ‘KAIST 1랩 1봉사 (L.O.V.E.) 프로그램 운영안’을 클릭했다.  

L.O.V.E : (조작적 정의) Laboratory Oblige for Volunteering & Empathy

Noblesse Oblige(F.)에서 착안하여 타인과 환경에 대한 공감(감정이입) 및 자발적 봉사 의지를 향한 연구실(Lab.) 책무감 부여·형성

(이념) KAIST 1랩 1봉사 (L.O.V.E) Program은 사회적 가치와 헌신에 대한 도전·흡수, 바람직한 가치관 확립 및 자기 결정적 행동을 추구·발현하고자 정의로운 사고와 실천에 지속적으로 물음하는 <창의-인성 융합 인재>를 핵심 이념으로 설정

(효과) ① 지역 및 (사회적)계층 간의 교육 격차를 해소·완화하고 상구·하화에 의한 품의 향상 ② KAIST 신뢰-인성 리더십 제고를 위한 대학 차원의 제도·정책 지원으로 독창적인 학생(조직)문화 창출 및 모범(성공) 사례 구축·보급

타인과 환경에 대한 공감… 감정이입… 자발적 봉사 의지… 인모의 현재 상황과 너무 상황과 너무 잘 맞는 취지의 프로그램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수업에 오기까지 이렇게 힘든 여정을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자유주제라니. 인모는 이동이 불현한 친구들을 위해 N1의 접근성이 괜찮은지 조사해보는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로 했다. 인모는 슬랙을 켜서 랩장인 현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누나, 우리 L.O.V.E. 프로젝트 해야 하는거 N1 접근성 조사하는건 어때요?’


현수에게 곧바로 답이 왔다.


‘안그래도 아이디어 찾고 있었는데 좋은 것 같아. 몇 명씩 그룹으로 나누어서 N1의 접근성이 괜찮은지 조사해볼까?’


인모는 수업내내 국내 접근성 관련 표준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이 건물이 보행이 불편한 사람들이 다니기에 적합한지 궁금했다. 인모는 오후에 있을 랩세미나에서 접근성 조사를 제안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N1의 위치를 다섯 구역으로 나누고 연구실 구성원들을 3~4명씩 총 5팀으로 나누어서 각 팀이 각 구역을 담당해서 조사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1팀은 건물로 진입하는 진입로와 외부를, 2팀은 지하 1층과 1층, 3팀은 2층과 3층, 4팀은 4,5,6층, 5팀은 7,8,9층을 맡았다. 인모는 다양한 접근성 조사 중에서도 보행, 통행과 관련된 내용에 집중했다. 장애인이 건물로 접근하기 위한 길이 얼마나 편리한지, 출입구, 복도, 통로, 계단, 승강기, 리프트, 경사로 등의 상태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수업이 끝나고 랩세미나 시간이 되어 인모는 현수와 함께 랩세미나에서 L.O.V.E. 프로젝트를 위한 접근성 조사 계획을 공유했다.  

저희 연구실에서는 이런걸 하면 좋겠는데.. 장애인들을 위한 접근성 조ㅅ…

아, 나는 저런거 진짜 낭비라고 생각해. 뭔 있지도 않은 사람들때문에 무슨 ㅋㅋㅋ

순간 랩세미나에 정적이 흘렀다. 매사 불평불만이 많고 랩세미나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의견에 반대 의견을 내놓는 염세주의자, 도훈이가 실소를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도훈이는 연구실에서 연구 이외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모두 아깝다고 생각했다. 특히, 본인이 지내는데 불편함이 없으면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은 귀찮고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도훈이는 이번에도 인모가 제시하는 아이디어가 바보같고 시간낭비 같다고 느꼈다. 학교에서 저런 프로젝트는 또 왜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었다. 결국 도훈이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이 N1 조사를 맡게 되었다.


각 팀은 각자 맡은 장소에서 접근성 관련하여 체크할만한 통로, 문, 턱과 같은 위치를 조사했다. 해당 위치의 사진을 촬영하고 그곳이 국내 접근성 관련 표준과 비교하여 잘 만들어져 있는지 비교했다. 인모는 추가로 꼭 접근성 표준과 관련이 없더라도 본인이 보행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라는 가정하에 불편할만한 것들을 정리해달라고 부탁했다. 각 팀의 팀원들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정하여 불편함이 있을만한 요소들을 조사하여 정리하였다. 각자 조사한 후 만나서 서로 찾은 문제점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기로 해서 도훈이를 제외한 모든 연구실 인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건물로 진입하는 진입로와 외부를 맡은 1팀의 두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는 건물 주변을 조사했는데, 보건복지부와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편찬한 장애인 편의시설 상세표준도에 따르면 휠체어 사용자가 통행할 수 있는 접근로의 유효폭이 1.2미터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접근로의 폭은 충분해보였어요. 다만 건물 주변에 기울기가 18분의 1 이상이 되는 곳이 있었고 (지형상 곤란한 경우에는 12분의 1까지 완화 가능), 중간중간에 턱이 있어서 수동 휠체어의 경우 지나다니는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지 내를 연결하는 주접근로에 단차가 있을 경우 그 높이 차이는 2센티미터 이하로 하여야 한다.). 동문의 버스정류장에서 하차를 했을 경우 건물로 바로 진입하는 경로도 장애인들이나 보행이 불편한 사람들은 이용하기 어려워보였어요. 그리고 계속 오르막이라서 더 힘들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대체적으로 여닫이 문들이 무거워서 혼자 열기가 힘들었어요. 휠체어 타고 있으면 그 문은 혼자 못 열 것 같은데.

문이 무거웠다는 두리의 말을 듣고 유경이가 말을 이어갔다.  

저희 2팀은 지하 1층과 1층을 맡았는데요, 저희도 문이 너무 무겁다고 생각했어요. 그 외에 지하주차장은 적절한 장소 (건축물의 부설주차장과 영 별표 1 제2호하목(1)의 주차장의 경우 장애 인전용주차구역은 장애인등의 출입이 가능한 건축물의 출입구 또는 장 애인용 승강설비와 가장 가까운 장소에 설치하여야 한다.) 에 적절한 크기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의 크기는 주차대수 1대에 대하여 폭 3.3미터 이상, 길이 5미터 이상으로 하여야 한다. 다만, 평행주차형식인 경우에는 주차 대수 1대에 대하여 폭 2미터 이상, 길이 6미터 이상으로 하여야 한다.)로 설치된 것 같았어요.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기 위한 통로에 높이 차이가 있는 턱이 있었어요. 원래는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서 건축물의 출입구 또는 장애인용 승강설비에 이르는 통로는 장애인이 통행할 수 있도록 높이 차이를 없애고, 유효폭은 1.2미터 이상으로 하여 자동차가 다니는 길과 분리하여 설치하여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1층에 있는 교실들에 계단도 많고, 휠체어를 탑승한 경우에는 교실 앞까지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해보였어요. 1층에는 장애인용 화장실도 없고, 화장실 들어가는 입구도 매우 좁아서 휠체어는 통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마 다른 층의 화장실을 이용해야 할 것 같아요.




2팀의 말이 끝나자마자 2층과 3층 조사를 맡았던 3팀의 윤조가 불편함에 대해서 말을 이어갔다.  

문 무겁다고 생각한건 어느 팀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네요.. 특히 2층이 메인 입구인데, 건물 내부로 들어오는 모든 문이 여닫이 문을 통과해야하고, 문이 무거웠어요. 이 문들 휠체어타면 혼자서 절대 못열어요. 누가 도와줘야 열 수 있죠. 그리고 일반화장실 입구는 최소 방향전환을 두번해야 들어갈 수 있고, 매우 좁아보였어요.

이번에는 7,8,9층을 맡았던 5팀의 수원이가 입을 떼었다.  

거기는 장애인 화장실 없었어요? 7,8,9층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있긴 했는데, 입구가 그렇게 넓지는 않았어요. 일단 복도의 유효폭이 1.2미터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화장실의 입구도 대략 1.1미터 정도 되어보였어요. 그리고 7,8,9층만 그런건지 모르겠는데 여자 장애인 화장실이 없더라구요? 7,8,9층에는 남자 장애인 화장실만 있었어요.

~110cm  

4,5,6층에도 남자장애인 화장실 밖에 없었어요.

4팀의 준영이가 대답했다.  

남자 장애인 화장실만 있을 뿐더러, 심지어 들어가보니 문에 ‘여기 화장실을 이용하지 말아주세요!’ 라는 문구가 붙어있던데요. 사실상 장애인용 화장실은 없는 것 같았어요. 그나저나 세미나실이나 교실 들어가는 문은 좁지 않았어요? 휠체어가 다니기에 좀 좁아보이던데…


7,8,9층도 세미나실 폭이 대략 85센티미터 정도 되어보였어요. 그나마 턱은 없었지만 그래도 휠체어가 다니기에는 부족한 폭이죠.


~85cm

영지가 수원이의 대답에 말을 이어갔다.  

저는 야외로 나가는 모든 테라스가 기억에 남아요. 평소에는 정말 불편한거 하나도 모르고 왔다갔다 했었는데 이번에 보니까 모든 테라스에 다 턱이 있더라구요. 문도 매우 무거워서 혼자 열기 어려워보였어요. 실제로 복도의 바닥면에는 높이차이를 두어서는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다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높이차이를 두는 경우에는 경사로를 설치해야 하는데, 경사로도 없고 턱과 높이차이는 있으니 휠체어를 탄 경우에는 테라스를 이용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저희 이런 문제점들을 정리해서 학교에 전달하는 것을 어떨까요?”


모두가 N1 건물의 통행 관련 불편한 점들을 정리하자는 영지의 의견에 동의했다. 본인의 일이 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보지 못했었다. 몇 년을 매일같이 오고가도 알아채지 못하던 것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여기저기 불편한 것 투성이었다. 통행에 불편함을 느끼는 누군가는 우리처럼 편하게 이 건물의 시설들을 이용하는 데에 한계가 있고, 심지어 모두가 N1의 장점이라 여기는 테라스 같은 공간은 아예 사용할 수도 없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논의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테라스로 나가려던 도훈이가 세미나실을 지나치며 논의 중인 세미나실을 흘깃 들여다보았다.  

뭐 저런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저렇게들 오래 얘기하는거야? 진짜 유난이라니ㄲ…!!! 아악!!!!’

밖에서 난 큰소리에 연구실 사람들이 모두 놀라 세미나실을 나왔다. 테라스로 나가려던 도훈이가 지나가며 세미나실을 쳐다보는 바람에 바닥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문턱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도훈이는 넘어지면서 꺾인 발목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지만, 그보다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연구실 사람들을 보기가 더 민망해서 괜히 큰소리로 소리쳤다.  

아, 뭐야! 여기 언제부터 이런 턱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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