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원 지음
엄마가 요양원에 가 있는 지금, 때때로 엄마의 마지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칠십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죽음을 생각하기는 이르다 싶다가도 늦은 것도 아니라는 마음이 슬그머니 든다. 엄마가 치매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있다. 엄마의 인지 상태로는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일은 하기 어려우리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가까운 가족이 그렇게 간 뒤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기에, 나한테는 그런 슬픔이 비껴갔으면 싶어서.
엄마가 요양원에 입소하기 몇 주 전 가족사진을 찍으러 갔다. 아빠, 엄마, 셋째 언니, 조카, 나와 남편, 아이까지 일곱 명이었다. 우리끼리 편하게 찍고 싶어서 무인 사진관을 예약했는데 엄마가 사진관인 걸 알고는 입구부터 싫은 티를 냈다. 엄마는 늘 자식한테 모든 걸 맞춰주는 사람이었기에 짜증 내는 모습이 낯설었다. 어렵게 시간을 내서 모였는데 협조를 안 하는 엄마가 미웠다.
엄마는 그날 자기 영정사진을 찍는 줄 알았던 것 같다. 변변한 가족사진 하나 없는 게 마음에 걸려 다 같이 사진 한 장 남기려는 의도였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오해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죽음 앞에서 의연하지 못한 엄마의 태도는 여전히 못마땅했다. 생(生)에 집착하는 듯한 엄마의 모습은 내가 기대하는 죽음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수월한 농담》에는 ‘옥’이 나온다. 입에서 만들어 나오는 소리만으로도 예쁘고, 어쩐지 애달픈 마음이 드는 ‘옥’. 죽음을 대할 때를 빼고는 ‘요구가 드문’ 옥처럼 엄마도 평생 자신을 위해 무엇을 요구한 적이 거의 없다. 자식 먼저, 남편 먼저, 그러다 보니 자신은 뒷전이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면 행여나 자식 주머니에서 돈이 나갈까 봐 걱정하며 본인의 쌈짓돈을 건넸다. 서울 이모는 그런 엄마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하여튼 쟤는 지 새끼 돈 쓸까 봐 벌벌 떤다니까.”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요구가 드문 엄마의 모습이 익숙해진 탓일까. 나는 싫은 감정을 표현하는 엄마가 낯설었는데 《수월한 농담》의 저자 송강원은 엄마의 변화를 반갑게 맞이한다. 내게는 없는 모습이다. 엄마와 보낸 어린 시절부터 ‘옥’의 투병 생활, 그가 떠난 후의 일상을 보며 나는 엄마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생각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엄마를 보낼 생각만 하는구나. 붙잡을 생각은 안 하고.
그 시절을 돌아보며 어린 나의 멱살을 잡았다가 천천히 놓는다.
이런 생각을 하는 지금의 내 멱살을 잡고 싶은 날이 오겠지. 수월하지 못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