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AI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카카오AI리포트]국제 인공지능 법학회 참관기

이상용 충남대 로스쿨 교수


언제쯤이었을까. 아마 이율배반의 재귀적 순환에 관한 더글러스[1] 호프스태터(Douglas Hofstadter)의 명저 “괴델, 에셔, 바흐” 에 매료되었을 때부터였지 않았나 싶다. 그 후 한스 모라벡(Hans Moravec)[2],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3], 닉 보스트롬(Nick Bostrom)[4] 등의 저작을 읽어 가면서 나는 점점 인공지능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현재의 기술 수준이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음을 알게 된 뒤에도 관심은 커져만 갔다. 온라인 그룹[5]을 만들어 별로 내키지 않아하던 동료 판사들을 억지로 가입시키기도 했었는데, 생각해보면 2015년 법원을 그만두고 로스쿨로 옮기게 것도 인공지능과 법이라는 분야에 좀더 시간을 쏟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카카오 AI 리포트] Vol. 6 (2017년 8월호) 는 다음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Industry - 데이터와 음성인식

01. 하용호 : 머신러닝 적용의 실제, 논문이 가르쳐주지 않는것들

02. 김훈 : 음성인식 방법과 카카오i의 음성형엔진


[2] Trends - 생생한 AI 현장의 이야기

03. 이상용 : 국제인공지능법학회 참관기 (이번글)

04. 하영식 : AI 접목된 의료영상의 주요 플레이어들


[3] Learning - AI 연구 동향과 강화학습 개념

05. 정수헌 : AI 3대 학회 발표논문 경향

06. 엄태웅 : 딥러닝 연구의 현재와 미래 part 2

07. 최성준, 이경재 : 알파고를 탄생시킨 강화학습의 비밀 part 2


[4] Information

08. 앤드류 응의 코세라 딥러닝 전문가 과정 소개  


[카카오 AI 리포트] Vol. 6 전체글 다운받기

내용 중간의 [ ]는 뒷부분에 설명 및 관련 문헌의 소개 내용이 있음을 알리는 부호입니다. 예를 들어, [1]에 대한 설명은 '설명 및 참고문헌'의 첫 번째에 해당합니다.



런던으로

동료 교수들과 이 주제에 관하여 토론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우리는 곧 인공지능과 법을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이 모임은 이제 ‘한국인공지능법학회’라는 어엿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6월, 국제인공지능법학회(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Artificial Intelligence and Law, IAAIL)에서 격년으로 개최하는 16번째 컨퍼런스가 런던에서 열렸다.


연이은 테러 보도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우리는 잔뜩 보험에 가입한 것을 위안으로 삼아 런던으로 출발했다. 6월 런던의 날씨는 좋았고 컨퍼런스가 열리는 킹스칼리지는 200년에 가까운역사를 드러내듯 고풍스럽고 고즈넉했다. 근처에는 빅토리안 고딕스타일로 지어진 로열코트(Royal Courts of Justice)[6]와 우리나라의 사법 연수원 격으로 법정 변호사(barrister)를 키워내는 4개의인(inn)이 있었다. 이들을 둘러싸고 법조타운이 형성되어 있는데, 골목마다 들어찬 법률사무소들 사이로 정장을 입은 채 기록 가방을 바삐 끌고 있는 젊은 변호사들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기분 좋은 기대와 흥분으로 강당에 자리한 나는 곧 이번 컨퍼런스 일정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컴퓨터공학을 중심으로 여러 학문 분야에서 심도 있게 이루어지는 발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법학을 전공한 필자로서는 벅찬 일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힘겹게 발표 내용들을 따라가면서 적어도 인공지능법분야의 범위와 주요 주제, 그리고 최신의 트렌드를 어렴풋이나마 스케치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고문은 그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국제인공지능법학회

‘인공지능과 법(AI and Law)’ 또는 ‘법률 인공지능(Legal AI)’라는분야는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유럽에서는 1980년대후반에 이미 연구자 커뮤니티가 형성되었고 1990년대를지나면서는 확립된 연구분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러한 학문적배경을 바탕으로 1992년 공식적으로 창립된 국제인공지능법학회는‘인공지능과 법(Artificial Intelligence and Law)’이라는 권위있는 잡지를 발행하고, 격년으로 컨퍼런스(International Conferece on Artificial Intelligence and Law, ICAIL)를 개최하는 등 이 분야의 선도적 역할을 맡아 왔다.


2010년대에는 보다 상업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리걸테크(Legal Tech) 영역이 출현하면서 법률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실용화된 법률 서비스도 많이 생겨났다. 미국의 Ross Intelligence는 IBM의 인공지능 플랫폼인 왓슨(Watson) 기술을 활용하여 자연어 법률정보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카이라(kira)는 법률문서로부터 정보를 추출하여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 외에도 수백 개의 기업이 마케팅, 문서 자동화, 업무관리, 법률정보 검색, 법률교육, 온라인 분쟁해결, e-디스커버리, 데이터 분석, 컴플라이언스 등 여러 영역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있다[7]. 법률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대중의 기대에는 상당한 거품이 끼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그림 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의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넓게 열려 있다.


[그림 1] Gartner 2016년 발표한 신기술 하이프 사이클 보고서


이러한 분위기에서 개최된 이번 컨퍼런스는 예년보다 백 명 가까이 많은 280여 명이나 참석하였고, 5일 동안 10개나 되는 워크샵이 함께 열리면서 백 건이 넘는 발표가 이어지는 등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관심 속에 치러졌다[8]. 규모도 컸지만 이번 컨퍼런스에서 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외연의 확대였다.


컴퓨터과학자와 기업

컴퓨터과학자들의 커뮤니티에서 출발한 법률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은 연구자들의 학문적 열정과 기업의 실용적 요구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이들 둘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았다. 2013년 국제인공지능법학회의 회장을 맡았던 윈켈스(Radboud Winkels)는 이런 고민을 “업계에서 요구되는 종류의 연구는 우리의 연구 열정과는 부정적인 상관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익살스럽게 표현하기도 했다[9].


그러나 이론과 현실 사이의 이러한 긴장 관계는 결과적으로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켜 좋은 성과를 낳는 배경이 되었다. 그 좋은 사례는 법률 분야에서의 컴퓨터 논증(computational argumentation) 연구이다. 이 영역은 2003년 Katie Greenwood와 Trevor Bench-Capon 등의 연구[10]에서 비롯되었다. 사례 기반 추론(case-based reasoning), 비형식 논리학(informal logic), 컴퓨터 논증 모델 등에 관한 기존의 지식을 활용하여 이루어진위 연구는 다분히 이론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곧 수요자의 요구를 반영하여 이론적 배경을 알지 못하는 사용자들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전자정부(e-government)툴을 개발하였다(Parmenides Tool)[11]. 그 뒤에도 학계의 흐름은 추상적인 이론 연구(argumentation framework)[12]와 실용적 적용(Integrated Method for Policy making using Argument modelling and Computer assisted Text analysis, IMPACT)[13] 사이를 오가며 바뀌어왔다. 최근에는 법적 추론의 변증법적 구조를 담아내기 위한 이론적 틀(Abstract Dialectical Frameworks for legal reasoning, ADF)[14]이 제안되었고, 그 후 업계의 요구에 따라 이러한 이론적 성과를 실용화하려는 작업(ADF for kNowledGe Encapsulation of Legal Information from Cases, ANGELIC. [그림 2])[15]이 진행 중에 있다. 그 목표는 어떤 법률 분야의 지식을 ADF 형태로 포착하여 실제 사안의 판단을 위하여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림 2] 야생동물 분야(domain) 관계를 시각화 한 그래프


법률 인공지능 기술의 주된 수요자는 로펌이나 법률정보업체 등 법률서비스 기업이었지만 그 범위는 점차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들어서는 컴플라이언스 등 일반 기업의 법무 조직은 물론, IMPACT 사업의 경우에서 보듯 전자정부 또는 전자민주주의 아젠다에 따라 정부나 공공기관 역시 중요한 수요자가 되어 있다. 법학 연구자들이 수요자로 등장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예를 들어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유럽 연합 지침(directive)이 회원국의 국내법에 수용되어 있는지 여부를 자동적으로 탐지해내기 위한 모델(Unifying Similarity Measure, USM. [그림 3])이 발표되었다[16]. 비록 각국의 법체계를 고려하지 않은 텍스트 비교라는 한계가 지적되기는 했지만, 장차 비교법 연구를 비롯하여 법학 또는 정책 연구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연구라고 생각된다.

[ 그림 3 ] 유럽연합 지침이 다양한 언어로 표현되었는지 여부를 머신러닝으로 평가


법률 인공지능 분야는 ‘법률’에 관한 인공지능 연구를 표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법률가들과의 교류는 모델이나 시스템 개발을 위한 소송문서 데이터의 확보를 중심으로 피상적으로 이루어져 왔다(AI for law). 그런데 최근 들어 전반적인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사회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됨에 따라 그러한 현상을 어떻게 법적・제도적으로 수용할 것인지가 문제되자, 법률 전문가나 정책 전문가들이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law for AI).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여 국제인공지능법학회는 법률 전문가들과 법률 인공지능 연구자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기 위해 이번 컨퍼런스에서 처음으로 ‘인공지능과 법실무 워크숍(1stAI and Legal Practice Workshop)’을 개최하였다. 이 취지는큰 호응을 얻어 전체 참석자 280여 명 가운데 95명이나 이 워크숍에 참석하였고, 그 중 상당수가 법률가들이었다. 주최 측은 컴퓨터과학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이들을 위하여 법률 인공지능의 기초적 지식에 관해 소개하는 강좌를 마련했고, 이어서 이루어진 워크숍의 주제들도 지적재산권 문제나 공유 데이터세트의 부족등 법적・정책적 쟁점이 주가 되었다. 또한 최근 많이 이슈가 되는 블록체인(block chain)과 스마트계약(smart contract)에 관하여 별도의 워크숍이 마련되었고[17], 법적 판단과 의사결정을 다루는 법정심리학 분야의 워크숍도 함께 개최되었다[18].


본회의 격인 ICAIL에서도 인공 에이전트(artificial agent)의 법인격 인정 여부의 문제[19], 자율주행차의 규범 준수 문제[20], 유럽 일반 데이터보호 법제(GDPR :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하에서의 법률 인공지능 활용시 법적 문제[21], 법적 판단에 있어서 인공지능 기술 활용의 증대가 법의 지배(rule of law)라는 헌법적 원리와 상충하는지 여부에 관한 문제[22], 법경제학이 판사들, 나아가 법리에 미치는 영향을 기계학습 기술을 이용하여 분석하려는 접근법[23] 등 전통적인 법률 인공지능의 영역을 넘는 주제에 관한 발표가 이루어졌다. 특히 인공지능과 법의 상호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는 자율주행차와 관련하여, 전통적인 법률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이를 자신들이 활약할 새로운 영역으로 인식하면서 윤리적 기준의 설정과 유지 방안의 제시에 자신감을 내비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24]. 다만 법률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인공지능에 법인격을 부여하려는 입장에 대하여는 대체로 거부감을 보였다. 법률가에게 쓸만한 도구를 마련해주는 것조차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수십년간 직접 느껴왔던 이들로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일부 열정적인 법률가나 컴퓨터과학자는 상호 교류를 넘어서 상대방 영역의 본령에 뛰어들기도 했다. 일종의 법률 인공지능 경연대회인 COLIEE에 참여한 일본의 원로 컴퓨터과학자가 변호사시험에 도전했다는 소식은 컨퍼런스 내내 화제가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시험에 합격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전통적인 법학 교육을 받은 법률가나 변호사가 컴퓨터과학을 공부하여 훌륭한 발표를 한 경우도 많았다. 특히 동구권을 포함한 여러 지역의 로스쿨에서 공부하는 박사과정 학생들이 법률 인공지능 분야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종래 미국 스탠포드 로스쿨은 CodeX[25]라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법률정보학(Legal Informatics) 분야를 선도하여 왔는데, 법률 인공지능 분야의 연구에 로스쿨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흐름은 이제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모습이었다.


새로운 트렌드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사안의 파악, 법률 정보의 검색과 학습, 결론의 도출, 결론을 정당화하는 논증 등 법실무의 모든 과정에서 유용한 도구를 제공하기 위한 수많은 이론적, 실용적 시도들이 발표되었다. 특히 법적 논증 분야에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시도가 있었다. 법률 분야에서 기존에 많이 활용되던 규범 기반 의미론적 접근방식(norm-based semantics)[26]을 벗어나 가능세계(possible worlds) 개념을 활용한 양상논리(樣相論理, modal logic)의 일종인 규범논리(deontic logic) 구조를 활용하는 시도가 대표적이다[27].


그 외에도, 규범 체계의 실제 구조를 경험적 측면에서 파악하려 하거나[28], 시간적 요소를 포용하려 하거나[29], 확률적 요소를 내포하는 퍼지 논리(fuzzy logic)를 활용하여 목적론적 해석을 표현하려 하거나[30], 심지어 어떤 규정에 대한 여러 해석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을 골라내는 논리를 구축하려 시도한 경우도 있었다[31].-> 전에는 단어의 의미가 어떻고, 이렇게 단어 해석에 집중했다면, 규범의 set를 상정해놓고, 가장 타당한 걸 선택하는 방식.


그러나 역시 가장 두드러지는 트렌드는 기계학습, 특히 딥러닝 기술의 적극적 활용이었다. 본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많은 연구, 특히 예측(prediction)을 주제로 하는 연구에서 기계학습 기술이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었다. 법해석상의 모호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규범논리(deontic logic)에 의한 접근방법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확률의 형태로 문맥(context)을 포착하고 CNN(convolutional neural network), RNN(recurrent neural network), Bi-LSTM(long short-term memory) 등의 딥러닝 기술들을 활용한 시도가 좋은 예이다[그림 4][32].


[그림 4] 여러 알고리듬을 복합적으로 적용한 딥러닝 구조


그러나 딥러닝 기술의 활용에 관해서는 신구 학자들 간에 미묘한 입장 차이가 있어 보였다. 젊은 연구자들은 딥러닝 등 새로운 기술의 활용에 상당히 적극적이었지만 원로 연구자들은 여전히 논리와 알고리듬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런 차이는 연구자의 소속기관이나 지역에 따라서 나타나기도 했는데, 예컨대 미국의 연구자들이 유럽의 연구자들보다, 기업에 소속된 연구자들[33]이 대학에 소속된 연구자들보다 새로운 기술에 더 개방적인 것 같았다. 딥러닝 기술은 예측(prediction)에 강점을 보이지만, 이른바 블랙박스(black box)라는 표현에 나타나듯 그러한 결론에 이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법률 인공지능 분야는 단순히 예측만이 아니라 설명(explanation)까지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딥러닝 기술의 이용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법률 서비스 분야의 생산성 향상에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개인적으로는 예측을 위한 시스템과 설명을 위한 시스템을 별도로 구현하여 상호작용을 하도록 한다면 한 차원 높은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인지과학의 성과에 따르면 인간 역시 직관적인 시스템 1과 분석적인 시스템 2를 보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34].


이번 컨퍼런스에서도 이를 시사하는 발표가 있었다. 카네기 멜론 대학의 연구팀은 영업비밀 사건의 판결 예측에 관한 발표에서 “충분한 해당 분야의 지식과 잘 정의된 논증 도식이 주어진다면, 컴퓨터는 그 영역의 바탕에 있는 가치들을 고려하여 지적인 법률적 주장을 생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계학습 알고리듬을 가지고 사건의 결과를 경쟁력 있게 예측하기 위하여 이러한 주장들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하였다. 위 연구팀은 발표 후 이어진 토론에서“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예측하고, 주장하고, 배울 수 있는 법률 인공지능(a legal AI that can predict, argue, and learn)”이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하였다[35].


COLIEE

본 컨퍼런스와 함께 열린 행사 가운데 특히 필자의 주목을 끈 것은 올해로 네번째를 맞은 일종의 경연대회인 COLIEE(Competition on Legal Information Extraction and Entailment)[36]였다. 그 이유는 위 행사를 조직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이 한국계(앨버타 대학 김미영 교수)라는 점,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륙법계에 속하고 법조인 양성 과정이 유사한 일본의 변호사시험 문제를 푸는 것이 경연에서 주어진 과제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출전한 팀(인텔리콘 연구소, 대표 임영익 변호사)이 우승을 했다는 점 때문이다. COLIEE는 일본 사법시험 문제에서 추출한 Yes/No 지문에 대하여 그 해결에 필요한 법조문을 제시하는 제1과제와 Yes/No 지문에 대하여 답까지 제시해야 하는 제2과제로 이루어져 있다. 제1과제가 정보 추출의 문제(legal information retrieval)라면 제2과제는 관련된 법조문과 지문을 비교하여 정답 여부까지 알아내야 하는 문제(recognizing textual entailment)이다. 트레이닝 데이터로는 2006년부터 2015년까지의 일본 변호사시험 민법 문제에 등장한 ‘지문 - 관련 법조문 - (제2과제의 경우) 정답 여부’ 세트가 주어지며, 테스트는 2016년의 변호사시험 문제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출품된 시스템은 인간의 개입 없이 자동적으로 위 과제를 수행해야 하며 그 결과는 객관적 기준(recall, precision, f-measure, correctness)에 의하여 평가된다. 과제의 성격상 기계학습 기술이 전면적으로 동원될 수밖에 없는데, 트레이닝 데이터가 언어적・규범적인 형태이고 그마저도 매우 적다는 점 때문에 형태소 분석 등 선처리(pre-processing) 절차부터 효율적인 학습을 위한 전략 마련까지 만만치 않은 작업이 요구된다[37].우승 팀인 인텔리콘 연구소는 일본 민법의 준용 규정(mutatis mutandis)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였다[38]. 개인적으로는 캐나다 팀의 접근방법이 인상적이었다. 캐나다 팀은 먼저 교착어(agglutinative language)인 한국어의 형태소 분석에 관한 기존의 연구 성과[39]를 활용하여 구문론적 구조(syntactic tree)를 의미론적 표현(semantic representation)으로 대치함으로써 문제를 ‘쉬운 문제’와 ‘어려운 문제’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쉬운 문제의 답(entailment)은 의미론적 표현에 의하여 찾고, 어려운 문제의 답은 일단 비지도학습(unsupervised learning)에 의하여 군집화한 뒤 쉬운 문제의 답(entailment)을 대응시키는 2단계 기법을 활용하여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40]. 인텔리콘 연구소가 수상을 하여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대회에 참가한 여덟 팀 가운데 일본 팀이 넷이나 되었고 모두들 대학이나 연구소에 소속되어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었던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민간 업체 하나가 혼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통과 협업, 그리고 정부의 역할

전통적으로 컴퓨터과학자들의 무대였던 법률 인공지능 분야는 이제 기업과 정부, 그리고 법률가와 소통하며 관심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점증하는 현실을 고려해본다면 이는 필연적인 동시에 바람직한 것이기도 하다. 인공지능과 법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분야는 기술적・산업적 측면과 법적・정책적 측면을 모두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41].


다시 말해 기술-산업-법률-정책 등 4개의 영역에서 컴퓨터과학자 – 기업가 – 법학자 및 법률가 – 정부 및 정책전문가들이 서로 대화하고 소통함으로써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AI and Law’라는 오래된 이름은 이제야 그에 걸맞은 내용을 가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현실은 아직 이러한 이상적인 모습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 분야를 전공한 컴퓨터과학자를 비롯한 전문가가 태부족인 실정이며, 특히 법률 인공지능 분야의 전문가는 손으로 꼽을만한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데는 무엇보다 지난 몇 년간 기초적인 과학기술과 학문에 대한 지원을 외면한 정부의 탓이 크다. 많은 법률가들 역시 인공지능 기술에 의하여 자신들의 입지가 줄어들까봐 막연히 두려워하기만 할 뿐 새로운 기술이 안겨다 줄 기회는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법률 서비스 분야야말로 인공지능 기술에 의하여 가장 많은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지고 가장 큰 시장 확대가 이루어질 수 있는 분야이다. 이제부터라도 과학자와 기업가, 법률가와 정책 전문가들이 만나 서로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한국인공지능법학회가 그러한 무대 중 하나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글 | 이상용 colinlee1973@gmail.com


인공지능의 매혹은 이내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갈라지기만 했던 질문들이 다시 한 데 모이는 듯했다. 처음부터 그게 궁금했다. 진실은 무엇일까.



참고문헌

[1] 참고 | 더글라스 호프스태터(박여성 역), “괴델, 에셔, 바흐”(상・하), 까치, 1999.

[2] 참고 | Hans Moravec, “Mind Children : The Future of Robot and Human Intelligence”, Harvard University Press, 1990.

[3] 참고 | 레이 커즈와일(장시형・김영남 역), “특이점이 온다 -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 김영사, 2007.

[4] 참고 | Nick Bostrom, “Superintelligence: Paths, dangers, strategies,” Oxford University Press, 2014. 위 책은 올해 4월 도서출판 까치에서 “슈퍼인텔리전스 경로, 위험,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조성진 역)이 출간되 었다.

[5] 참고 | www.mendeley.com “A.I. and Law”

[6] 참고 | 통상 ‘Law Courts’라고 불리며 고등법원 격인 ‘High Court’와 민사 항소법원인 ‘Court of Appeal of England and Wales’가 있는 건물이다.

[7] 참고 | https:// techindex.law.stanford.edu/statistics

[8] 참고 | https://nms.kcl.ac.uk/icail2017/

[9] 참고 | Katie Atkinson. AI and Law in 2017: Turning the hype into real world solutions. (IAAIL Presidential Address). 이하 편의상 ICAIL 2017의 Proceeding은 발표자와 제목만을 적기로 한다.

[10] 참고 | Katie Greenwood, Trevor Bench Capon, and Peter McBurney. "Towards a computational account of persuasion in law." Proceedings of the 9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Artificial intelligence and law. ACM, 2003. 그 기본 도식은 다음과 같다. 1 (AS1) In the Current Circumstances R 2 we should perform Action A 3 to achieve New CircumstancesS 4 which will realize some goal G 5 which will promote some value V. 여기에서 가치는 왜 G가 목적 인지를 설명해주며 A라는 행동을 하는 이유가 된다.

[11] 참고 | Dan Cartwright and Katie Atkinson. "Using computational argumentation to support e-participation." IEEE Intelligent Systems 24.5 (2009).

[12] 참고 | Adam Wyner, Trevor Bench-Capon, and Katie Atkinson. "Arguments, values and baseballs: Representation of Popov v. Hayashi." JURIX. Vol. 165. 2007.

[13] 참고 | https://sites.google.com/a/policy- impact.eu/public/home. .

[14] 참고 | Al-Abdulkarim, Latifa, Katie Atkinson, and Trevor JM Bench-Capon. "Abstract Dialectical Frameworks for Legal Reasoning." JURIX. 2014.

[15] 참고 | Al-Abdulkarim, Latifa,et al. Angelic Environment: Support for the Construction of Legal KBS. Technical Report ULCS-17-002, University of Liverpool, 2017; http://cgi.csc.liv.ac.uk/~tbc/publications/LAKASATBCfinal.pdf

[16] 참고 | Rohan Nanda, Luigi Di Caro, Guido Boella, Hristo Konstantinov, Tenyo Tyankov, Daniel Traykov, Hristo Hristov, Francesco Costamagna, Llio Humphreys, Livio Robaldo, Michele Romano. A Unifying Similarity Measure for Automated Identification of National Implementations of European Union Directives.

[17] 참 고 | SMARTLAW: Workshop on Blockchain, Smart Contracts and Law.

[18] 참고 | ICAIL 2017 Workshop on Evidence & Decision Making in the Law.

[19] 참고 | Argyro Karanasiou, Dimitris Pinotsis, “Towardsa Legal Definition of Machine Intelligence: The Argument for Artificial Personhood in the Age of Deep Learning”

[20] 참고 | Henry Prakken, “On Making Autonomous Vehicles Respect Traffic Law: a Case Study for Dutch Law”

[21] 참고 | Maja Brkan. AI-Supported Decision-Making under the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22] 참고 | Karen Yeung, “Using AI systems to personalise, predict and automate the application of law: A fundamental assault on the concept and rule of law?”

[23] 참고 | Chen, Daniel L., Adithya Parthasarathy, and Shivam Verma. "The Genealogy of Ideology: Predicting Agreementand Persuasive Memes in the US Courts of Appeals." (2016).

[24] 참고 | Henry Prakken, “On Making Autonomous Vehicles Respect Traffic Law: a Case Study for Dutch Law”

[25] 참고 | https://law.stanford. edu/codex-the-stanford-center-for-legal-informatics/

[26] 참고 | Prakken, Henry, and Marek Sergot. "Contrary-to-duty obligations." Studia Logica 57.1 (1996): 91-115.

[27] 참고 | Xavier Parent, Leendert van der Torre. The pragmatic oddity in norm-based deontic logics.

[28] 참고 | Vern R. Walker, Ji Hae Han, Xiang Ni and Kaneyasu Yoseda. Semantic Types for Computational Legal Reasoning: Propositional Connectives and Sentence Roles in the Veterans' Claims Dataset.

[29] 참고 | Matteo Cristani, Francesco Olivieri, Antonino Rotolo. Changes to Temporary Norms.

[30] 참고 | Celia da Costa Pereira, BeishuiLiao, Alessandra Malerba, Antonino Rotolo, Leendert van der Torre. Combining Fuzzy Logic and Formal Argumentation for Legal Interpretation.

[31] 참고 | Juliano S.A. Maranhao. A logical architecture for dynamic legal interpretation.

[32] 참고 | James O' Neill, Paul Buitelaar, Cecile Robin, Leona O' Brien. Classifying Sentential Modality in Legal Language: A Use Case in Financial Regulations, Acts and Directives.

[33] 참고 | Jack G. Conrad, Khalid Al-Kofahi. Scenario Analytics. Analyzing Jury Verdicts to Evaluate Legal Case Outcomes. 유명한 법률정보 검색 서비스인 LexisNexis를 운영하는 Thomson Reuters 에서 주도한 연구이다. 위 회사는 지난 2015. 10. IBM과 Watson 기술을 법률정보검색에 활용하는 데 활용하 기로 하는 파트너십을 구축하여 화제가 되었는데(https://www.legaltechnology.com/latest-news/thomson- reuters-announces-ibm-watson-partnership/), 우리나라 최대의 민간 법률정보회사인 로앤비를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34] 참고 | 대니얼 카너먼(이진원 역), “생각에 관한 생각”, 김영사, 2012.

[35] 참고 | Matthias Grabmair. Predicting Trade Secret Case Outcomes using Argument Schemes and Learned Quantitative Value Effect Tradeoffs.

[36] 참고 | https://www.nms.kcl.ac.uk/icail2017/cfcoliee.php; http:// webdocs.cs.ualberta.ca/~miyoung2/COLIEE2017/

[37] 참고 | 법률 분야의 특성상 주석이 달린(annotated) 양질의 트레이닝 데이터 부족은 만연한 현상이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발표되었 는데, 주석이 달린 소규모의 리걸 온톨로지(legal ontology)와 주석이 없는 대규모의 리걸 온톨로지를 위키피디 아를 이용하여 연계시킴으로써 저렴하게 데이터를 구축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비교법적 연구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방안이다. Cristian Cardellino, Milagro Teruel, Laura Alonso Alemany, Serena Villata. A Low-cost, High-coverage Legal Named Entity Recognizer, Classifier and Linker.

[38] 참 고 | Seongwan Heo, Kihyun Hong, Young-Yik Rhim. Legal Content Fusion for Legal Information Retrieval.

[39] 참고 | Kim, Mi-Young, Sin-Jae Kang, and Jong-Hyeok Lee. "Resolving Ambiguity in Inter-chunk Dependency Parsing." NLPRS. 2001.

[40] 참고 | Mi-Young Kim, Randy Goebel. Two-step Cascaded Textual Entailment for Legal Bar Exam Question Answering.

[41] 참고 | 이상용, “인공지능과 법 – 범위와 방 법,” 대전지방법원・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한국인공지능법학회 공동 주관 공동세미나(인공지능의 시대, 위 기 그리고 기회), 201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