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AI리포트] 장은미
여가 공간은 한마디로 노는 곳이자 쉬는 곳이다. 어렵게 말하면, 여가 공간은 여가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 및 물리적 자원의 총체로서 생활의 구속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즐겁게 여가 선용 및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을 말한다. 최근에는 ‘한번 뿐인 인생'이라는 뜻의 '욜로(you only live once, YOLO)'를 외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여가 공간의 중요성 또한 점점 커져가고 있다.
[카카오 AI 리포트] Vol. 12 (2018년 4월 호)은 다음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AI & life - 일상 생활에 스며든 AI part.1
01. 장은미 : 여가 : AI가 쉼의 공간과 놀이의 시간에 스며들다
03. 강영옥 : 소비 : AI로 인한 구매와 유통 구조의 변화
[2] Kakao inside - 카카오미니의 명령어 분류, 수학자와 AI의 발전
05. 임성빈 : 수학자는 어떻게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는가?
[3] in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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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 활동은 개인의 경제적 능력, 가용한 여가 공간의 제공 여부, 노동시간 외에 여가 시간의 길이와 연속성에 따라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계절 별 골프 여행부터 ‘방에 콕 박힌다’는 의미의 ‘방콕’ 여행까지 개인의 경제적 수준과 성향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여러 신문과 방송 매체에서 '다가올 미래는 이럴 것이다, 혹은 저럴 것이다'라는 추측성 기사가 급증하였다. 대부분 중산층 젊은 남녀를 가정하여 제시된 시나리오를 읽어보면 ‘그럴 수 있겠구나’라며 긍정적인 공감을 보이기도 하지만,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젓거나 개인의 취향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강요받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본인이 뒤처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정적인 모습까지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가 공간에 미치는 인공지능의 영향에 대한 논의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가 공간 전체를 다룰 수 있는 객관적인 논의가 가능할까?
약 15년 전 대한민국에서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했을 때 발간되었던 수도권 주변의 여가 공간 실태와 개발 필요성을 연구한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국내외 여가 활동 조사에서는 여가 활동 종류를 (1)관광/여행, (2)문예/문화, (3)체육/스포츠, (4)오락/위락, (5)취미/교양 중 행락과 등산과 산책, 낚시와 정원 가꾸기 (6)역사 탐방, (7)휴양, (8)사교, (9)TV시청 및 수면 등의 휴식, (10)자격증 공부 및 가족 모임 등 기타 활동으로 구분하였다.*1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됨에 따라 서울시민과 경기도민이 쉴 수 있는 여가 공간을 적극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골자였다. 15년이 지난 지금의 시각으로 그때의 보고서를 다시 보면 여가 자체를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6)역사 탐방과 (8)사교는 대분류에서 빠질 가능성이 높고 단순 인터넷 서핑이 대분류로 들어갈 확률이 높다. 또한 (10)에서 언급된 기타 활동은 여가 활동에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2016년 국민여가활동조사 분석 결과 여가 시간을 보내는 순서를 정리하면 TV시청, 인터넷 검색, 산책, 쇼핑 및 외식, 친구 만남과 동호회 모임, 잡담과 통화, 영화보기, 게임, 음악 감상, 독서 순으로 나타났다.*2 즉 2016년 말에는 TV리모콘이 한국인의 여가 시간을 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앞의 순위별 여가 활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인공지능이 여가 활동에 영향을 미치려면 TV방송 채널의 선택에 영향을 주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인공지능에게 채널 결정권까지 넘기지는 못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리모콘으로 직접 조작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채널 틀어줘”라는 음성 명령으로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는 수준까지는 왔다. 그런 의미에서 카카오미니 스피커 및 통신사의 AI 스피커가 핫한 아이템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인터넷 검색 및 게임 부분에 인공지능이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될까?
검색 엔진에 인공지능을 적용해 온 지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검색창 주변을 차지하는 광고와 관련 뉴스로 볼때 내가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남들이 다 알고 있다는 불편한 마음이 든다. 이러한 '불편함과 즉시적 만족성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라는 고민에 슬그머니 답을 알려주는 과정을 넛지(nudge)라고 해야 할까?
여가 활동에서 9위를 차지할 정도로 게임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게임의 시나리오와 실질적인 구현은 이제껏 사람에 의해 창조되어 왔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 그래픽 부분에 함수를 넣어 이미지와 동작을 생성시키는 표현 분야를 넘어서, 게임 자체를 AI가 수행하도록 하는 실험, 그리고 AI가 스스로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하는 저작 도구까지 고안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전쟁과 전략 시뮬레이션 위주의 게임에서, 실제 도시를 계획하는 심시티(SimCity)를 넘어서, 민주주의(democracy) 혹은 전제주의(despotism)를 선택해 작은 마을을 관리하고 그 마을의 시장원리와 복지정책까지 구현하는 게임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을 볼 때, 게임이란 중독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란 관점에서 변화하고 있다.*3 게임 산업에서 인공지능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도래한 계기가 있다. 적지 않은 게임 고수들이 생겨나면서 게임 제작사의 시나리오를 모두 파악해버린 것이다. 게임을 만들어 내는 속도보다 스테이지를 달성하는 속도가 빨라졌고, 결국 자동 조합 모듈로 다양하고 복잡한 게임에 대한 요구가 생겨난 것이다.
네트워크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조정하지 않더라도 액션을 가지는 캐릭터들은 강화학습에 의해서 움직이게 된다. 자연어처리랩과 AI랩이 게임 회사의 핵심 부서가 되면서 AI 전공 인력이 게임회사로 몰려가는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관찰된다.
산책과 걷기는 과도한 집중력을 요하지 않고 편안하게 걷는 산책과 다이어트나 근육 운동을 위한 파워워킹을 말한다. 스마트폰에 설정한 하루 목표 7,000보를 달성하게 되면 스마트폰 앱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하루 목표 이상의 걸음 수 알림을 보면서 사람들은 뿌듯한 마음으로 걷기 운동을 마칠 수 있게 된다. 개인의 걸음 수 측정 데이터를 SNS로 공유하기 시작한 것은 벌써 2~3년 정도 되었으니, ‘이제와서 뭘 새삼스레’하고 생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는 이러한 정보를 외부 보험사와 공유하면서 개인의 데이터 제공시 보험료 인하에 대한 선택 버튼이 생기고, 나의 심장 박동이 비정형 데이터로 저장되는 모습까지 그려질 정도다. 나이 드신 분들의 경우 벌써부터 필수기능이라고 좋아하시는 모습도 보이니, AI 기술을 좋은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여가를 넘어 원격 의료까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음악 감상은 어떨까? 라디오 혹은 카페에서 “어디서 많이 들었던 노래인데”라고 말하면, 조용히 하라며 앱을 켜고서 1분 이내에 가수와 노래 이름, 발표 연도를 읊어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 모습에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클래식 종류는 찾지 못 할 것이라고 확언했던 적이 있다. 실제로 유사한 멜로디를 추출하는 기능은 15년 전에 이미 개발이 완료되었으나 모든 음악이 아닌 특정 음악 시장을 대상으로 제한했던 까닭에 데이터베이스화도 불완전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음원을 저장하고 인덱싱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예측하건대, 인공지능이 음악 감상이라는 여가 활동에 영향을 주려면 국가와 지역별로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여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유사한 측면에서 지도 서비스도 정보 소비가 가능한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하여, 서울 전체에서 대도시 권역으로, 이후에 전국으로 확대되고 최종적으로는 국경을 넘은 서비스 플랫폼으로 확대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로 미국 시장에서의 음악 관련 AI 어플리케이션은 [표 1]처럼 요약될 수 있다.*3*4
해외의 리포트에 따르면, 이제 스마트폰의 사진 기능으로 많은 사람이 고품질의 사진을 찍듯이 일반인들도 대위법 및 다양한 변주 기법을 배우지 않고도 인공지능 기반의 앱으로 작곡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라고 한다.*5
여섯 번째 순위의 잡담 및 통화는 카카오톡, 밴드 등의 SNS 활동을 포함한다. 아마 2017년에는 더욱 그 비중이 늘어났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장년층의 유입과 더불어 다양해진 SNS 채널과도 관련이 깊다. 매년 조사하는 카테고리 항목이 변경되기도 하므로 시간에 따른 추이 변화를 보기는 어렵지만, 잡담과 통화의 양식이 변경되었거나 같은 SNS 활동이라도 눈으로 읽기만 하는 활동도 잡담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 역시 해봄직하다.
앞서 말한 독서 활동의 경우, 상위 10가지 활동 가운데 마지막을 차지한다. 독서는 대형서점 및 인터넷을 통해 종이책, 전자책, 전자책 회원권 또는 오디오책 구매 등이 가능해지면서 그 형태가 다원화되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들의 양극화는 점차 심화되는 가운데 도서 시장은 점점 작아지는 파이를 나누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경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AI를 토대로 분석한 판매 성향이 소비자의 구매로 이어지도록 하고, 다양한 북 콘서트 및 큐레이션(curation) 서비스를 하면서 도서 시장이 점차 다변화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AI로 추천 받은 책, 그림 및 디자인은 카드뉴스를 통해 소비로까지 이어지게끔 만든다. 초기에 특허 정보와 같은 특정 서비스에서 필터링을 위해 개발되었던 기능이 이제는 책을 요약하고 키워드를 뽑아내는 등의 일상적인 도서 검색 및 내용 변환 서비스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동일한 보고서의 여가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 대한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식당(9.4%), 아파트 내 집 주변 공터(8.7%). 생활권 공원(6.9%), 커피숍(6.1%), 대형마트(4.5%), 영화관(4.4%), 산(4.1%), 헬스클럽(3.8%), 목욕탕(3.3%), 기타 실내 공간(1.3%) 순서로 나타났다.
식당이 1위인 이유로는 '식사하셨어요?'라는 표현이 '안녕하세요'와 같은 인사말로 사용되는 우리나라의 문화와 맞물려 있다는 점, 그리고 최소 자본으로 전 국민의 집중도를 끌어냈던 식당 순회 프로그램과 요리 기반의 예능 프로그램 영향 때문으로 생각된다.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고, 기록하고, 공유하며, 지인들과 식사를 하는 가운데 보내는 여가 시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고, 이는 단순히 다른 제품을 소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두 번째 순위로 집과 아파트 등의 주변 공간 등을 꼽고 있는데, 이는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집과 학교, 집과 일터를 중심으로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쌓인 피곤 때문에 집에 머무르면서 여가를 즐기려는 성향과 비슷한 맥락에 있다. 집은 개인에게 사적인 공간으로, 방은 잠을 자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휴식과 같은 다양한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자리한다. 여기서 인공지능은 앞에서 확인된 TV 및 비디오 시청, 게임 등 개별화된 활동에 기여하고 데이터의 업로드와 다운로드 등은 수시로 전자제품과 서버, 그리고 휴대하는 여러 디바이스로 데이터 이동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상호작용할 수 있는 비서 로봇의 역할이 커질 수 있다.
인공지능이 집에 영향을 주는 환경과 기존의 홈 오토메이션(home automation), 원격제어 등의 기존 IT 기술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몇 가지 질문으로 그 차이를 살펴보도록 하자. 여가 활동과 관련된 영역에서 나의 키워드는 어디에 저장이 되는가? 그리고 분석하는 알고리즘은 누가 만드는가? 기존의 홈 오토메이션은 각자 개인이 결정한 것을 원격에서 조정하는 것과 세팅해 놓은 대로 조정되는 것인데 비해, 인공지능의 작동은 이와 달리 관련된 디바이스는 통신망과 서버를 통해 우리의 지능이 아닌 별도의 플랫폼 서버에 저장된다. 서비스를 받는 즉시 모든 사진과 검색 키워드, 구매 목록 등은 모든 것들이 센서에 연결되어 개인의 성향을 판별하게 된다.
무조건 “나는 AI가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보 노출을 최소화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아마존(Amazon)을 시작으로 사용자가 자주 사용하는 키워드와 사진을 분석하여 유사한 도서를 찾아주는 맞춤형 큐레이션이 등장하였고, 우리나라 인터넷 서점에서도 멤버로 가입한 회원에게 다운로드 받은 책들 혹은 독자가 좋아할 만한 도서 등을 알려주기도 한다. 또, 포털 메인 메뉴까지 맞춤형으로 구성하면서 개인의 여가 시간과 공간을 결정하는 정보를 최소의 비용으로 얻을 수 있게 해준다.
여행 관련 책자는 다른 분야에 비해 종이책으로 꾸준히 나오고 있으며 독립출판사의 발행 비율이 높다. 인공지능에게 무엇을 하고 놀 것인가를 물어보는 것은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 “어떤 목사님이나 어떤 스님의 말씀을 들어볼까요?”라고 물어보는 것과 같게 느껴질 수 있다. 즉 인간으로서 주어진 짧은 여가 시간마저 선택을 기계에 맡기고 본인의 선택을 포기하는 모습을 거부하며, 비록 간접적으로 영향은 받지만 결정권은 각자에게 있다고 믿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해외 여행 예약 사이트에서는 실제로 챗봇(chatbot)과 인공지능을 결합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이렇게 하면 고객의 정보를 전자 메일, 페이스북(Facebook), 문자 메시지, 스케줄 등에서 취득하여 가본 곳과 가고 싶다고 말했던 곳, 또는 검색 기록을 기반으로 고객 맞춤형 여행 계획안을 제안할 수 있다. 혹은 공항에서 갑자기 게이트가 바뀌거나 이변이 발생할 경우 자동으로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며, 여행이 끝난 후 여행 소감을 받아 다음 여행자에게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정보를 제공해 준 여행자에게 리워드 포인트로 선물을 남겨주기도 할 것이다.
네덜란드 항공(KLM)에서는 이미 챗봇 시스템을 도입하였으며, 음악이 AI와 접목됐을 때와 유사하게 여행 상품 혹은 같이 갈 동료나 친구 추천, 관련 정보와 비디오의 제공, 성향과 기분 상태 모니터링, 고객 관리 등에 활용하고 있다. 이후에는 더 효율적인 디지털 광고 대상 여부를 판단하거나 챗봇의 기능을 개선하는 데 사용할 것이라 보고 있다.*7
정보통신기술 이전에 예술과 학문이 어떠한 형태로든 먼저 존재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소통의 주요 도구가 정보통신기술이 되면서, 웹을 통해 공유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쟁이 붙기 시작했다. 또 다시 실존주의 논쟁이 살아난 것 같다. 문학 연구에 정보통신기술이 적용된 사례를 추정한 연구에서도 미래의 예술과 학문에 대한 변화에 IT 기술이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8
‘나는 옛 것을 고집하고, 내 여가시간을 보낼 때만큼은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살리라'하고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면 최근의 변화로 인한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주변인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해 여러가지 편리한 서비스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여가 공간에 조금씩 AI가 스며들게 되었다. 예전에 한 이동 통신사의 광고에서 나온 말이 생각난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고 말하지만, 다시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순간 우리의 여가 공간은 여러 명의 빅브라더(big brother)*9와 함께 하는 공간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충청북도 괴산의 산막이 길을 지날 때, 비목(榧木) 팻말을 본 사람 중 여럿은 ‘초연히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로 시작하는 가곡을 부른다. 하지만 갑자기 휴대폰에서 혹은 주변의 전자 기기에서 그 노래가 나온다면 무섭지 않을까? 또 다른 케이스로는 ‘삼미슈퍼스타 마지막 팬클럽’ 전자책 소설을 보고 있는데 ‘연안부두 떠나가는 배’ 노래가 휴대폰에서 휴대폰이 울리면 어떨까? 내 뇌를 스캔하는 빅브라더에 대한 의식때문에 휴식 공간에서만이라도 누군가의 간섭 없이 편히 쉬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아이돌 가수의 노래는 찾아도 클래식의 경우 데이터베이스가 방대하여 찾지 못 할 것이라고 했지만, 인공지능으로는 가능할 수도 있다. 바흐(Bach) 악보를 미디(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 MIDI) 파일로 저장한 후 CSV(comma separated value) 파일로 변환하고, 이것을 다시 알고리즘으로 분석하여 머신 리스닝 한다.*6 이 파일을 훈련 모드를 반복하여 악기로 연주하기도 하며, 훈련 시간을 늘리면서 그 악보를 기초로 멋진 재즈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훈련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오히려 이상한 음악으로 변하기도 하니 인공지능도 적정 수준의 인풋(input)을 가져야 한다는 원리가 맞아 들어가는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네, 뛰어 놀던 공터가 사라지고 놀이터는 비어가면서, 이제는 승용차에게 그 공간을 내어주고 있다. 우리에게 여가 공간이라는 것은 집이나 카페 같은 편한 곳으로 인식된다. 카페의 백색소음과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같은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아 있어도 조용히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그 곳이 지금의 여가 공간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연의 소리를 듣고 체험하며 묵언의 공간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는 등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여가 공간을 찾아 달려갈 수도 있다. 독자의 권리 중 하나가 떠오른다. 책을 읽지 않을 권리, 건너뛰며 읽을 권리,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다시 읽을 권리,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소리 내서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가 그것이다.*10 이제는 여가 공간에 슬며시 찾아 든 AI에게도 같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하고 넛지를 놓는 일이 여가 분야에서 AI 산업의 핵심 목표가 되지 않을까?*11
글 | 장은미 emchang21@gmail.com
공간 정보와 IT기반의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며, 대학에서는 비즈니스 GIS와 방재 GIS를 강의 하고 있다. GIS는 정보를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생각으로, 다양한 재해 관련 의사 결정 지원 시스템 구축 및 교육 훈련 체계를 구축해 왔으며, 산림에서 국토 정보를 넘어 수심측량과 해양지명에 이르기까지 기술 관련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기 위한 글쓰기를 즐겨한다. 현재 ㈜지인컨설팅 대표이사, 서울시립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참고문헌
*1 참고 | 윤양수, 김의식, 2002, 레저행태 변화와 여가공간 조성방안연구, 국토연구원
*2 참고 | 2016 국민여가활동조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3 참고 | 이경혁, 2017,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 로고폴리스
*4 참고 | https://www.techemergence.com/musical-artificial-intelligence-6-applications-of-ai-for-audio/
*5 참고| http://www.marketexpress.in/2017/10/will-ai-change-the-future-of-music.html *6 참고 | 머신 리스닝 설명 애니메이션 https://www.youtube.com/watch?v=SacogDL_4JU
*7 참고 | https://www.webcredible.com/blog/artificial-intelligence-tourism-travel/
*8 참고 | 장은미 박용재, 2017, 정보통신기술의 적용이 문학연구에 약이 될 것인가? 독이될 것인가? 한국문학연구 제 55집
*9 설명 |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 혹은 그러한 사회체계를 일컫는 말. 사회학적 통찰과 풍자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의 소설 《1984년》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긍정적 의미로는 선의 목적으로 사회를 돌보는 보호적 감시, 부정적 의미로는 음모론에 입각한 권력자들의 사회통제의 수단을 말한다.
*10 참고 | 다니엘 페니아크, 2004, 소설처럼, 이정임 옮김, 문학과 지성사
*11 참고 | 리처드 세일러 캐스 선스타인, 2009, 넛지(nudge), 안진환 옮김, 리더스북